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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롱이 Sep 06. 2024

먹거리 수송 작전

미국 시골에 산다는 건

편도 4시간이면 갈 만하지


미국 시골에 산다는 건, 저렇게 한국 먹거리를 사러 한 두 달에 한 번씩 당일로 장을 보러 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을 꼬박 운전에만 투자해서, 부산에서 서울을 왕복하는 느낌으로 장을 보러 가는 곳이 바로 미국.


뭘 저렇게까지 해서 한국 음식을 꼭 먹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의 외식 물가는 어마무시하다. 일단 지금 1300원대를 넘어선 환율, 식당에 가면 붙는 각 주에 내는 tax, 거기다가 내가 원치 않아도 배정되는 서버와 그 서버에게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받지 못하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tip까지. 요즘 미국 내에서도 20%를 넘어서는 tip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tip은 없어질 수 없는 이 나라의 무조건적인 문화인 것 같다. 그래서 2인 가족이 외식을 한번 하면, 최소 50$에서 100$를 넘어설 수도 있는(7만원~13만원). 고작 파이브 가이즈를 둘이서 사 먹어도 30$ 이상(4~5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그런 살인적인 물가에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문제는 내가 평생 공부와 직장 생활만 주구장창 하면서 엄마 밥과 배달의 민족만 먹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김치찌개 정도 끓일 수 있는 솜씨로 미국에 왔지만, 결국 살인적인 물가와 입맛에 맞지 않는 식문화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대장금이 되어야만 했다. 게다가 남편 업무 관련 차 한국에서 출장자 분들이 오시면 집에 초대해서 대접하는 게 주재원 와이프의 미덕 아닌 미덕인 느낌.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주재원 와이프들이 그렇게 강제로 대장금이 되어 갔다. 무료한 일상 속 유튜브로 만나는 류수영의 편스토랑과 백종원의 레시피를 밑천 삼아 도토리 묵이 먹고 싶은 날에는 도토리 묵을 쑤어 묵무침과 묵사발까지 만들어내는 그런 일까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저런 음식을 하려면, 한국 식재료 같은 것들이 최소한이나마 필요하다.


미국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대체로 이러하다.

1. 마트에서 최대한 비슷한 재료 찾기 (청양고추를 대신할 멕시코 고추 찾기)

2. 아시안 마켓

3.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는 유기농 드라이빙 마켓

4. (왕복 8시간 운전해야 하는) 한국 마트 방문


지금까지 특히 내가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는, '대파, 팽이버섯, 청양고추, 깻잎, 부추, 쑥갓, 미나리' 등이었다. 특히 '대파'는 현지 마트에서는 아주 얇은 쪽파 수준으로만 팔고, '부추, 쑥갓, 미나리'는 한국 마트를 가지 않으면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직접 모종을 심어 기른다는 분들도 보았다. 


결국 나는 주말 중 하루를 통으로 비워 왕복 8시간의 한국 마트를 가고, 수많은 한국 재료를 사 와서 죄다 냉동한다. 그리고 수많은 냉동 제품(차돌박이, 우삼겹, 냉동 낙지 등)을 사 와서 죄다 다시 냉동한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의 집에는, 대부분, 냉장고가 2대라는 웃픈 사연이 있다. 그리고 멀리까지 간 김에 남이 해준 한식을 실컷 사 먹고, 여기서는 보기 힘든 회나 해산물도 먹고 온다. (일단 회는 진짜 없고, 초밥은 한국과 다른... 물컹하고 탁한 초밥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리까지 운전해서, 몇 십만 원어치의 장을 보고, 매일 같이 한식 공장을 돌리는, 쳇바퀴 같은 삶의 반복이, 한국에서는 알지 못했던, 숨겨진 주재원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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