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후 바뀐 점들
매일 어딘가 출근해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무언가를 했던 직장인이 아니라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시키지 않는 자유인 백수가 되어 바뀐 점은 참 많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거는 요일 감각이 무뎌진다. 늘 주말 같은 날들의 연속이라 오늘은 화요일인지 토요일인지 헷갈린다. 회사 다닐 때는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날짜보다는 요일에 민감했다. 일요일이면 다가오는 월요일이 싫고, 목요일이 되면 곧 주말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이건 주말에 쉬는 모든 직장인이 똑같은 것 같다. 요일 감각이 무뎌지는 거와 함께 날짜 감각도 무뎌진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한 달에 한번 받는 월급날짜 기준으로 이번 달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곤 했다. 지금은 7월 1일이나 7월 12일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루 24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아무리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어도 하루에 8시간은 무언가 매여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게 어떤 날은 아무 일이 없을 때도 그렇다. 누군가 전화나 메신저로 갑자기 무언가를 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이 없어도 늘 대기상태로 불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온종일 24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때릴 수도, 하루 종일 그냥 누워있어도, 내일 당장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상태를 알리거나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주도권을 갖고 쓰는 게 아주 자유롭고 좋다.
점심시간에 집 앞 식당이나 카페에 가보면 많은 직장인들이 많이 보인다. 회사 안 다닌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참 옛날 일 같이 멀게 느껴진다. 다들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걸고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모습이 금세 낯설게 느껴지고 나는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동안 했던 회사의 많은 일들은 참 쓸데없었다 그런 자괴감도 밀려오고 모든 직장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회사로 돌아가 누군가가 지시한 일들을 만들고 어떻게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그 모습들이 안 봐도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이런 백수생활이 좋기만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잠시 공백이 생기면 더 이상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긴다. 백세 시대라 아직 살날이 많은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정해야 하는 조금함도 있다. 하지만 뭐 일단 올해까지는 이런 상황을 즐기기로 한다.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