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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Mar 13. 2016

우리도 아빠, 엄마가 되는걸까?

2016년 3월 13일 (일)

"이 안에 아기가 있니?"


 구정 연휴 아침의 부엌, 큰 어머님이 가만히 내 배에 손을 얹으시며 물으신다. 부엌에만 들어가면 배에 두손을 모으고 벌서 듯 얼어있는 내 자세가 의심스럽게 느껴지셨나보다. 그건 그냥 정말 주방에서 뭐 하나 할줄 아는 게 없어 멋쩍음 느낀 자세였을 뿐이다. 남편에게 '자세만 겸손하고 내 배가 겸손하지 못했나보다'며 일화로 치부하며 웃어넘겼는데, 이제 생각하니 어르신만이 느끼신 남다른 감이 있었는 지 모르겠다.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가슴이 멍울지기 시작했다. 어김없는 생리증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증상이 조금 달랐다. 겨드랑이에서부터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볼륨따윈 없을 가슴에 이 사치스러운 통증은 무엇인가. 유두를 살짝 비틀어보았다. 저릿함이 느껴졌다. 아랫배가 콕콕하는 통증이 생긴것도 이맘때 부터였다.


 동시에 나는 밤에 대여섯번씩 잠을 깨 로션을 발라줘야 할 정도로 가려움 증세가 심해졌다. 평생을 '아토피'때문 괴로워했지만 이렇게 지독한 두드러기 증상은 처음이었다. 병원에서 타온 두드러기 약을 앞에 두고, 욱씬대던 가슴 생각이 났다. 그러나 1초도 지나지 않아 '생리증후군도 매달 증상은 다르다'고 합리화하며, 무심히 알약을 입으로 털어넣었다. 어설픈 기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임신 테스트기. 결혼 5개월이었고,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내가 임신을 결심하지 않은 이유


결혼 전, 남편에게 예비부부 산전검진에 대해 살짝 말했더니 '하지말자. 문제 있으면 결혼 안할것도 아니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정반대인 '하지말자. 문제 있으면 나 흔들릴지 몰라."로 이해했다. 임신가능 여부와 결혼여부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면, 해도 그만일 검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말을 곡해한 것은 남편이 아이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기란 유리알같이 조심스러운 존재라 손끝 하나 대기 무서운데, 남편은 애 셋은 키워본 사람마냥 갓난쟁이들을 자기 품에 턱턱 안아 달래곤 했다. 부부동반 모임에서 한창을 얘기하다 남편이 안보여 찾아보면, 아기들 앞에서 자기가 재롱을 부리느냐 여념이 없다.


 남편이 아이들을 바라볼때의 표정을 보면 '눈에 꿀이 떨어진다'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연애시절, 그 눈에서 설탕물 정도는 흘러나오는 걸 본것 같기도 한데, 여튼 날 보면서도 그런 농도짙은 찐득한 꿀은 안떨어졌다. 그런 남편이 '17년 2,3월생 아가면 좋을 것 같다'며 올해 봄부터는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 할때에도 나는 확고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린 아직 젊었고, 아직 시간이 있었다. 내 '단언'의 말로 남편이 어설픈 기대를 갖는 게 싫었다.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인 긍정의 표현이라면 피임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단 한번도 '남들 다하는 임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 생명이란 너무나 경외로운 것이라 감히 내 몸안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오바 조금 보태서, 마치 임신부는 하늘에서 소명을 부여받은 선택된 이들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가끔, 우리 엄마와 내가 탯줄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소름이 돋곤 했다. 생명의 신비란.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





사랑의 결실이라는 진부한 표현



 1월 12일 아침,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했다. 그 날 저녁 든 생각은 너무나 감상적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나는 점잖게, 하지만 미친듯이 흥분하고 있었다. 생명의 잉태를 말할 때 흔히 구사하는 '사랑의 결실'이라는 그 진부한 표현이 이토록 사실적이고 놀라운 말이라니.


 23살에 한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당돌했고, 마음을 숨길 줄 몰랐으며, 그 남자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의 연애는 안정적이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언제나 호락하지는 않았으며, 철없던 남녀가 서로가 서로를 기르 듯 의지하며 5년이 흘렀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 더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공간을 나누어쓰고, 밥을 나누어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통장도 나누어갖고, 공동 명의로 재산을 쌓아가며 노후 대책도 마련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했고 나는 여전히 남편을 '가족'이 아닌 '남자'로 사랑한다.


 테스트기의 빨간 두줄이 말하길  내가 '한 남자와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열심히 했더니, 생명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남으로 만났는데 그 아이는 우리의 유전자를 반씩이나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유치한 말을 진지하게도 남편에게 내뱉었다. "오빠, 정말 이런 게 사랑의 결실인가?". 반쯤 넋 나간 여자처럼 꿈을 꾸는 표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남편의 반응은 어땠냐고? 사랑의 결실이고 뭐니, 뭐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고 마냥 좋을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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