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각자가 각자의 일정으로 바쁜 나날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얼굴을 마주하긴 어렵겠구나, 조금은 아쉬운 찰나였다. 그래도 생각이 나서 말했다.
“잠깐 비는 시간이라도 저녁을 같이 먹으면 참 좋을 텐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하던 일이 마무리되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기 전, 30여분을 운전해서 나를 데리러 왔다.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는데 일단 만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 한 시간 삼십 분.
우선은 차를 출발하며 그가 말했다. “어디로 갈까? 좌회전? 우회전?” “어어… 이 동네 잘 안 돌아다녀서 잘 모르는데… 아 일단 우회전!” 식당가 쪽으로 가서, 바쁜 일정으로 늘 끼니를 대충 때우는 그가 따뜻한 밥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 가족이 즐겨 먹던 대구뽈찜 집을 향했다.
그런데 맙소사! 마침 오늘이 딱 휴무일. 어디 가지… 차를 다시 돌려 가다가 떡볶이를 얘기하는 남자친구 말에 퇴직하신 공무원 출신의 사장님이 운영하는 아주 깔끔한 분식집에 가서 샐러드 참치김밥과 라뽂이를 시켰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자친구가 떡볶이를 좋아하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말한 것 같았지만… 먹고 싶다고 말하며 가자고 하는 그의 말에 그 당시엔 열심히 그 집을 떠올려서 같이 갔다.
서로 김밥에 떡볶이 소스를 찍어 라면사리를 돌돌 올려 입에 넣어주니 남자친구가 깨소금 볶는다며 스스로 말하고 웃어댔다. 요 며칠 입맛이 없어 밥도 잘 안 먹고 깨작깨작 양이 줄어든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신경 써주고, 웃게 만드는 그가 참 고마웠다.
그런데 그 사이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걸어 나왔고, 이번엔 내가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서 베스킨에 가서 좋아하는 맛을 고르는데, 남자친구의 취향은 확고했다. 아몬드 봉봉, 엄마는 외계인, 뉴욕치즈케이크. 마지막에 슈팅스타나 그런 것들. 좋아하는 맛으로 실컷 고르고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골랐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큰 사이즈를 매장에서 다 먹을 수 있냐는 말에 남자친구는 가능하다고 말하더니, 진짜 찬 거, 단거 잘 못 먹는 내가 일찍이 숟가락을 놓자 폭풍처럼 다 먹는 게 아닌가. 진짜 진정한 아이스크림 러버구나… 감탄을 했다.
그러면서 무심코 “동전노래방 갈래?”
“아 진작 말하면 포장해서 부르면서 먹었을 텐데! 원래 거기 가고 싶었던 거지?”
“아니야 그냥 생각났어. 여기 오는 길에 보이길래.”
시계를 보며 그가 말했다.
“빨리 가자, 시간 진짜 얼마 없어.”
같은 건물 3층에 올라가 천 원에 네 곡! 우리는 주저 없이 노래를 선곡했고, 서로 주고받고 애드리브를 넣으며 아주 신나게 고음까지 질러대며 네 곡을 알차게 부르고 미련 없이 나왔다.
이제 진짜 시간이 다됐다.
그런데 요 며칠 감기에 걸려있던 남자친구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코를 훌쩍이기 시작해서 원래 우리 집에 들러 주기로 한 물건과 더해서 내 감기약 줄 테니 먹고 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얼른 이동했고, 나는 바쁘게 달렸고 컵에 물까지 떠다가 운전석에 앉은 남자친구에게 약과 함께 건넸다.
그때, 사고가 터져버렸다.
다급한 두 사람의 손길이 어긋나서 그 물 한 컵이 그대로 가랑이에 쫙 쏟아져 버린 것이다.
맙소사,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출발해도 딱 떨어지는 시간이라 옷을 갈아입으러 갈 시간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오, 갈아입고 가면 엄청 늦겠는데”난처해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했다. 그가 일정에 늦어 원래는 받을 필요 없었을 비난을 나로 인해 받을까 봐 마음이 급해졌다. 왜 서로 손을 놓쳤느냐고 다그쳐봤자 남는 건 없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야! 내가 지금 입은 옷 통 큰 청바지, 남녀 공용이야! 이거 입어 우리 바꿔 입자!”
“엥?”
“내가 뒷좌석에서 벗어줄게. 빨리 줘, 난 집 앞이니까 후딱 입고 올라갈게 늦었어 어서!”
남자친구는 당황하면서도 바로 차에 들어가 행동개시하는 나를 보고 허둥지둥 바지를 교환해서 후다닥 입고 우리는 차 앞에 나란히 섰다.
나에겐 너무 큰 바지.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내 바지는 아주 딱 맞았다. 남자친구는 폭소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ㅋㅋㅋ 못 말린다. 여자친구 옷 입고 다음 일정 가는 건 상상도 안 해봤다. 그런데 심지어 잘 맞아 편안해. 자기 키가 커서 크게 입는 옷이 나한테 딱 맞아. 너무 웃겨”
“다행이다. 잘 맞을 것 같았어. 얼른 가!”
“잠시만, 나 이거 평생 못 잊을 것 같아. 이것도 추억인데 사진 한 번만 찍자.”
그 바쁜 와중에 우리는 바지를 바꿔 입은 사진을 찍고, 남자친구는 늦지 않게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남자친구 전화도 웃겼다.
“이 바지 너무 편하고 맘에 드는데 하나 더 사서 우리 커플바지할래? 나 자기 이런 면이 참 좋아. 너무 웃겨. 사랑해. 다녀올게 푸하하 “
어쩜 이리도 긍정적인지.
내가 사고를 쳐도 다그치거나 화도 안 내고, 모든 상황에서 마음을 다해주고 웃는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데. 속상할 뻔한 일도 이렇게 보내는 우리 일상이 즐겁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달려와 나와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내는 그가 사랑스럽다.
고마워, 늘 웃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