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피아노를 배운다고?

by 익호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 매체는 이제 단순한 소일거리를 넘어 삶의 여러 측면으로부터 일상에 스며든지 오래다. 상당한 수준의 전문 지식을 다루는 채널도 심심치않게 볼 수 만나볼 수 있는 최근인데,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접근성의 허들이 결코 낮지 않은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피아노만 보더라도 대면 레슨보다 영상 매체를 통해 배우는 방식에 익숙해진 인구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꽤 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영상을 통해 양질의 정보를 종종 얻는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말이다.


나 역시 표면적으로는 혼자서 피아노를 공부한다는 포지션을 내세우고 있지만, 거기에 엄밀히 말해 전통적인 의미의 ‘독학’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현시대의 독학생들은 눈앞에 저마다의 화면 속 선생님을 모시고 그들에게서 나름의 지식과 연습법을 전수받아 실천하고 있으니, 과거의 독학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띄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영상 매체가 아예 없었던 옛 시절에 비해 현시대의 독학생들이 양질의 정보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일 텐데,

그렇다면 과연 실력 향상의 면에서도 현시대의 독학생들이 과거보다 우위에 있을까?

개인적 체험에 비추어 보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상 매체와 실제 레슨 사이에는 극명한 질적 차이가 있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풀려는 것은 아니다.

초점을 레슨을 제공하는 쪽이 아닌, 받아들이는 쪽에 두어 보자. 유명 연주자의 마스터클래스든, 동네 학원 강사님의 수업이든, 혹은 유튜브 속 크리에이터들의 조언이든간에,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안 지난 취미생에게는 별다른 차이 없는 인풋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르침이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더라도, 받아들일 그릇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대부분이 흘러넘쳐 곧 증발해 버릴 뿐이라는 것.

실력 향상의 골자는 받아들이는 쪽의 그릇에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그릇 키우기’야말로 혼자서 기르기에 가장 까다로운 영역이라는 게 문제다. 레스너의 본질적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영상 매체를 통한 배움은 아쉽게도 이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독학생이 시작 후 얼마 안 되어 포기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릇은 커질 기미조차 없는데, 나날이 과영양의 정보만 들이 붓는 과정만 반복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조기 탈락의 양상을 피아노 전공생 지인은 ‘1년 병’이라고 부른다.

‘그만둔다고 몇 번째 말하시는지? 또 1년병이 도졌나 보네요.’


본질적 그릇을 키워주는 레스너의 부재. 이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영상 매체의 한계는 극명해진다. 어떠한 훌륭한 채널도 일대 다수의 일방통행이라는 굴레를 아직까지는 벗어나지 못했다. 영상 속 레스너들은 시청자 개개인의 현재 수준도, 개성과 약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학습자의 정확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적합한 양분을 마련해 주는 일은 그 어떤 천재 교육자에게도 불가능할 일일 터. 그렇기에 영상 매체를 통한 배움은 늘 일반론에 머무를 뿐이며, 그마저도 피상적인 수준을 넘기기 어렵다.

영상을 통한 레슨에는 한가지 더 큰 함정이 있다. 초보자들이란 높은 확률로 레슨의 의도를 곡해하기 십상이라는 점. 일방 통행인 영상을 통한 배움은 이 곡해에 의한 독창적이고 기괴한 ‘자기류 연습법’을 거의 필연적으로 낳곤 한다. 이는 차라리 포기해 버리는 1년 병을 앓는 게 다행일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치명적인 독이다. 또다시 전공생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짓’이 몸에 붙어버리는 것.


‘거기가 왜 안 된다는 건지 전 이해 못하겠는데요. 혹시 또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니구요?‘

여기서 이상한 짓의 예시란: 핑거링을 매우 독특하게 바꾸는 시도하기, 손목으로 파도쳐서 감성 표현하기, 부족한 연습은 악력기를 쓴 힘 기르기로 보충하기, 그 외 잡다하고 불가해한 고집부리기 등등…


영상물을 통한 배움이 전혀 무익하다고 폄훼할 의도는 결코 없다. 다만, 우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정보를 너무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로 인해 정작 중요한 기본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열 손가락의 완벽한 독립, 몰토 프레스토쯤 콧방귀가 나오는 속주, 눈부신 곡 해석 감각, 귀신같은 초견력... 이런 것들은 어떠한 ‘묘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모든 실력은 기본기에서 시작되고, 결국 기본기로 완성되는 법. 방금 연습한 곡을 한 번 더 반복해 보는 것이, 자칫 무의미한 차력쇼가 되기 십상인 유튜브 속 피상적 꿀팁을 시도하는 것보다 초보자에겐 백번 유익하리라 본다.

물론, 시간이 남는다는 가정하에 새로운 시도를 도입해 보아도 큰 손해는 없겠지만. 정말로 시간이 남는다면 말이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피아노 앞에 줄기차게 앉는 것, 결국 그것만이 왕도가 아닌가 싶다.

영상 속 ‘마법 같은 꿀팁’ 혹은 ‘기적의 연습법’ 같은 달콤한 유혹일랑 저 멀리 물리치고, 하루하루 정직하게 기본기 연습을 진득하게 해 내는 일. 그것이 전부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러나 분명히 본바탕이 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모든 배움에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역설적으로 아무도 쉽게 도달하지는 못하는 그 험한 길 말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잘난 듯 떠들어 보았다. 그러나 나도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형편이다.

오늘은 피아노 앞에 얼마나 앉아 있었나?

답을 회피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에, 서글픈 어른은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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