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허리케인? 토네이도? 암튼 그 무언가 들의 후폭풍
알람이 계속 울려
한국에서도 뉴스에 많이 보도되었던 '헐린'이 지나가던 날 밤. 핸드폰에서 재난 상황을 알리는 알림이 계속 울렸다. 설정을 통해 알림을 끌 수 있다고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 세차게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마 그 알람을 끌 수 없었다. 수많은 알람 속 가장 무서웠던 멘트는
"If you wait until you hear a tornado, it could be too late."
토네이도 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미 늦었다니. 하하..... 그럼 뭐 어쩌란 말인가. 집안에서 대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은 지하실이 없다면, 화장실뿐. 남편이 어디서 들었는지, 변기통을 붙잡고 있으면 그나마 가장 피해가 적을 수 있다고 했다. 배관이 땅 속에 묻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잠이 들었고, 밤새 강한 바람 소리에 뒤척이며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그 와중에도 한국 기업들은 남편을 출근시켰고, 주재원인 한국 남편들은 출근을 해야만 했다. 학교도 미국 기업들도 거의 다 off 하는 날, 남편은 비바람에 넘어진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출근을 했고, 나는 집 곳곳을 돌며 혹시나 부서진 곳이 없는지 피해는 없는지 살폈다. 우리 집의 피해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것, 핼러윈 장식들이 부서진 것, 다른 집에서 날아온 쓰레기 봉지가 굴러다니는 것 외에는 없는 듯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다른 집들 중에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이 끊겼다는 곳이 많았다. 당장 냉장고에 넣어둔 식품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화장실과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어 문 열린 마트에 가서 내내 앉아 있는 사람들 등 많은 이들이 집을 나와 배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참 신기한 나라구나.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복구되고도 남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지난번 폭풍이 지나갔을 때도, 폭풍이 지나간 후 근처 지역에 홍수가 나서 집이 침수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나라는 허리케인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난 뒤 인프라가 복구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워낙 땅이 넓어서 그런지, 허리케인의 후폭풍을 일주일이 넘도록 지속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지역 대학, 아이들 학교, 마트 등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해 사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인이 갈 곳이 없어 마트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당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준비하고 함께 놀다가 저녁도 먹고 샤워실도 빌려주었다. 한참을 놀다가 물이라도 사서 들어가야겠다며 마트가 문 닫기 전에 나가는 지인 가족들을 보내준 뒤에도 걱정에 연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다음날 전기와 수도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음 날, 이 지역으로 출장을 왔다가 돌아가던 또 다른 지인에게서 긴급 요청이 들어왔다. 허리케인 피해가 이 정도인 지 모르고 우리 지역에서 기름을 넣고 출발하기에는 줄이 너무 길어 가다가 기름을 넣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갔을까. 운영 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주유소는 문을 닫았고, 기름을 넣지 못한 채 주유소 주차장에 늘어선 차들에 갇혀 있다는 연락이었다. 마트에 가서 말통을 사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워 가져다줄 수 있겠냐는 부탁. 처음에는 얼마나 급하면 만삭 임산부에게까지 이런 연락을 하는 걸까 생각이 들어 알겠다고 한 뒤 차를 몰고 나갔다.
그땐 몰랐다. 이게 얼마나 성급하게 도와주려 했던 건지. 결론적으로는 부탁을 받고 6시간 만에 지인에게 기름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일단 내가 허리케인 뒤 시내로 나가보지 않아 상황을 잘 몰랐던 것에서 시작했다. 미국의 신호등은 전선에 걸려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세찬 바람으로 인해 이미 부서진 신호등이 많아 작동이 되지 않아 교통 체증이 엄청났다.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기름을 말통에 사서 집으로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마트마다 말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10군데 넘는 마트를 가도 말통을 구하지 못해 결국 정수기에 꽂는 물통 큰걸 사서 물을 버리고 기름을 넣으러 갔다. 근데 웬걸. 주유소도 이미 만차. 한참을 기다려 기름을 넣었지만, 물통은 밀봉이 되지 않았다. 기름 냄새를 한 시간 동안 맡으며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다시 집에 가서 온갖 방법으로 최대한 냄새와 기름이 나오지 않도록 밀봉했다. 그래서 또 한 시간을 달려 결국 6시간 만에 지인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토네이도 때문에 집이 날아갈까 봐 걱정했던 그날 밤이 무색할 만큼, 이렇게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난 뒤의 후폭풍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주일이었다. 물론 한국에 보도되는 상황이 심각한 지역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있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참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한국만큼의 공공재에 대한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점은, 나에게 미국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