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한달살기 1-
작년 아내와 함께 육아휴직을 하면서 줄기차게 다녔던 여행은 복직으로 인해 일시중지 상태였다. 주말에라도 여행을 다녀야 했지만 작년부터 평일을 이용하여 길게 여행 다니는데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 주말에 비싼 돈 주고 복잡한 곳으로 짧게 여행하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영화, 장보기, 도서관 가기 혹은 집에서 쉬면서 여행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어디라도 가야 할 텐데 고민하다가 [남도에서 한달살기] 공고를 보고 다시 여행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작년에 서산, 창원, 거제도, 진도, 제주도 등 한달살기를 이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수에 한달살기 참가신청서를 제출하였고 합격하였다.
한달살기 여름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짐쌀 때 옷가방의 부피가 작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가자며 욕심을 내서 짐이 캐리어 3개 택배 박스 2개 그리고 킥보드까지 챙겨 여수를 향하게 되었다.
숙소는 여수 웅천의 생활형 숙박시설을 선택했다. 여름방학이면 성수기라 관광지 인근의 숙소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런데 웅천 지역의 숙소는 가격이 합리적이었고 주요 관광지와도 20분 이내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바다와 가깝고 작은 해운대 느낌마저 나는 여수의 신흥 주거지역이었다.
한달살기는 여행과 일상 그 중간 어디쯤이다. 한 달 내내 여행만 다닐 수도 없고 삼시 세끼 외식만 할 수도 없다.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일이 생기고 빨래와 설거지 그리고 청소까지 그 일상을 여행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녀와 함께 여행한다면 교육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장기여행 숙소를 정할 때 주변에 마트와 도서관도 가까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숙소 근처에는 여수 농협하나로마트와 이순신 도서관이 5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한달살기를 하면서 여행을 쉬는 중에는 집안일을 하거나 인근의 마트와 도서관을 다니며 일상을 보냈다.
폭염 재난경보 문자가 오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이번 여름. 점심즈음에는 야외활동을 하기에 무리였다. 그래도 여행지 와서 하루종일 에어컨 쐬며 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폭염 속에서도 여수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여수는 누구나 설레는 밤바다가 있었고 엑스포역 주변에 다양한 실내 여행지가 많았다. 우리는 가장 무더운 시간대에는 쉬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다녔고 해수욕과 여수밤바다를 즐기며 폭염을 최대한 피해 여행을 즐겼다. 여름에도 여수는 다닐 곳이 많았고 피서지로 좋은 여행지였다.
작년에는 진도에서 한달살기를 했었다. 진도는 상대적으로 여행지로는 덜 알려져서 내가 움직이는 대로 새로운 여행코스를 발견하고 개척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한해 여행객이 천만명이 넘는 여수는 이미 여행코스 정보가 많았고 나도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여수에서 이미 유명한 여행코스만 다녀도 한달살이로는 부족할 만큼 여행콘텐츠가 많았다.
그래서 유명한 여수의 여행지를 다 둘러보기보다는 여행객들에게 그나마 좀 덜 알려지고 조용한 여행지를 다녀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가시리 갈대밭, 봉화산 미평산림욕장, 여수갯벌노을마을, 여수와 고흥사이의 섬들을 다리로 이은 백리섬섬길이었다. 이곳은 타지 여행자들의 방문이 적은 만큼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잘 간직된 편이었고 우리는 한적함을 즐길 수 있었다.
여수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보니면 여순광 시민 입장료 할인이라는 안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여순광은 전라남도 동부의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말이었다. 작년에 창원 한달살기를 다녀왔었는데 창원은 마산, 진해가 통합된 인구 100만의 특례시였다. 여수, 순천, 광양도 합치면 인구가 70만인데 어쩌면 통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쨌든 서로 인접해 있어서 왕래하기 편한데 우리 숙소에서 순천만국가정원까지는 3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수에서 순천까지도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수에 인접해 있는 도시가 하나 더 있는데 그곳은 바로 고흥이었다. 원래 지리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여수시 화양면과 고흥군 영남면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바다 위를 달려 섬을 건너며 고흥으로 갈 수 있다. 이 다리를 통해서 가면 우리 여수 숙소에서 고흥우주발사전망대까지 한 시간이었다. 이 다리가 없었으면 40km를 더 돌아가야 했다. 고흥까지 거리가 줄어든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멋진 바다와 섬 그리고 웅장하고도 유려한 다리의 모습이었다.
남해안은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곳이 매우 많다. 여수 역시 이순신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았다. 우선 이순신공원, 이순신대교, 거북선대교 이순신시립도서관 등 지명이 이순신과 관련된 것이 많았고 아이와 함께 다녔던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대부분 거북선이나 판옥선 모양이었다. 유적지로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본부로 사용하던 진남관, 거북선을 처음 만든 선소유적지, 이순신 어머니가 살던 집이 있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은 이순신 광장이었다. 하지만 이 중 진남관은 현재 복원공사 중이었고 선소유적지와 이순신 어머니 생가는 작은 규모로 단기 여행자들이 일부러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순신 광장에 거북선이 놓여있는데 거북선 내부 입장객보다 광장 앞 딸기모찌집에 여행객들이 더 길게 줄을 서있었다. 여수의 다양한 여행콘텐츠에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여수의 역사가 가려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여행 말미에 여수 문화재야행이 진남관 일원에서 열렸다. 진남관이 아직 복원공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여수에서 이순신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가 중점적으로 더 개발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고 나도 약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수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여수 밤바다가 유명해지기 전 군대 휴가 때 혼자여행을 했었고 아버지 환갑 때 가족여행으로 왔었다. 작년에는 아이와 함께 봉황산 자연휴양림에 2박 3일 들렀었다. 그리고 이번 여수 한달살기가 네 번째 여행이 되었다. 한달살기를 통해 여수에 대해 느낀 점은 앞으로도 새롭게 만들어질 여행 콘텐츠가 많다는 것이다. 단기 여행자라면 여수 여행할 때 엑스포 인근 관광지와 유명한 맛집 들리기도 바쁠 텐데 새로운 여행 콘텐츠가 많이 생긴다면 여수여행을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
마침 여행 기간 중에 여수 돌산에 스타벅스 스페셜스토어가 생겼다. 스타벅스 스페셜스토어는 전국에 몇 개 없다는데 여기에 생긴다니 처음에는 의아했다. 일단 나는 한달살기라 시간이 많아서 오픈날 가서 1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갔다. 돌산점에만 파는 시그니처 메뉴를 먹으며 여기에 스페셜 스토어를 왜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여수 돌산은 2026 섬엑스포 개최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수에 문화 관광 콘텐츠가 더 발전하리라는 것을 기업도 계산을 끝낸 것이다. 그래서 나도 계산을 끝냈다. 나에게 이번 여수 여행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에 만날 변화된 여수의 모습을 기대하며 여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