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fulness May 05. 2020

온 마음을 다한 사랑

[영화] 2: 노트북  

    

[영화] 2: 노트북 (The notebook, 2004)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는, 기품이 넘쳐흐르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부터 영화 '노트북'은 막을 연다. 그의 눈망울에는 마치 일평생 한 사람만을 그리워한 듯한, 아득한 시선이 서려있다.


    이어 "온 마음과 정신을 다 해 한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는, 스스로의 삶에 확신을 가진 노신사가 등장한다.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던 여인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러 온 그는 마치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손때가 묻어나는 오래된 수첩(노트북)이 들려있다.


노신사와 한 여인의 모습.



    노아는 목재를 가공하며 한 시간에 고작 30센트 만을 벌어들이는 빈민층이며, 엘리는 지역을 대표하는 부흥 가문의 딸이다. 놀이공원에서 만난 이후, 시종일관 엘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노아를 미처 거절하지 못 한 채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었고, 세상을 다 가진 듯했으며, 타오르는 사랑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생을 함께 할 것처럼 서로를 위한 순간에 최선을 다 했다.  


너무나도 풋풋한 노아와 엘리의 해변가 데이트씬.



    하지만 그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온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대저택에서 사랑을 나누려 했던 그들이었으나, 엘리의 머릿속은 스스로의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으며, 노아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엘리의 늦은 귀가에 분개한 엘리의 부모님으로 인해 동네가 뒤집어지게 되고, 결국 노아와 엘리는 엘리의 집으로 향한다.


    노아를 거실에 둔 채, 엘리의 어머니는 엘리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이 고함을 친다. 너의 분수에 맞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노아는 갈등을 이겨내지 못 한 채 집을 박차고 나온 엘리에게 다가가지만, 결국 감정이 격해진 엘리는 헤어지자는 통보를 남기게 된다. 다음 날, 엘리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향하게 되지만, 노아에게 사과 마디 없이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노아의 작업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엘리는 노아가 아닌 노아의 친구에게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노아의 곁을 떠난다.


    노아는 엘리가 떠난 뒤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엘리에게 편지를 남긴다. 하지만 엘리에게서는 답장 한 통 오지 않았으며, 노아 역시 엘리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후 노아는 전쟁에 지원하게 되고, 전쟁 수당으로 엘리와 사랑을 나누었던 낡은 대저택을 사들여 새롭게 리모델링할 것을 다짐한다.


   언젠가 엘리가 "호수가 보이는 하얀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엘리의 꿈을 이루게 된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신문에 기고된 노아와 하얀 집의 모습.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진다



   독자 모두가 예상 가능하듯이, 그들은 다시금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뉴욕으로 향한 이후 만난 약혼자와 결혼을 앞둔 엘리는 신문을 통해 노아의 하얀 집 완공 소식을 접하자마자 노아에게로 향한다. 뉴욕으로 떠난 이후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한 그들이었지만, 노아는 쉽사리 엘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엘리에게 가졌던 애틋함과 간절함이라는 감정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원망과 허무함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 노아는 엘리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호수로 향한다.


   여기서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자, 노아와 엘리의 청춘에 몰입하던 관객들을 일순간 감정의 소용돌이로 안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비 오는 호수에서 서로를 마주한 노아와 엘리


   보트를 타고 호수 위를 거닐며 그간의 세월을 털어놓는 그들의 위로 거센 빗줄기가 몰아친다. 그럼에도 노아와 엘리는 쏟아지는 비를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미소를 보이며 그들 위로 드리운 빗줄기를 있는 그대로 맞아들인다. 그동안 쌓였던 노아의 설움과 애절함,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없었던 엘리의 가면을 모두 다 승화시켜버린 빗줄기 속에서, 그들은 오롯이 단 둘만의 존재로 존재한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서로를 향한 마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호수를 빠져나온 그들은 서로의 앞에 마주한 채 지나간 세월을 힘껏 받아들인다.


   이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온 마음을 다한 사랑이라는 구절이 가지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마음을 다 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내면에 위치한 진실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상대의 진실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노트북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시골 출신 가난한 남자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부자 가문의 여자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부모의 반대, 물리적 거리의 멀어짐 등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등장해왔던 소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초반부에 흡입력을 잃어버릴 관객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라이언 고슬링의 앳된 모습이 주는 흥미로움(?)과 레이첼 맥아담스의 풋풋함이 아니었다면, 러닝타임을 채우지 못할 뻔했다.


   이러한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끝난 이후 관객의 내면에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황혼과 청춘의 교차'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끝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이야기를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영화 내내 노아와 엘리의 '청춘'과 '황혼'을 오가며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타자화' 작업을 시도하고, 결국 영화의 끝에서는 그들의 청춘과 황혼이 하나 됨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방식이다. 청춘은 언젠가 황혼을 맞이하고, 황혼기에 접어든 누군가에게도 청춘은 존재했다. 사랑을 하는 것에는 청춘과 황혼에 있어서 다름이 없다.


 

운명을 함께 하는 노아와 앨리.


   결국, 노아와 앨리는 두 손을 꼭 붙든 채 서로의 운명을 함께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아와 엘리와 같이,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랜 세월을 함께 한다는 시간의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단 한 명의 반려자와의 무한한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공간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함께할 시간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불변의 속성을 갖지만, 함께할 미래를 그려나가는 공간은 서로의 의지에 따라서 무한하게 변화될  있는 가변의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결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일상을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원초적 욕망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최선의 사람을 택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 하고, 고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선택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라 굳게 믿는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문장에는 맹점이 들어있다.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결함은 존재하며, 누군가에게 결함으로 인식되는 부정적 요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성 혹은 자랑거리와 같은 긍정적 요소로 받아들여질 다. 나는 상대의 결함이나 단점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좋은 사람이 되더라도 상대의 어두운 면에 집중하기보다 밝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스스로의 밝은 면을 돌아볼 줄 아는, 스스로의 마음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타인의 어두운 면까지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평생 온 마음을 다 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자연스레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며, 완벽한 상대를 만나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그려내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소중하게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은 타인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의 주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영원한 사랑'이나 '온 마음을 다한 사랑'과 같은 고귀한 가치는 결코 자연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나의 행위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필연적인 것이다. 혹여나 평생 함께할 것을 기약한 사람이 있거나 기약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에게 있어서 '온 마음을 다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지 꼭 한 번 생각해볼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망각의 축복, 그리고 영원한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