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슈퍼히어로 같은 분을 만날 때가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악당과 맞서 싸우는 힘센 영웅, 슈퍼히어로는 항상 약자를 위해서 자신의 위험을 무릅쓴다. 전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나의 영웅이 되어준 한 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의 슈퍼히어로는 내 나이 마흔이 될 때 만났다. 나이도 적당히 먹어서 산전수전은 다 겪었다고 착각할 때 새로 이직한 낯선 환경에서 생각지도 못한 왕따를 당했다. 마흔이면 인간관계, 처세론 책을 써도 모자란 시기에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말을 어디서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같은 팀 여직원 4명이 메신저를 하면서 키득키득거리는 소리와 키보드를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진다. 이 불쾌한 느낌을 뭐라 표현하기도 애매했다. 양 옆으로 "x발", "미친 거 아니야?", "미친년", "똘아이".... 콧웃음과 욕설이 섞인 혼잣말들이 계속 들렸다.
사무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팀장과 다른 남자 동료들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제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시하면 그들도 하다가 지치겠지 했던 나의 순진한 생각과 다르게 점점 상황은 나빠졌다. 화장실을 갔다가 자리에 돌아온 어느 날엔 의자에 물이 쏟아져 있었다.
유난히 힘들었던 아침, 평소 업무 때문에 가끔 만나서 커피를 마시던 다른 팀 과장님에게 팀 내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곧 후회를 했다. 내 상황이 부담되어 나를 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전해 줄 것이 있다며 사무실 앞으로 나오라고 한 것이다. 나갔더니 맛있는 빵집에서 '오징어 먹물 치즈빵'을 사 왔다며 나에게 빵 봉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빵을 받고 내 자리에 오는 그 길이 그렇게 긴 줄 몰랐다.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가 나의 슈퍼히어로가 된 것은.
그날 이후 과장님은 자신이 친한 다른 직원들을 열심히 내게 소개해 줬다. 회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출근길 아침에 과장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디만큼 왔어요?"
"커피 주문받습니다!"
누군가 회사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축 처진 어깨와 발걸음에서 힘이 났다. 나의 슈퍼히어로는 이렇게 내 인생 힘든 시기에 '짜잔~'하고 나타났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과장님 같은 멋진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과장님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 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지옥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천국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사람이 더 좋아졌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인정하게 될 줄도 알고 그로 인해 나를 더 이상 자책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보석 같은 분들을 만나는 일들이 너무 즐겁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좋다.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과장님처럼 누군가 어려움을 겪을 때 약자의 편을 들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