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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결혼하고 싶어

나도

by 우스갯소리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만 연애 초반 아빠에게 나의 연애 소식을 알림으로써 얻게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거짓으로부터의 해방이요, 둘째는 아빠의 강화된 예의주시다.


이전까지 나는 남자친구를 남자친구라 부르지 못했다. 데이트를 하는 날 부모님이 어디 가냐고 물으면 '남자'를 빼서 친구라고 말하다가, 상황에 따라 그를 내 단짝 친구의 이름과 성별로 둔갑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야 연애를 지속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는건 이부자리에 실수를 한 것마냥 늘 찜찜한 기분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부모님께 연애한다고 솔직하게 밝힐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때까지 자녀의 연애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아빠의 명분은 이랬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해야 해서, 20대에는 취업을 준비해야 해서, 그리고 전세기적으로 믿을만한 놈이 없어서. 당최 학생이나 구직자가 왜 연애를 하면 안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학생도 구직자도 아니었다. 아빠의 표현대로라면 믿을만한 놈을 만나면 되는거다. 내 기준에서 믿을만한 놈을 만났고, 떳떳하게(실상은 홧김에) 연애 사실을 알렸다. 고로 아빠는 연애를 반대한 세월의 관성으로 인해 연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연애를 반대할 표면적 명분은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짓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아빠는 말없이 이전보다 나를 더 예의주시하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연애 선언 후 굳이 부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고,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아빠에게 어떤 명분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기에 귀가 시간이 늦어지지 않게 조금 더 신경 써야했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비밀 연애보다 공개 연애가 훨씬 좋았다. 데이트를 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후련했는지,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 내가 남자친구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데이트를 하는 시간에도 집에서 언제 연락이 올까, 뭐라고 말할까,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와 나는 꽤 잘 맞는 상대라는걸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성이 같은 곳을 향해 있었고, 사소하게는 집 주변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집돌이와 집순이여서 생활 패턴으로 부딪힐 일이 없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이 든 건 섣부르게도 첫만남부터 였는데, 연애한지 한 달 무렵이 되자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애 초기에는 누구든 설렘으로 콩깍지가 씌이는 시기이지만 설렘과 결혼상대자로의 인식은 별개의 느낌이다. 그 사람과의 장기적인 미래를 꿈꾸고 꽤나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되는 거다. 다행히도 이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는지, 그가 또다시 귀를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그는 나를 만두라고 부른다.)

"섣부르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만두랑 결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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