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곧 만나자
안녕 아기야, 우리 건강하게 곧 만나자
내 인생에서 아기란, 어렴풋하게 언젠가 만나게 될 존재 정도였던 거 같다. 바쁘게 살아가던 한국에서의 삶 속에서, 아기를 준비한다는 건, ‘어느 정도 돈이 모이고 준비가 되면 우리 결혼할까’ 이상으로 엄청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 하나를 책임지기도 힘든데 새로운 생명을 책임져야 하다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의도치 않은 장거리 부부가 된 뒤, 남편과 내가 다시 만나기까지. 우린 아기를 생각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더 집중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아기가 찾아와 준다면, 기왕 쉬는 김에, 기왕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김에, 정말 좋은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왔고, 그렇게 우리 아기가 찾아와 주었다. 처음에는 임신을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예약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보통 한국에서는 임신을 확인하고 다음날 병원에 가서 초음파도 보고 가족들에게 사실을 차차 알리고 주변의 축하를 받는. 그런 당연하고 평범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외국인인 나에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연차를 쓰면서까지 함께 평일에 병원을 가주었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진료를 볼 수 없었고. 최소 9주가 지나야 진료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임테기만 보고도 아기집을 5,6주에도 초음파로 봐주는 것과는 정말 달랐다. 거기다 의료 보험 시스템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고,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오는 방식부터, 진료를 보는 방식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방식까지.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나도 서툰데 이곳에서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했고, 한국에서보다 더 바쁜 남편의 도움 없이 홀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찾아온 입덧은 두 달 반을 나와 함께 했고, 내가 한 밥 냄새를 참지 못해 온종일 물만 마시다 남편이 퇴근해서 지어주는 밥 냄새에도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어 집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들어가 참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터지는 일이 많았다.
참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던 건지. 엄마와 배달의 민족이 가장 그리웠던 시간을 지나. 얼마 후면 아기를 만나는 날이 된다. 다사다난했던 병원은, 이제 내가 제일 자주 이야기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되어갔고, 함께 아기 이름을 고민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또, 이곳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깜짝 베이비 샤워를 받기고 하고, ESL에서 엄마가 되는 방법에 대해 같이 수업을 하기도 했다. 첫 마더스 데이를 축하하며 남편과 커플 크록스를 사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며, 장금이가 되어 출산 전 남편 보양식 챙기기에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지겹고 힘겨웠던 입덧은 언제 그런 시기가 있었냐는 듯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이래서 엄빠들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힘든 시간을 잊은 채, 둘째를 계획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망각’이 주는 장점을 몸소 체험했다.
사실 임신 기간 중 타국에서 홀로(한국에서 보다는
확실히 홀로) 시간을 보내며, 그 시간에 느낀 감정과 경험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에, 이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올리며, 아 이번주는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부터, 아 이번주는 꼭 이 일을 남겨봐야겠다까지. 그렇게 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덤으로 올라가는 라이킷 수와 조회 수를 보면서 재미가 있기까지 했다 :)
사실 일이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뭐든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뭐 그럴 수 있구나’ 정도였는데,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니, ‘아 그때 그래서 다들 그렇게 말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참 많다. 항상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아기를 키우며 앞으로 더 큰 세상을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면서 우리 아이들을 다시 만날 때 더 큰 어른,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잘 이끌어 줄 수 있겠지.
이제 곧 아기를 만나게 되면, 또 다른 경험을 할 예정이다. 한국과는 달리 산후조리원은 일단 없고, 제왕절개라는 선택은 의료적 목적이 아닌 이상 자연분만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얼음을 씹어 먹으며 아기를 낳고, 아기를 낳은 후에 제공되는 병원식으로 햄버거를 먹겠지. 그런 경험을 한 뒤 아기와 하루이틀 만에 퇴원해 함께 집으로 오면, 많은 엄빠들이 그렇듯 잠잘 시간도 없고, 야간 알바를 뛰는 심정으로 최소 3개월은 죽었다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 마음을 가다듬던 시간은 이제 사치겠지. 그렇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또 다른 행복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글을 쓰러 돌아오는 그날이 더 빨리 오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