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국어야 왜 가도 미국이니 ㅎㅎㅎ
미국 간다고? 하필 전공이 국어야
처음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보이셨던 반응이었다. 나 역시도 대학 때 장학금을 받기 위해 토플 토익 시험을 치던 그 시절을 마지막으로, 영어의 ‘영’ 자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밥 사 먹고 길 찾고 정도는 파파고와 주입식 교육으로 다져진 기본 영어만으로도 가능했지만, 미국에서 몇 년을 살면서 병원도 보험도 학교도 생활도 다 해내야 하니, 그런 짧은 영어로는 택도 없었다.
처음에는 무료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그런데 배우다 보니, 남편 없이 혼자 집안의 대소사를 영어로 챙기기에는 택도 없었다. 그렇게 영어를 말하는 것에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대충 알아는 듣는데, 말로 표현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다니던 학원에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배웠던 과거 시제를, 미국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로 설명해 주네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아 나는 스피킹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늘어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북클럽이었다. 영어 학원에서 알게 된 언니와 함께 미국 초등학생들의 필독서를 공부하며 학원 밖에서도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러다 어느새 외국인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제는 외국인 친구들까지 합세해 주간 기사를 모아 분석하고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일상 회화를 하는 모임으로 커져갔다.
그리고 근처 대학교에서 열리는 ESL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남미, 유럽, 아프리카, 아랍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서로 잘하지 못 하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주말 계획을 묻고 관심사를 알아가는 일상 대화지만, 더 많이 영어로 대화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다 문득, 요즘 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의 말이 생각났다.
“나 요즘 너무 무료하기도 하고… 영어 공부해 “
“거기 가서도 공부하니 ㅋㅋㅋㅋㅋ”
내 소식을 들은 선생님들은
“쌤, 돌아와서 수업 시작할 때 5분 인트로는 영어로 해봐요 ㅋㅋㅋ”
하하, 다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었지만,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료하고 심심해서 할 일을 찾은 거였고, 이제는 불편해서 영어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그리고 아기를 만나고 나면 또 이렇게 열심히 나만을 위한 공부와 성장을 잠시나마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한 계절을 바쁘게 움직였다. 영어가 늘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와중에, 마침 어제 간 병원에서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G는 거의 다 알아듣고 대화가 되니깐 내가 필요한 것만 너에게 통역을 요청할게 “
임신 기간 내내 나를 돌봐준 산부인과 담당의가 통역사에게 한 말이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 만난 패밀리 닥터는 통역사를 대동하여 진료를 본 뒤 나에게,
“영어로 대화가 되는데 통역 요청까지 안 해도 되겠네요. 영어 잘하시는군요”
참 이렇게,
무료함에 가만히 있지 못했던 나는, 언제 어떻게 써먹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도 아등바등 움직이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