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에게
(George Goodwin Kilburne, Penning a Letter)
어릴 적 단골 방학숙제는 뭐니 뭐니 해도 독후감이었다. 매일 써야 하는 일기 다음으로 난 그 숙제가 싫었다. 나한테 글쓰기라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경필 대회, 그러니까 글씨를 ‘바른생활’에 나온 글씨처럼 쓸 줄 아는지를 테스트하는, 그 대회의 연장선 같은 거였다.
엄마는 내가 처음으로 한글 자모를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을 때는 여느 부모님처럼 몹시 대견해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의 첫 아이였으니 내가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게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자라는 것을 보시면서, 글씨 쓰고 읽는 게 당연해지는 나이가 되고부터는 엄마도 욕심이 나셨을 것이다. 이왕이면 예쁘게 쓰면 좋지 않은가. 그때 아마 ‘궁서체’라고 했던 것 같다. 경필 대회를 준비할 때, 엄마는 내 책상머리에 바짝 당겨 앉으셔서는, 이렇게 써야 해, 그렇게 쓰면 안된다니까하시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엄마가 직접 쓰면서 보여주셨다. 그러나 난 고집 센 아이였다. 난 내 눈에 ‘바른생활’에 나오는 글씨라고 생각하는 글씨를 썼다. 엄마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던 말은 언제나 진리이긴 하다. 엄마가 잘 쓴다고 하셨던 같은 아파트 5층에 살았던 친구 이민영은 금상을 받았고, 난 참가상이라며 있지도 않은 상을 스스로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봐, 엄마 말 맞지?라고 확인사살 하셨을 법한데,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내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으며, 나에게 내가 그랬듯이 엄마도 내게 마음으로나마 참가상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아님, 아직 밑으로 동생이 둘 더 있으니 훗날을 기대해 보겠어 다짐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난 대회라는 것을 나갔다. 난 내가 대견했다.
아마 그 이후로는 원고지 몇 매, 뭐 이런 분량을 주고는 권장도서 뭐뭐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숙제를 받으면, 대부분은 엄마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독후감이라는 게 어떤 형식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렇게 쓰지 않으면 지적받는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 맘대로 못 쓸 바에 엄마를 귀찮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엄마는 마지못해 도와주시는 것을 잘 알았던 것 같다. 정해진 기한 내에 숙제를 내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 쓰는 숙제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고2가 되면서 당연히 이과를 지원했다. 고3이라는 운명적인 시간이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글 쓰는 숙제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이 것이 나의 어린 시절 글쓰기였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뉴욕에 온 처음 몇 년은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던 것 같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나와 내 여동생은 각각 연구원과 국어 선생님으로서 일하고 있다. 당신의 두 딸이 전문성을 가진 여성으로 크길 원하셨던 엄마의 꿈도 나름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기대였지 엄마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원서 쓸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왜 가정학과 가셨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는 대학 갈 때 소설가가 되고 싶어 국문학과를 지원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권유로 가정학과에 진학하셨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흔히 지원학과를 쓸 때 대부분 성적에 맞추어 쓰게 된다. 엄마도 그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소위 상식이란 이름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으니까, 무조건 가정학과 가라고 하셨는지 모른다. 게다가 엄마 주변에는 엄마의 꿈에 대해 관심 가져주는 가족이나 친구, 선배들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 시절의 젊은이들은 장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게, 또는 꿈을 위해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꾸준히 시도해보는 것 자체에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세대였던 것 같다. 온 나라 가경 제성장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다행스럽게도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대학 등록금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으신 신 남성이셨다.
그렇지만 그때 누군가 엄마에게, 그래도 국문학과 지원해보라고 엄마를 거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그 꿈에 대해 간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 인생에 처음으로 전공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능동적인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엄마는 어찌해야 할지 잘 몰랐던 어린 소녀였으니까 말이다.
나의 고3 시절을 생각해보니, 난 오히려 반대로 쓸데없는 애 어른이었던 것 같다. 얼마든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을 부모님도 계셨고, 친구와 선배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대한민국은 IMF였다. 우리 가족도 그것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국립대 가는 것이, 그리고 재수는 하지 않는 것이 나와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난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난 사실 오랫동안 아무도 나에게 재수하라고 설득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서른 즈음 이었나 여동생이 그랬다. 가족들이 그렇게 재수하라고 했는데도 내가 안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엄마도, 나도 좀 더 모험심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탐험가 같은 기질이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엄마도 나도, 재수해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엄마도 조금만 더 용감했더라면 국문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엄마는 선생님께서 권유하시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셨던 것 같다. 혹시라도 엄마가 국문학과에 지원했는데 만약 떨어졌다면, 할아버지가 엄마의 재수하는 것까지 지원해주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에겐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스스로 학비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도 더 열악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수능을 망쳤을 때, 부모님의 지원 없이 재수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 예전보다 좀 더 여자에게, 또는 여러 번의 실패에도 계속 도전해봐도 되는, 나름 관대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재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고3 생활을 되풀이할 엄두가 나지 않았거나. 뭔가 또 다른 길이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잠시 교사로 일하시다가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시고 자녀 셋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셨다. 그때는 여자에게 결혼하는 것과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동의어였던 시대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살아보니 그게 그렇지 않더라 싶으셨던 것 같다. 두 딸에게는 결혼해도 꿈을 펼쳐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말씀하셨더랬다.
많이 늦었지만 엄마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이제라도 도와드리고 싶다. 엄마의 부모님은 엄마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잘 모르셨다. 세상의 모든 딸들의 꿈은 결혼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시대를 사셨던 분들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남매들이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꿈을 도와드리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부모님만 자녀들을 지원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젠 아빠랑 우리 남매들도 엄마를 응원해드릴 수 있다. 나는 엄마가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
엄마만 응원한다고 아빠가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딸이라서 그런지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엄마의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와 같은 것이다.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탯줄 같은 것이다. 엄마의 꿈을 내가 대신 이루어 드리고 싶은 게 아니다. 혹시라도 이번에도 겁이 나서 주저하실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글이라는 게 일정한 형식이 있어서 그렇게 쓸 줄 모르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글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아니면 그 이전에 내 어린 시절 숙제로 해 간 내 독후감을 읽는 담임선생님이 빨간 색연필로 쭉 그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같은 게 어린 시절에 있었다. 지금도 난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렇지만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이대로 풀어내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내 글들이 시로, 수필로, 소설로, 시나리오로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도록 나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이다.
글 쓰는 것이 엄마가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기여도 좋고 시여도 좋다. 소설이면 더욱 좋겠다. 무엇보다도 엄마 자신을 위한 글이면 좋겠다. 힘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