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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마드리드 증후군

마드리드에서 둘째 날


Paris Syndrome, 파리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이 증후군은 낭만의 도시라고 기대했던 파리의 실체, 그러니까 인종차별이나 청결문제 등을 마주하면서 오는 문화쇼크를 말한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크면서 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 증후군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나에게 마드리드의 둘째 날이 그랬다.

마드리드증후군이라고 해야 할까?

노란 해바라기 밭과 뜨거운 붉은 평야를 기대한 나에게, 겨울의 마드리드는 너무나 차가운 도시였다.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어 도망치고 싶었다.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된다는 것이다.






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복잡한 와중에 엄마가 오늘은 뭘 하냐고 물어봤다.


“나도 몰라.”


짜증 섞인 답이 툭 튀어나왔다.

대답을 하고도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일단 아침부터 먹자고 말을 돌렸다.


아, 진짜 오늘 뭐하지?



원래 계획했던, 돈키오테의 배경지 콘수에그라 (사진출처 : 픽사베이)




여행을 할 때 일단 나가고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너무 어렵다.

아침을 먹으면서 마드리드에서 할 만한 것들을 쥐어짜 보았다.

먼저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 그리고 일요일이니까 성당.


부족하다, 부족해!


괜히 늦장을 부리다가, 일단 나가보자는 엄마와 동생의 말대로 일단 나가게 되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하늘이 흐렸다.

마드리드는 원래 이렇게 하늘이 흐린 도시일까?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마트와 옷가게들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전날 비가 왔었는지 바닥은 축축하고 추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몇 식당들은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제 지나가는 길에 봤던, 줄이 어마어마하게 긴 츄러스 집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줄은 길었고,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는 동생이 열심히 달려가 줄을 섰다.


사람들은 츄러스를 정말 맛스럽게 먹고 있었다.

특히 츄러스를 찍어먹는 초콜릿은 꾸덕하고 진해 보였다.

동생과 무엇을 얼마나 시키냐에 대해 짧은 논쟁을 벌이는 동안, 카운터와 점점 가까워졌다.

테라스 자리에도, 매장 안 자리도 사람들로 빼곡한 것을 보고, 엄마는 걱정 어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우, 여기서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


헉, 그런가?

엄마가 던진 작은 말 한마디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여기서 코로나에 걸려버리면 어떡하지?


물론 한국에서는 사람이 가득한 식당에서 밥을 먹곤 한다.

하지만 내 집이 있는 한국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것과, 해외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 각오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머릿속이 복잡할 와중에,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먹고 갈 것이냐, 포장할 것이냐?”


나는 버퍼링에 걸린 사람처럼 버벅거리며 말했다.


“어.. 먹고 갈게요.”


우리는 때마침 자리가 빈 입구 바로 옆의 자리로 안내받았다.

회전율이 빠른만큼 츄러스는 정말 빨리 나왔고, 정말 맛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하고, 츄러스를 찍어먹는 초콜릿도 보이는 것처럼 진하고 달콤했다.

장담컨데, 내 생에 최고의 츄러스였다.


하지만 즐거운 입과는 달리 내 마음은 의심병에 걸린 것처럼 불안했다.


우리 옆 테이블 사람들이 코로나 확진자라면? 방금 지나가는 사람이 코로나 확진자라면? 모든 사람이 코로나 확진자처럼 보였다.

불안증이 도져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어느새 확진될 경우 어떤 숙소를 잡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까지 갔다.

그 사이 그릇은 비어갔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는 내 말에, 엄마는 컵이 있었다면 남은 초콜릿 소스를 포장해갔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다시 힘을 내보려 했다. 괜찮을 거야!

하지만 골목이 멋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추워서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다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우리 모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파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생각보다 아주 이르게 크리스마스마켓 구경도 끝났다.

그렇게 벌써 마지막 코스인 알무데나 성당에 도착했다.

어젯밤과 달리 성당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성당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엄마는 열심히 성당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유럽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엄마에게 미사를 드리고 싶냐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잠깐 앉자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미사를 드렸다.

우리까지 미사를 드리게 하려는 수법이었던 것이다!

허참. 어이없어하는 내게 동생이 속삭였다.


“나가자!”


엄마에게 미사가 끝날 때 돌아오겠다 하고, 동생과 성당 밖으로 나갔다.


성당의 앞에서는 마드리드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어젯밤에는 어두워 까맣게만 보이던 마드리드의 전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흐린 날의 마드리드 전경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무데나 성당에서 내려다본 마드리드의 전경



동생과 열심히 사진을 찍긴 했지만 뭘 찍는지도 잘 모르겠고, 춥기만 했다.

스페인 광장은 공사 중이었고, 이제는 정말 할 게 없었다.

우리는 대체 왜 마드리드에 왔고, 나는 왜 마드리드의 일정을 4일이나 잡았을까?

이 도시는 내게 너무 낯설었고, 익숙한 바르셀로나 혹은 리스본으로 떠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성당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알무데나 성당 앞에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왔다는 의미를 담은, 노숙자 모습의 예수상이 벤치 위에 누워있었다.

그 모습에 더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곧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를 데리고 오기 위해 사람들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관계자들은 하나 둘 불을 끄고 있었고, 엄마는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알무데나 성당은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대성당이다. 그래서인지 내부가 꽤나 컸다.

재단 뒤로 사람들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엄마도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곳에 온 ‘뽕’을 뽑기 위해 흔쾌히 올라갔을 나지만, 너무나 피곤한 데다가 그 인파 속에 끼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엄마와 동생 둘만 올라가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다 잠깐 졸았다.

그러고 눈을 뜨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혹시.. 정말로 코로나?


기도를 하고 온 엄마와 동생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럼 다 같이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숙소로 향했고, 가는 길에 전날 가이드에게 추천받았던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도 포장했다.

이 가게에도 줄이 길었다.



엄마와 동생에게 나를 신경 쓰지 말고 나갔다오라고 말한 뒤,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5시쯤인가, 가벼운 몸으로 잠에서 깼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엄마와 동생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와 동생의 시간이 아까워 답답하기도 하고, 괜히 나 때문에 여행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저녁으로 낮에 사 온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를 먹었다.

솔직히 설명으로 들었을 때는 그게 맛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하지만 엄마는 빵은 배가 부르다며, 오징어튀김만 케첩에 찍어 먹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오늘은 정말 한 게 없었다.

아쉬우니 마드리드의 야경이라도 보러 가자 제안했다.

하지만 오늘의 울적한 내 감정이 엄마에게도 옮은 건지 엄마는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결국 동생과 둘이서 나가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저녁에 봐야 아름답다.

이번에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다가, 데보드 신전에 가보기로 했다.


데보드 신전은 이집트가 재정적인 면과 고고학적인 면에서 이집트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 스페인에 통째로 기증한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다.

그리고 데보드 신전으로 말하자면, 한 SNS에서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별 거 없는 여행지’다.

궁금했다. 얼마나 별 거 없는지 가보자고!



데보드 신전은 레티로공원 안에 있었다.

공원은 다른 광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밝은 광장을 지나 어두컴컴한 계단이라니, 으스스했다.


우리는 주먹을 꽉 쥐고 공원 위로 올라갔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원에는 조깅하는 사람들도,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끌벅적한 광장과는 달리 평화로웠다.


공원에서 데보드 신전은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데보드신전


데보드 신전은 정말 저게 다였다.

낮에 신전 내부도 관람할 수 있다고는 하나, 신전 내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허무했고, 왜 세상에서 가장 별거 없는 관광지로 뽑혔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데보드 신전은 바닥에 물이 살짝 고이면, 물에 비치는 신전의 모습이 꽤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바닥이 아주 건조하게 말라있었다.


정말 별 거 없네.


그럼에도 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었다.

영상을 찍는데 방해하지 말고 비키라는 동생의 성화에 나는 공원의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마드리드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우와!


처음으로 마드리드라는 도시에 마음을 열게 된 순간이다.


멀리 마드리드 왕궁과 알무데나 성당이 보였다.

그래서 마치 세계 3대 야경 명소라는 프라하의 야경을 보는 것만 같았다.

계속 마드리드에 정을 주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는데, 이제야 마드리드의 매력을 조금 알겠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야경을 즐겼다.


어떤 도시든, 야경은 낭만적이다.



한편,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은 오지 않았다.

다시 신전쪽으로 향하니, 신전 옆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왜 이러고 있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왜 자기만 두고 사라졌냐’고 타박했다.

동생에게 저 뒤로 가면 멋진 뷰를 볼 수 있다고 달래며 아까의 뷰포인트로 데려갔다.


우리는 영화 ‘주디’에서 르네 젤위거가 부르는 ‘Over the Rainbow’를 들으며 야경을 감상했다.

동생은 영상을 찍어야 하니, 음악 소리를 줄이라고 했다.

정말 어렵다.


오늘 하루 종일 마드리드는 내게 너무 차갑고 낯선 도시였는데, 공원 아래서 내려다본 조명이 가득한 밤의 마드리드는 따뜻한 도시였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동생이 스페인 광장 맞은편에 있는 한 호텔을 보고 감탄했다.

동생은 저 호텔이 지금껏 본 건물 중에 가장 예쁘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 많고 많은 유럽의 고전적 건물들 중에 최근에 지어진 것 같은 저 고층 호텔 건물이 좋다고?

그렇다고 한다.



스페인광장 맞은편의 리우호텔 (사진출처 : 아고다)



동생은 뉴욕처럼 초고층 건물이 가득한 동네를 좋아하겠다고 생각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엄마는 여전히 소리 없이 스페인 방송을 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쉬고 싶어 했다.



엄마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켜놓고, 정작 나는 마드리드의 매력을 깨달아버렸다.

그렇게 마드리드의 절반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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