몸도 마음도 덜 여물어 어디서든 어정쩡하던 그 나이, 우리들은 도움을 요청할 용기도 부족했고 용기를 내더라도 결과는 늘 똑같았다. 유연하게 상황을 바라볼 마음도 부족했다. 수시로 찾아드는 폭력과 치고받는 갈등을 감당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가출을 한 상태에서 연애를 하다 임신을 한 아이도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3인 1조로 움직이며 돈을 번 아이들도 있었다. 3인 1조로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1명을 제외한 2명은 또래나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남자애들이었다. 한 번도 일이 성사된 적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팀이 움직였다고 말하곤 했는데 늘 시기적절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사진기를 들이댔기 때문이라고 유리는 설명했다. 미성년자라는 허울을 이용해 그들은 그렇게 무법자처럼 돈을 벌었다. 그들 중 유부남은 유리에게 너 같은 딸이 있다며 무릎을 꿇으며 눈물 흘렸고 제발 사진만은 지워달라고 사정하며 질질 짜다 300만 원을 보냈다고 했다.
한 대학 교수는 방송까지 탄 나름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 미친. 겁도 없어.” 얼굴이 다 알려져도 뒤로 이런 짓을 한다고 유리는 어이없어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순간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헷갈렸다. 3인 1조로 움직이던 유리의 행동도 옳은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미성년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용돈벌이로 이용할 남자를 찾는 행동은 엄연히 잘못된 부분이니까.
유리의 말을 들을 땐 너의 잘못도 분명 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입술 까지 올라왔다 유리의 말간 얼굴을 보면 그 안쓰런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유리는 함께 움직이던 한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유리가 첫째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던 사람이었다. 재워주고, 유리가 힘들 때 유리의 편이 되어주고, 유리를 위협하던 남자들을 첫째 오빠는 마블의 한 장면처럼 물리쳤다고 했다. 유리의 이야기를 아는 친구들은 첫째 오빠를 향해 캡틴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캡틴이 유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사랑일까. 배신일까. 성폭행일까. 관계일까. 아빠일까. 성폭행범일까. 같이 앉아 이런 고민들을 했던 시간들. 그날, 무방비상태에서 이뤄진 성폭행으로 유리는 엄마가 되었다. 유린 아이를 지우지 못했다.
통장에 있는 돈을 가지고 센척하며 산부인과에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몸이 떨렸다. 그날 유리는 콩콩 쿵쿵 거리며 우람차게 뛰는 아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엉엉 울었다. 성폭행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아빠 되기를 자처한 캡틴을 향해 “꺼져버려, 병신아”라는 말을 내뱉었다. 유리는 재개발로 건물이 다 무너져 내린 동네 귀퉁이, 공사 준비로 다 비워진 건물 안에서 입에 양말을 물고 혼자 아기를 낳았다.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아야 했지만, 유리는 그때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으로 죄인 같았다고 했다. 나쁜 짓을 할 때는 오히려 당당하고 죄를 짓는 것은 그 새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산부인과 앞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 같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어 다시 계단을 내려왔을 것이다. 유리는 휴대폰으로 검색해 알게 된 청소년 의료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다. 부모가 없는 청소년의 경우 특히나 유리처럼 청소년기에 임신을 한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건 것이다. 산부인과와 정신과 등 진료를 이어오고 있지만 일주일 후 센터 운영이 종료된다고 했다. 유리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너무 따뜻해 화를 낼 수도,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전문 의료진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 유리가 기억하던 마지막 문장이었다.
나는 유리가 보호소에 온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유리는 울고 있었고 아기도 울고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작은 아기 고양이의 소리처럼 들려 신기했다. 보호소 직원들이 우르르 뛰어나가 아기를 이리저리 살피고 분유를 타던 모습도 떠오른다. 유리는 그날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직전 그래도 이렇게 손가락으로 벨을 꾹 – 누를 수 있는 이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너무 애처롭고 슬퍼 모두 사라지면 좋을 곳이기도 하지만, 사라지면 우리처럼 애처롭고 슬픈 누군가를 보듬어줄 마지막 공간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곳. 세상은 이렇게나 모순투성이다.
유리의 맨투맨 티에 돌돌 말려진 아기는 정말 작았다. 유리의 태반이 채 떨어지지 않은 채 밀가루 풀이 몸 여기저기 묻은 것 같았다. 얼굴에 주름이 다 펴지지도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기의 얼굴은 울퉁불퉁했고 빨갛고 하얬으며 사람이라기보다 작은 새나, 작은 원숭이 같았다. 우리는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보는 신생아가 너무 신기해서 연예이라도 온 듯 몰려들었고 선생님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 너희도 다 이럴 때가 있었어.” 말했다.
나를 낳았을 때 엄마 아빠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이렇게나 작은 아이를 하루 종일 품에 안아 키웠겠지. 갑자기 모든 장면과 시간이 아득해졌다.
유리가 온 날은 다른 날보다 어수선했다.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나 빽빽 울어대는 소리에 같이 늦은 시간까지 깔깔거렸다. 어른들은 아기를 안아 분유를 먹이고 모유가 잘 돌지 않는 유리에게 미역국을 끓여줬다. 아기는 여기서 돌보다 다른 지원센터로 보내지거나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에 한 아이는 “ 입양이 최고이지. 한국은 헬이야.”라고 말했고 은성이는 그 아이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 그게 나을지도...” 유리의 작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봤다.
엄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어린 얼굴.
벽에 붙어있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니 내 얼굴도 아기 같다.
응애응애 나도 얼른 어른 품으로 들어가 말없이 울어버리고 싶었다.
아기를 혼자 어떻게 키워나가야 하는지, 어른들도 아기를 키우는 것은 힘든 것인지, 힘들다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빠가 없는 미혼모 사례, 입양의 장점 등 유리의 휴대폰 검색기록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숫자는 늘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결국 그 숫자 때문에 결국엔 사회에 내던져진다.
아직 나는 법을 모르는 우리에게 사회는 일단 날아! 퍼덕거리다 보면 답이 생겨! 그러면서 방법을 찾는 거라고 독촉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시작점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삶의 환경이 다른 이들과 다른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되는지.
이것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어려워하던 수학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