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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권리는 있으니까

아동은 충분한 성장을 위하여

애정과 물질적인 안정 속에서 성장할 권리가 있으며

부모와 사회는 책임을 진다.



가끔 성민이를 따라 어머니의 돌봄 지원센터로 함께 갔다. 고작 5분 정도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기꺼이 성민이를 만나러 난 그렇게 했다. 정문 앞에 붙어있던 이 글귀를 소리 내서 읽으니 성민이 날 바라봤다.

“ 음... 아동은 아니니까.”

“ 그렇다고 성인도 아니잖아.”

“ 난 힘들 때 엄마가 날 지금까지 키워주느라 애쓴 시간을 반대로 생각해. 그럼 어느 정도 합리화가 돼. 이게 뭐 힘든 거라고. 내가 온전히 24시간 엄마를 돌보는 것도 아닌데 힘들단 얘길 할 수가 없지.”

“ 너.. 잠깐 뒤 돌아봐 등에 날개 달렸어? 너 천사야?”

진지한 눈으로 성민에게 말하면 성민이는 민망해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표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성민이의 입꼬리나 눈썹 부분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는데 아마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17살을 떠올려보면 사람이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리면 표정 이란 게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힘들고 힘든 날들이 순차적으로 예고도 없이 찾아오던 시간 속에서 나는 맞은 곳을 계속 맞아 딱지가 두꺼워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는데 그 마음도 반복되니 무뎌졌다. 때론 감정이 무뎌지고 표정이 사라져 편해진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날 피한다거나 하는 것들. 아마 성민이의 날들이 딱지에 딱지가 덧입혀지는 그런 시간 아닐까, 생각했다.

“ 가끔 아빠가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아빠랑 엄만 어릴 때 헤어졌거든. 얼굴도 사실 잘 기억 안 나. 내가 2살 되기 전에 헤어졌대. 나도 엄마한테 들은 얘기지만.”

“... 그럴 수 있지. 나 요즘 공부 열심히 한다. 곧 고졸 검정고시도 보고. ”

무거운 분위기를 애써 바꿔보려고 뜬금없이 공부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고는 마음속으로 ’ 아 바보‘ 생각했다.

“ 그런데 이렇게 시간 아깝게 왔다 갔다 해도 돼? 얼마 안 남았잖아.”

“ 왜. 싫어? 그럼 안 오고.”

“ 아니 그게 아니라..”

“ 농담이야! 너도 학교 가면 공부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고 고3처럼 공부 많이 해?”

“ 말만 고3이지 난. 오면 엄마는 내가 전담 케어 해야 하니까.”

하교 후 센터에 들러 다시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와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엄마가 잠들 때까지는 성민이는 엄마가 혹시나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안고 돌봐야 했다. 치매 때문에 집안의 물건을 갑자기 부수거나 베란다 난간을 잡고 위험하게 올라간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했다. 그래서 늘 긴장해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쉴 새 없이 머리를 쓰고 몸을 써 성민은 늘 피곤했다. 그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성민은 늘 입에 목캔디 한 알씩을 넣고 이리저리 굴린다고 했다. 효과가 꽤 좋다고. 난 성민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피곤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마다 목캔디를 샀다.

돌봐야 할 유일한 남은 사람이 우리처럼 덜 큰 애송이일지라도 가족이 아프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여리고 몽글한 마음 때문일까, 가족을 쉽게 내치지 못하고 아직 여리고 연약한 우리들은 그래서 힘들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모순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그 누군가는 결국 가장이 되어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고 그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굴레를 벗어날 수도 없으니까. 성민이가 아는 형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중학교 때 태권도 도장에서 만난 형은 성민이보다 한 살 많았다. 성민이가 형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은성이 떠올랐다.

“ 형이 공부하느라 맘 잡기까지 오래 걸렸거든. 유학도 혼자 힘으로 오래 준비했었어.

그런데 유학 중에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거야. 아빠가 목욕탕에서 쓰러졌다고. 뇌졸중이었어. 보호자가 맞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했대. 자신이 아빠의 보호자가 될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아빠 혼자 한국에 남겨놓고 떠나는 거, 형은 늘 마음 쓰여했거든.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대.”

“ 그러고 보면 세상에 신이 없는 게 맞는 거 아냐? 뭐 이렇게 삐딱해? 행복이 이렇게 빈곤해서야 어떻게 살아가냐고.”

“ 행복이 빈곤한 대신 남들보다 독립을 빨리 배우니까 얻는 것도 있겠지, 뭐. 20대, 30대 어른이 돼도 가족을 돌봐야만 하는 사람은 존재해. 젊음에 돌봄이 붙으니 뭐 힘들긴 하겠지만 딱히 특별한 방도가 없잖아.”

“ 봐봐 또 이래. 넌 천사 맞아. 그래서 형은 한국으로 왔어?”

“ 응 왔지. 유학 접고.”

“ 미쳤어. 꿈 접고 왔다고? 그래서?”

“ 아빠 병간호.”

“ 많이 안 좋으셨던 거야?”

“ 형은 20살 넘어 나름 성인이었는데 그래도 버거워하더라. 매일 기저귀 갈고 욕창 생기지 않게 닦아주고 돌아 눕혀주고.. 그걸 몇 년 동안 혼자 다 했어.”

“ 못 움직이셔서?”

“ 응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형이 더 힘들었지.”

“ 그래서 지금은.....”

“ 아직...”

“ 아직 살아계셔? 아 아니다. 실수.”

아직 살아계시냐는 말을 하고 나서 순간 난 입을 막았다.

형은 결국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들 다 찾아 겨우 알아낸 지방 한적한 요양원에 아버지를 들여보냈다. 100% 무료가 아니었고 들어갈 약이나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기에 결국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꿈이랑은 거리가 먼 일일 것 같아 속상해질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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