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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애의 안티, 아빠

신데렐라보다 이른 귀가

by 우스갯소리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자정을 넘기면 안되었지만, 나는 귀가 시각이 열시만 넘어가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즉 연애하기에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그 환경에 굴복했다면 결혼은 평생 물 건너간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의 신념을 지닌 아빠와의 전면전은 피하면서 비밀 연애를 하는 방법은 이십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터득해둔 터였다.


그러나 간과한게 있었다. 연애의 시작에 상대방에게 너무 집중해버린 나머지, 귀가를 독촉하는 아빠의 연락이 올 시각을 망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의 손을 잡고 밤길을 걸으면서 시간 감각이 희미해진 까닭에, 주머니에서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을 감지하지 못했다.

부재중 전화가 4통.

서둘러 아빠에게 전화했을 땐, 아빠는 몇 차례의 전화를 받지 않은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지금 집 근처이니 곧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아빠는 나를 기다린다고 무작정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늦은 밤 딸의 안전한 귀가가 걱정되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혹 나를 기다리는 아빠와 마주칠까 남자친구를 재빨리 집으로 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대체 뭘하느라 전화도 안 받았냐는 아빠의 서슬 퍼런 질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갔겠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나 연애해! 남자친구랑 동네 한 바퀴 돌고 있었어."

연애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연애한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기대치 않았던 딸의 돌발 선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은 놈이었으면 밤이 이렇게 늦었는데 진즉에 들여보내 줘야지, 안 봐도 알겠다."

정말 아빠스러운 발상이었다.


내 나이 서른.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자 부단히 애썼고 가까스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한 참이다. 아빠의 성난 피드백을 듣고 있자니 당최 내가 결혼이란걸 할 수 있을까 싶은 착잡한 마음이 밀려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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