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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세상, 고립의 기록

폭설의 함정, 강아지의 흔적만 남았다

by 홍천밴드

이렇게 많은 눈은 살면서 처음 봤다. 강원도이라서 눈이 많이 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 50cm는 족히 왔다. 옆집 아저씨도 홍천에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 봤다고 한걸 보면 이례적으로 많이 온건 맞는 듯싶다. 눈이 적당히 오면 눈 오는 풍경은 참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는 단어지만 눈 풍경을 볼 때는 그 단어가 딱 떠오른다. 하지만 눈이 이렇게나 많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을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차가 지나가는 부분만 눈을 치우는데도 조금만 해도 너무 힘들고 다시 눈이 오면 하늘이 원망스럽다.


어제 정오쯤에 마트에 가려고 어찌어찌 눈을 치우고 차에 타서 나가는데 마을 나가는 쪽 언덕에서 차가 미끄러지면서 올라가질 못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과자를 사려다 골로 갈뻔했다. 낮은 언덕도 이러는데 높은 언덕 쪽에 자리 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고립될 수 있겠다. 눈 오는 풍경은 참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내가 그 안 풍경에 들어가면 고생스러운 풍경이 된다.


올해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게 기상이변인 건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된 해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아주 덥거나, 아주 춥거나 이런 날씨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다. 잠시의 추위도 눈도 그냥 맨몸으로는 절대 몇 분 버티기 어렵다.


반 강제 고립되어 눈 오는 창밖으로 바라보는데 난데없는 큰 강아지가 집에 왔다. 줄이 풀려있었는데 집에서 가출한 모양이다. 아주 신이 나서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에어컨 실외기에 오줌을 갈기고 도망쳤다. 강아지는 눈이 춥지도 않은지 신나게 눈 밭을 뛰어다닌다. 머리부터 말끝까지 꽁꽁 싸매고도 난 너무 추웠는데.


제발 눈이 더 이상 안오길 바랬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눈이 더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하의 강추위에 그 많은 눈이 하나도 녹지 않고 계속 쌓여있다. 이번 연휴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때 별다른 문제가 없길 빌어야겠다.


P.S 결국 어제 오후에 다시 도전해서 마트에 가서 고립 대비해 음식재료들을 잔뜩 샀다. 나중에 각종 통조림이나 비상용품들을 구비해 놔야겠다. 언제 또 이렇게 고립될 수 있으니 만전을 기해야겠다.


모두들 무사하길..!

눈 덮인 2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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