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닮아가다, 마음을 담다.
Keith Jarrett (Piano), Gary Peacock (Bass), and Jack DeJohnette (Drum), Photo by Sven Thielmann / ECM Records
오늘도 그놈 때문에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에 핏발이 선다. 본인의 모든 스트레스를 교묘하게 나에게 풀었던 교활한 놈. 나이만 많으면 다냐. 네가 내 직장상사라도 되냐. 어떻게 하면 단어 하나하나에 기분 나쁜 감정을 저리도 잘 실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저토록 널뛰게 할 수 있는지. 이젠 눈물도 안 난다. 그저 사무실을 나와 회사 로비 바닥이 닳도록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한다. 더 대들었어야 했는데, 멱살이라도 잡았어야 했는데. 대체 뭐가 무서워서 못한 거지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 화를 쏟아내야 될 대상은 그 놈인데. 나 정말 구제불능이다. 혼자 화내고 혼자 상처받고 또 나를 혼내고 있다.
그녀다! 그가 나를 발견했다. 로비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J. 그는 덴마크에서 왔고 내 또래이고 어두운 금발에 키가 2미터인 누가 봐도 바이킹의 후예이다. 아무리 사람 많은 곳이라 하더라도 난 J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 J가 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예외다. J가 먼저 날 발견한다.
What's up? 인사한다. 거슬린다. How are you?라고 인사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하마터면 울어버렸을 것이다. 내 얼굴을 읽는다. 내 손목을 끌고는 저기 있는 의자에 앉힌다. 털썩.
J는 어차피 날 이해할 수 없다. 우린 그저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같이 퇴근하고 같이 논다. 우리 둘 다 몇 년 전 비슷한 시기에 뉴욕에 왔다. 평생 볼 공연을 지금 다 보자며 우리 회사의 유일한 복리후생인 할인 티켓을 성실하게 이용하고 있다. 공연을 보면서 무슨 대화가 그렇게 필요하겠는가. 오늘도 역시 재미있었어 그 한마디면 족하다. 가끔은 사는 이야기도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 대화를 시작하지만 이내 동료에 대한 뒷담화에 이미 흥에 겨워있다. 동료가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주옥같은 패턴이다. 기가 막히다.
오늘은 다르다. 오늘 J는 동료도, 친구도 아니다. 그냥 외국인이다. 한국의 나이 문화를 모르고서는 그 상황을 J, 네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설명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나 할 말 없어. 의자에서 일어선다. 다시 앉힌다. 언어라는 것이 생각의 속도와 말하는 속도를 결정하지 않은가. 어디 속도만 그런가. 생각의 표현과 말하는 방식도 언어가 결정하지 않은가. 영어가 피곤하다고 지금. 기껏 생각해낸 핑계가 이렇다. 나 프로젝트 미팅 있어서 가야 해.
이미 J는 내 얼굴을 읽었다. 얘기를 듣겠다고 한다. 그래 뭐. 원한다면 내게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이야기해 주겠어. 한국 문화에서는 잘잘못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게 바로 '나이'다. 논쟁 중에 왜 나이가 중요해 그게 왜 그런 건데 질문한다. 그냥 그런 거다. 너랑 다른 문화다. 오히려 날 설득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니 다음번에는 꼭 싸우라고 그런다.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이제 나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다. 아. 내가 아는 슬픔, 안타까움, 분노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는 이미 말하는 속도를 앞질러버린다. 말하는 속도는 이제 생각의 속도와 경쟁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가뜩이나 속상한데 이 걸 말로 못하고 있는 내가 더 밉다.
내 얼굴을 다시 본다. 진짜 시뻘겋기는 한가보다. 처음 보냐? 내 의자를 자기 앞으로 당긴다. 한국말로 이야기해. 잘 못 들은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한국말로 이야기하라고? 잠자코 듣겠다고 한다. 나 참, 넌 한국말 모르잖아. 순간 J의 표정은 이미 다 아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 나는 어땠는지 조목조목 한국말로 다 이른다. J는 적당한 순간마다 적절한 추임새로 나를 듣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J의 눈동자 색깔이 파란 하늘 색인 것을 알았다.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J는 자신의 큰 키 때문에 남들보다 큰 키를 버티는 척추가 늘 아프다. 앞을 잘 보아야 한다. 안 그러면 문이나 난간에 부딪치기 일쑤다. 자전거를 타면 엉거주춤 앉아서 페달을 밟아야 한다. 난 그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기엔 목과 허리가 너무 아프다. 식당의 좁디좁은 2인용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을 때면 그의 다리가 자꾸 부딪친다. 둘 다 우유부단함의 끝을 달리는 성격 탓에, 식당을 결정하는 것도 원하는 공연의 좌석을 선택할 때도 한 시간 안에 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은 나의 작은 키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J는 이미 그러한 시간들을 지나왔다. 척추가 아픈 이유다. 큰 마음을 감당할 마음의 뼈대가 더 단단해지는 중이다. 쑥쑥 자라서 나도 앞을 주의 깊게 보아야만 벽에 부딪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도 꾸부정하게 앉아서 다른 사람의 보조를 맞추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 나도 척추가 아팠으면 좋겠다.
자, 이제 일하러 가자. 너무 놀았어,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