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무료함과의 전쟁
하고잽이들의 고민
어디선가 주재원 와이프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바라보던 선망의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내가 가고 싶지도 않은 곳을, 나의 것들을 다 놓아 가면서 가야만 하는 것을 왜 그리도 부러워하는 것인지, 마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 나와 보니, 그렇게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나온 분들 역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부담, 새로운 곳에 가서 누구의 도움 없이 적응해야 하는 삶. 능숙하지 않은 언어, 문화. 하루 종일 집에서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삶. 이런 삶들은 결국, 창문만 열면 새소리가 ASMR처럼 들리는 순간들을,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과 무료함으로 인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순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면적 대비 한국인의 비율이 급증한 곳이라, 조용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외로움과 무료함으로 나 스스로를 가두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 파워 E인 나는, 스몰 톡의 나라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이 이중적인 나라에서, 집에만 있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료했다. 결국 영어 학원과 운동을 등록하고, 그 영어 학원에서 지금의 '하고잽이' 언니를 만났다. 그렇게 그 언니와 시작한 북클럽이 어느새 5달이 다 되어 간다.
매일 같이 가는 esl 공부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서 the weekends의 dabate를 공부한 뒤 북클럽에 간다. 하고잽이 언니와 중간에 북클럽에 합류하게 된 튀르키예에서 온 하고잽이 친구, 그리고 나는 셋이서 짧지만 긴 영어를 하기 위해 debate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이야기한다. 이렇게 우리는 해당 분량의 공부를 하고, 일주일 간 쌓인 수다를 폭풍처럼 떤다. 오늘의 주제는 하고잽이들의 고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주재 기간 동안,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나야 돌아가면 할 일이 있지만, 어느 정도 아이를 키워 놓은 북클럽의 수장인 하고잽이 언니는,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나보다 더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영어를 같이 배우지만, 자격증과 증명서로 자신의 경력을 증명하는 '학력지상주의' 한국에서, 과연 지금 배우는 ESL이 수료증을 주지 않는 문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미 이전에 미국 경험이 있던 이 언니는, TESOL 자격증과 ESL 수료를 했었지만, 여기서 뭔가 더 다른 경력을 쌓아야, 한국에 돌아갔을 때,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ESL을 다니고, 영어 학원을 또 따로 다니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북클럽까지 하면서, 그 와중에 아이들 라이딩과 백업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우리 하고잽이 튀르키예 친구는 플라스틱과 환경 관련 화학 전공자로서 실험실에 근무하던 인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재취업을 도전하고 있지만 영어가 현지인처럼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esl도 다니고 북클럽도 하면서 영어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언니와 친구를 보니, 나도 뭔가 지금의 일상을 기록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기를 낳고, 어느 정도 키운 뒤에,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여기서 하고 싶었던 독서 클럽과 영어 수업 재수강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또, '하고잽이'의 마음에 불을 지핀, '하고잽이 언니'와 ‘하고잽이 친구’의 고민도 해결되길 바라면서, 다음 주 북클럽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다음 주 일상에서는 또 어떤 날들이 가득할지, 무료함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