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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09. 2019

9. 독서모임에서 배운 것들

by 조선영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만나 책 이야기와 자신의 삶 이야기를 나눈다. 1년 동안 독서모임을 했다고 해도 열두 번의 만남이 있었을 뿐이고, 모임 시간은 다 합쳐도 아마 서른 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도 모르고, 본인이 먼저 직업을 말하지 않는 이상 직업도 모른다. 그런 모임에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온몸으로 배웠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 회원님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통해 배운 것을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온종일 수다를 떨고도 시간이 모자라다 말할 것 같다. 

- 따뜻하게 안아주기 

 독서모임 회원님들은 모두 경청의 달인이다. 다른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하고 응원을 남긴다. 묵묵하게 듣고, 아주 깊게 공감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의 판단을 내비치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는 그러하군요. 당신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이야기할만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회원님들의 눈빛은 나에게 정말 특별하다.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회원님들 앞에 앉혀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독서모임에서 남편의 술 문제로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았을 때 일이다.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고개를 숙인 채, 급한 대로 회원님이 건네주신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마음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다시 차오르려고 하는 눈물을 삼키느라 애써야 했다. 회원님들 모두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회원님들 얼굴을 보았을 때는 정말 목구멍에 뜨거운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아 목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울음이 계속될까 봐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독서모임에서, 그것도 회원님들 앞에서 눈물이라니. 그 눈물은 정말 그냥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눈물이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내가 친구도 가족도 아닌 분들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내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하는 회원님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에 깊게 남아있는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것 같은 엄청난 치유 경험을 했다. 누군가 내 슬픔에 함께 눈물지어주었다는 사실에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사람이 아님을 절절하게 느낀 것이다. 이 경험이 좋아서 그날의 독서모임 풍경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리더님이 독서모임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을 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두근두근 설렘 반, 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 어쩌나 싶은 걱정 반이었다. 각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주제를 정하기로 했다. 나는 ‘독서모임을 통해 내가 좋아진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리더님과 회원들이 함께 정한 일정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칫, 나의 상처 이야기를 마주하고는 멈춰 서고 말았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상처 받았던 경험을 회원님들 앞에서 조금씩 말한 적은 있었지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처 이야기는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상처를 몽땅, 한꺼번에 털어놓자니 두려웠고 걱정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상처를 마주해야 했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눈물이 흘렀고, 해묵은 감정을 다시 고스란히 느끼며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배짱으로, 나는 글로 나를 온전히 쏟아냈다. 그리고 그 글을 회원님들과 나눴다. 상처가 가득 담겨있는 나의 글을 회원님들과 공유한 날, 독서모임 밴드에 글을 올리는 순간까지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도 함께였다. 그날 밤, 나는 지금까지 독서모임을 통해 받은 위로를 모두 다 합쳐도 모자랄 정도의 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회원님들이 내게 들려준 진심 어린 말들 덕분에. 

“글을 읽으며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이네요.”

“쓰면서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요. 먹먹해지는 밤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곁에 계시면 조용히 안아드리고 싶네요. 선영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쓰기로 치유되고 있는 게 느껴져요. 정말 가슴 울리는 진정성 있는 글입니다.”


 회원님들이 건네준 위로의 글을 보고 펑펑 울었다. 감사해서. 회원님들에게 감동해 흐르고 있는 내 눈물이, 내 마음속에 단단히 박혀있는 상처를 다 녹여내는 것 같았다. 글쓰기로 나를 온전히, 내 속에 있는 어두컴컴한 것들까지 모조리 다 꺼내놓고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다니. 헐벗은 채로 서서 울고 있는 나에게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하며 누군가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고,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한결같이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시는 회원님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그저 들어만 주어도 누군가는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는 사람들이 선물해주는 치유의 힘도 경험했다.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지어 주는 진심 어린 표정이 그 어떤 특별한 조언보다도 다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열네 번째 독서모임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의 마지막 목차에 심리요법가 가와이 하야오와의 만남으로 느꼈던 것을 써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와이 하야오와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이 실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던진 공을 상대가 양손으로 단단히 받아주었다, 속속들이 이해해주었다, 라는 감촉이, 설명이고 이론이고 없이, 내 쪽에 생생하게 피드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촉은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이고 격려였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와이 하야오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도 독서모임 회원님들과 돈독하고 끈끈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회원님들이 든든하게 쳐 둔 울타리에 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안겨본 경험은 이루 말할 것 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회원님들이 보여준 사랑을 다시 돌려드릴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회원님들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싶다. 내 멋대로 급하게 결론지어 조언하지 않고, 독서모임에서 배운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 앞에서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방이 던진 공을 두 손으로 착실하게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용기 있게 나아가기

남편과 다툴 때면, 남편이 반복해서 내게 하는 말들이 있다.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아, 예민하게 반응하니까 당신 앞에서 말하기가 겁나.”

“성격이 왜 이렇게 급해? 당신이 급하게 굴 때마다 마음 졸여서 힘들어.”

“당신은 본인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싸우게 되면 왜 늘 나만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거야?”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쿵쾅댔다. 기분이 나빴다. 당연히 싸움으로 번졌고 나는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내가 무슨 생각이 많아? 당신이 말을 조심성 없이 해서 내가 마음이 상하는 거잖아.”

“자기가 시간 개념을 철저하게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넋 놓고 있다가 늘 닥쳐서 나한테 일을 떠넘기니까 내가 급하게 행동하는 것인데, 왜 나를 탓해?”

“그럼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얘기해봐. 수긍이 되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잘못을 인정할 수 있으니까.”

 한바탕 다툼을 하고 각자 시간을 갖게 되면 혼자 웅크리고 앉아 쓰린 마음으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남편이 나에 대해 하는 말들이 다 맞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의 단점이나 부정적인 면을 남편 앞에서 인정하려고 하면 입술이 딱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부정적인 특성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이상하고도 고집스러운 나의 태도를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대체 내 속의 어떤 부분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이상한 고집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찾을 수 있었다. 리더님이 공유해주신 <데미안>의 질문지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선과 악, 신도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싱클레어가 생각하는 두 개의 세계는 어떤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친절하게도 <데미안>에는 소설 전체에 걸쳐 두 세계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와 있었다. 한 세계는 ‘밝은’ 세계로 주인공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를 아버지의 집,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용서와 선한 원칙들, 사랑과 존경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또 다른 세계는 ‘어두운’ 세계로, 유혹하는, 무섭고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 도살장과 감옥,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소란하고 요란한, 음침하고 폭력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면서, 리더님이 두 세계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소년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다가와하는 말을 보고 리더님의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데미안은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 예배도 가져야 해. 그게 올바른 일인 것 같아. 혹은 예배를 하나 더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아. 악마도 그 안에 포함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일들이 일어날 때 그 앞에서는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신을 위해서 말이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책꽂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꺼냈다. 김형경의 <사람 풍경>이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이거다!’ 싶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말했다.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인 채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하고 진정한 자기애다. (…) 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 


 그동안 나는 싱클레어가 묘사한 ‘밝은’ 세계에 속하는 내 모습만이 진짜 내 모습이라 여겨왔다. 학교나 세상에서 배워 온대로 착하고, 긍정적이고, 이타적이고, 성실한 모습만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심 알고 있었다. 내가 나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추구해오면서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타인들을 ‘밝은’ 세계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쉽게 비난해왔다는 사실을. <데미안>을 읽고, 리더님이 해주신 두 세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서야 내가 ‘밝은’ 세계에 속하는 포장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고 그것에 매달려왔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 날씨를 만끽하며 야외에서 독서모임을 했을 때였다. 독서모임을 끝마치고 회원님들과 산책에 나섰다. 한참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함께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쉬고 있을 때 어느 회원님이 말했다. 

“요즘엔 ‘나답다’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얘기를 들은 리더님은 답했다. 

“다들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신중하게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잘못 해석하면 진짜 내가 아닌, 세상의 기준에 맞춰진 마음의 목소리만 따르게 돼요” 

이 대화를 들으면서 두 눈이 시원하게 열리는 것 같았다. 나도 그동안 스스로 ‘나답다’ 생각해 온 모습들을 허물어보고 싶어 졌다. 밝은 쪽 모습만 추구하던 고집불통의 ‘나’ 말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 졌다. 


 <데미안>을 읽으며 밑줄을 백번 그어도 모자랄 만큼 멋진 표현을 만났다. 바로 이 문장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랍삭스.’

감사하게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나는 ‘자기다움’을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회원님들의 경험을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회원님들은 말했다.

“세상에 기준에 맞춰서 투쟁하듯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세상의 기준을 놓아버리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진정한 나를 찾아가면서 서서히 평화로운 마음이 들어요.”

“무서워하던 일들을 하나씩 깊게 인식하고 다시 체험하면서 이겨내고 있어요.”

“어느샌가 타인의 말과 행동에 내가 편안하게 반응하고 있었어요.”

“성장을 위해 익숙했던 방식을 버리고 불편하지만 새로운 길로 가보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시는 독서모임의 회원님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지점에 한 발짝 걸어 들어갔을 때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용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용기’와 관련해서 유독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회원님이 있다. 글쓰기 모임 회원님이신 그분은 첫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의 초고에 대해 다른 회원들이 건네는 의견에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았다. 회원님께서 마음이 상하신 것 같아 그 날의 글쓰기 모임 이후로 모임을 그만두시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2주 후 글쓰기 모임에서 다시 만난 회원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나에 대해 깊게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소외감, 두려움,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 열등감 같은 것들이 내 속에 있었더라고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을 그냥 인정하니 정말로 괜찮아졌어요.”

편안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씀을 이어가는 회원님을 보면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회원님이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 환하게 열린 모습으로 앉아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시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진짜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지니고만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게으르고, 아는 것이 없고, 참을성이 모자라고, 분노하고, 치사하고, 시기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불평불만을 쌓아 두는 것과 같은 내 속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속속들이 바라보고 군말 없이 시인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두렵다. 타인을 아무런 판단 없이 대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은 불편하다. 하지만 용기 내서 조금씩 변해보려고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의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아본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이 길을 함께 가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 바로 독서모임의 회원님들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을 홀로 가지 않아도 되다니, 이보다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 기꺼이 나눠주기

 평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요리를 대접하는 일을 좋아했고, 지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 나갔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살 때면, 친한 언니의 아이가 생각이 나서 같은 물건을 하나 더 샀다, 지인들에게 밥을 사거나 선물을 하기 위해 항상 내가 먼저 습관적으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는 일을 불편해했다. 누군가 나에게 밥을 사주거나 선물을 해주면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늘 나중에 꼭 내가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던 행동은 진짜 나눔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았던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돌려받기를 원해서였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랐고, 내가 나눠준 애정만큼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나눠주었으면 했다. 내가 하던 나눔은 타인으로부터 대가를 바라는 나눔이었다. 그토록 무엇인가를 받는 일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누군가 내게 무엇인가를 나눠주면 나도 그만큼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독서모임의 회원님들은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들이었다. 독서모임에 처음 참여했던 순간부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원님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좋은 책을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주었다. 나 혼자 책을 읽었을 때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책들을 회원님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 안에는 삶의 지혜와 새로운 세상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행복을 위한 비밀을 알려주는 책들을 혼자만 알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회원님들은 다른 회원의 삶이 진정으로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책들을 소개해주었다. 물론 소개한 책을 읽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넉넉함도 잊지 않은 채로.


 책에 대한 깊은 생각을 나눠 주시는 회원님들 덕분에 나는 책을 더욱 세세하고 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혼자 읽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문장들이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눈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회원님들이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지점과 내가 책을 통해 배웠던 부분이 다른 것도 좋았다. 회원님들이 책 속의 지혜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는지, 그리고 지혜를 어떤 방식으로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지를 들으면, 회원님들의 눈을 통해 보이는 새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넓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회원님들은 독서모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고 꾸밈없이 말씀해주셨다.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가족에게 너그러워졌어요. 그동안 내가 원하는 모습의 가족이 되어주기를 가족들에게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독서모임을 하면서 제가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되었어요. 분리수거하는 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데, 관심 분야의 책이 한 묶음 나와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거의 다 새 책이었어요. 이것도 삶이 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겠죠?”

“친구에게 조언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바꿔서 누군가 저에게 조언을 해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책을 통해 배우게 된 것들도 많지만, 두 발로 독서모임에 걸어 나가 회원님들을 만나서 배우는 것도 정말 많다고. 회원님들의 경험담은 삶 속에 녹아있는 깨달음이어서 그 지혜는 내 피부에 확 와 닿을 만큼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회원님들을 보고 있으면 독서모임과 다른 회원을 향한 회원님들의 아낌없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모임을 만드신 리더님은 회원들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는 좋은 책을 선정해주신다. 책에 대한 질문지를 만들어 나눠주셔서 회원들이 책과 자신을, 책과 삶을 연결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기수마다 회원들을 깨울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모임을 이끌고, 좋은 에너지가 순환될 수 있도록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신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회원들의 감정과 생각들을 세심하게 신경 쓰시는 것은 물론이다.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수고롭지 않은 일이 없다. 언젠가 감탄하는 마음으로 리더님께 말했다.

“좋은 모임을 만들어주셔서, 늘 좋은 에너지를 기꺼이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그러자 리더님은 말씀하셨다.

“독서모임은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곳이에요. 제가 에너지를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저도 독서모임을 통해 회원님들의 좋은 에너지를 받아가요.”


 리더님뿐만 아니라 독서모임의 다른 회원님들도 자신이 가진 좋은 에너지를 기꺼이 나눠주신다. 회원들을 위해 따뜻한 커피와 차를 손수 내려서 챙겨 오시고, 식사시간 즈음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면 식사가 될만한 음식이나 쿠키, 과일을 준비해오시기도 한다. 독서모임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딜까 고민하며 독서모임 장소를 알아보시고, 장소 대여 신청도 척척 해주신다. 회원들이 모임 장소에 오고 가기 불편하지 않게 모임 장소를 사전 답사하시며, 오는 길과 주차 공간을 미리 알려주시는 회원님도 계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회원을 향한 회원님들의 배려와 진심이 담긴 응원을 보면서 나는 늘 느꼈다. 독서모임의 회원님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공짜로 받아가고 있다고.

 독서모임을 향한 회원님들의 정성에 감사하면서,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독서모임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는 지금 내 상황이 속상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 회원님들께 말씀드렸다.

“저도 보탬이 되고 싶은데…. 찾아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죠?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회원님 중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존재 자체가 선물입니다. (이런 말 전에는 오글거려서 못했는데)” 

이렇게 회원님들이 나누어주시는 진한 따뜻함을 두 손으로 받아 들 때마다, 나는 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온 문구 하나를 떠올린다.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독서모임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불행했다. 상처로 꽉 차 있는 마음은 헤집어져 있었고,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며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정신은 피폐했고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공허하다 느꼈다.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 마음먹고 행복해지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결심을 굳혔을 때, 운명처럼 내 앞에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이 나타났다. 더없이 다정하시고,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 너무나도 멋진 회원님들이 내 삶에 등장했다. 


 나는 요즘도 가끔 두렵고,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힘든 육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종종 생각한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처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일에는 서툴다. 삶을 살아가는 게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날들도 많다. 하지만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은 아주 다르다. 독서모임과 회원님들이 내게 나눠준 지혜와 사랑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하루일지라도 그 하루를 조금 더 넓어진 마음과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전처럼 힘든 상황이 내게 닥쳐도, 어쩌면 그보다 더 견뎌내기 어려워 보이는 일이 내 삶에 일어나더라도 나는 이제 예전처럼 끝없이 무너지지 않는다. 울고 싶어 지는 날에도 눈물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다. 


 쨍한 여름날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최진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진실한 순간을 피하지 않고 대면한 사람에게 우주 대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자신에게 정말 진실하면 우주 대자연이 주는 선물이 있다고 말이다. (…) 돌이켜보면 나를 진실하게 대면한 후에 걸었던 그 힘든 시간들이 나한테 흡사 세례를 준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책을 보니 그 이전과는 정말 다르게 읽혔다.”


 나도 회원님들처럼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절실하게 행복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독서모임에서 내가 공짜로 받은 긍정 에너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모조리 나눠주고 싶다. 독서모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은 나를 ‘살리는’ 독서모임이라고. 고꾸라져가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독서모임을 나는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나에게 우주 대자연이 건네준 소중한 선물인 독서모임 회원님들에게 온 마음을 담아 감사한다. 독서모임과 회원님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조금이나마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즐겁게 책을 펼쳐 든다. 독서모임에 나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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