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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롱이 Sep 20. 2024

파워 E가 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먼저 다가서기 VS 한 걸음 물러서기

미국 가서 외로워서 어떻게 해


맞습니다 맞아요. 외롭습니다. 첫 6개월은 역시 심심하고 무료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있는 이곳은 면적 대비 한국인의 비율이 급증한 곳이라, 뭔가 좋으면서도 아쉬운 그런 느낌이었다. 일단 좋은 점은, 코스트코에 한국 물건이 늘어나는 점, 한국 식당이 비싸긴 하지만(맛도 그럭저럭이지만) 몇 개 정도 있다는 점,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외국인들이 있다는 점 정도인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한국인 비율이 급증한 탓에 반대로 한국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다는 점, 한 다리 건너면 거의 다 알 수 있는 듯한 좁은 한인 사회,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여러 장점보다 하나의 단점이 더 크게 보여서 그런 것일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조심해야 해, 괜히 튀고 그러면 좋을 게 하나 없어"

"어떤 게 튀는 거예요?"

"딱히 그런 건 없는데... 뭐랄까, 그냥 참 소문이 빨라"


맞는 말이었다. 누구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던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끼리의 싸움이 부모의 싸움이 되고, 그러다 여기저기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반복되는. 그런 좁은 동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파워 E인 나는, 혹시나 남편에게 누가 될까(남편은 그런 걱정하지도 말라고 했지만) '집 - 운동 - 병원 - 집'을 반복하는 집순이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행여나 어디선가 한국인을 마주쳐서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 회사를 물으면, 마치 서로 맞교환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오픈하는 그런 생활을 이어나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 이렇게 사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나는 참 남의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다. 내가 시험에 합격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하고, 내가 기간제인지 아닌지에 따라 정교사 선생님이나 관리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또 괜히 조직 내에서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고, 있는 듯 없는 듯 내 할 일만큼은 책임지고 해야 했으며, 누군가의 허물을 이야기할 때 내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눈치를 많이 보는 거라고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눈치가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나라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일단 땅이 넓고, 아파트처럼 집이 붙어 있지 않고, 대부분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으며, 가족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그런 나라라서 그런지,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가족이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에서 또 한국처럼 눈치를 보다 보니,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데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무료함과 심심함으로 TV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에서 만난 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어차피, 다 흩어질 인연이야"


문득 머리를 얻어맞은 거 같은 말이었다. 그래, 내가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닌데. 몇 후에 귀국하면 다시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지난 몇 개월 간 사람과의 인연에 벽을 세우고 나를 가둔 채 살았던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건 여기서의 내 시간과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얻은 순간인데 이렇게 살 수만은 없었다. 그때부터 이곳에서 소위 '튀는 건' 아니라도, 내 삶을 '채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영어 공부를 위한 ESL도 시작하고, 여기서 아기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도 소개받기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보듬어주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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