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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09. 2019

8. 자기 사랑하기

by 조선영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내 삶은 밝아졌다. 가정이 화목해졌고, 부정적인 감정과 친해졌으며 긴 시간 고통받았던 상처를 치유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독서모임이 나에게 준 뜻밖의 선물이 있다.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지혜들을 하나씩 실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눈치도 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내 속에 나를 향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서 넘칠듯한 사랑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기쁜 마음으로 나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다. 정성을 듬뿍 담아서. 

- 일상을 새롭게 꾸리기

 나의 하루는 대부분 해야 할 일들로 꽉 차 있었다. 늘 해야 할 일들을 잔뜩 쌓아 두고 그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다 방전되어 잠이 들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남편과 데이트를 하는 일도 어쩌다 한 번 있는 특별한 일,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늦잠 자고 밥 먹고 TV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엄마가 되면서부터 어쩌다 한 번 하던 외출도 쉽지 않았고, 맘껏 늦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려 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했다. 심지어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엄청나게 늘었다. 아이가 먹고, 입고, 자고, 씻고, 놀 수 있도록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로 꽉 찬 목록을 해치워 가다 보면 어느새 밤이었다. 그런 밤에는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 수 없었다. 잔뜩 빡빡해진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 잡다한 일들을 구경했다. 


 몸이 힘들어서 하루를 버텨내기 힘든 줄만 알았다. 물론 체력적으로 지쳐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결핍되어있는지 몰랐다. 스트레스를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육아 동지들도 만나 보고, 아이가 낮잠 잘 때 TV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스마트폰으로 온갖 기사를 훑어보았다. 순간의 만족감은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결핍감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슬기의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육아 스트레스를 책으로 이겨낸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집에 있는 책들을 하나씩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은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작가가 펼쳐 놓은 이야기에 정신을 놓다 훌쩍 지나가 있는 시간을 확인할 때는 정말 아쉬웠다.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책과 사랑에 빠졌다. 새로운 책을 알게 되어 신났고, 연관된 책들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마음에 들어차며 정서적인 결핍감은 조금씩 옅어졌다.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 품격 있는 삶에 대해 논하는 최인철의 <굿 라이프>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였다. 행복을 위해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나의 하루를 살펴보았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내 하루에는 아이를 위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들도 작지만 존재했다. 감사일기나 명상, 자기 관찰하기 등 독서모임에서 알게 되어 실천하고 있던 일들이 내 일상 속에 담겨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머릿속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 잡기. 이것이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분명한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본격적으로 나의 일상에 끼워 넣었다. 아이만을 위한 하루에서 아이와 나를 위한 하루로 내 일상을 새롭게 꾸렸다. 소소하고 매일 실천할 수 있는 것들로 나름 엄선했다. 오전에 아이와 산책하고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감사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는 감사 말하기도 시작했다. 아이가 밤에 잠이 들면 명상을 한다. 이외에도 긍정 에너지가 충전되는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의 하루에 빈틈을 찾아내 쏙쏙 집어넣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리즈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매일 자신에게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을 할까, 리즈?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을 해야 즐거워질까?”라고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질문했다.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 그렇게 물으면 갖가지 답이 따라왔다. 셀프 네일아트, 아이 옷 리폼, 스트레칭, 서랍 정리, 책 읽기, 영화 보기, 그냥 쉬기 등등.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하고 싶은 일을 잽싸게 실행했다. 밀린 집안일 걱정은 미뤄두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몰입했다. 그때의 만족감은 육아하며 느끼는 보람과는 다른 기쁨을 주었다.

 24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이 사라져 울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갖지 않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면 그 시간이 아주 잠깐, 혹은 찰나일지라도 행복했다. 책을 반 페이지밖에 못 읽어도, 왼손 손톱에만 매니큐어를 칠하다 말아도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항상 아이 낮잠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새롭게 꾸린 일상 속에서 아이의 낮잠 시간은 나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한 행복을 주는 그야말로 꿀 시간이 되었다. 


<굿 라이프>의 최인철은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깊게 공감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반복하며 살았을 때 얼마나 공허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챙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이곳저곳 숨겨둔 하루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거니까.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 무슨 일을 하면 즐거워질까?’라고. 그리고 마음속에 떠오른 즐거운 일 한 가지를 골라 우선 시작할 것이다. 일상을 스쳐 가는 아주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껴주기

 허리 통증은 열일곱 살 때부터 나를 쭉 괴롭혔다. 많이 걸은 날은 발끝에서부터 찌릿한 통증이 타고 올라와 발목, 무릎, 골반까지 아팠다. 허리가 좋지 않으니 큰 활동을 하지 않는데도 쉽게 피로감을 느꼈고 밤에 누워서 잠드는 일이 어려워 몸과 머리가 무거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허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꽤 오래 다녔고 도수치료를 시작하면서 허리 통증은 나아졌다.

 한동안 허리 통증으로 인한 불편함 없이 생활하다가 임신, 출산, 육아로 허리가 다시 망가졌을 때 난감했다. 치료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데 독박 육아를 하면서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또 치료해도 육아로 인해 완전히 통증이 가시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허리 치료에 회의적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허리 치료를 포기하고 지냈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완전히 신기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오전 산책 시간에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를 500번 중얼거리는 ‘감사 말하기’를 시작했을 때였다. 한 발을 디딜 때마다 허리 통증이 극심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혹시 내가 내 허리를 미워해서 허리가 아픈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허리를 미워한다는 생각은 솔직히 의외였다. 내 몸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 1순위는 허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허리를 미워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자마자 세상의 기준에 비춰 내 몸매를 평가하고 있는 내 시선이 드러났다. 분명하게도 나는 내 허리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허리에 미안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매일 마음속으로 ‘허리야 사랑해’라는 말을 100번씩 속삭였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지했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들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의 아니타 무르자니는 ‘몸은 내면의 반영일 뿐이다.’라고 했고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의 휴 렌 박사도 체중 감량을 위해 고민하는 조 비테일에게 아이에게 말하듯 몸에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했다. 이를테면 ‘나를 데려다줘서 고마워. 숨 쉬어 줘서 고마워. 심장이 뛰게 해 줘서 고마워,’라는 식으로. 

 무엇보다 ‘허리야 사랑해’를 속삭이는데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준 것은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우주님의 힌트, 즉 영감이 떠오르면 처음 0.5초 내에 곧바로 그것을 실행하라고 말한다. ‘허리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다니, 진짜 이상한 생각이잖아.’라고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 생각이 내게 찾아온 번뜩이는 영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허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 통증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로. 허리 통증으로 고통받았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는 이 치유 경험을 매우 기적적인 일로 생각하며 기뻐했다. 이 얘기를 들은 지인들은 약간 황당하다는 눈치였지만.


 마이클 싱어의 <상처 받지 않는 영혼> 독서모임을 할 때 ‘자기 관찰일기’ 쓰기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특정 사건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글로 써보는 일이었다. 독서모임에 나가기 하루 전 차곡차곡 써왔던 자기 관찰일기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동안 써 왔던 내용을 쭉 살펴보니 자책을 자주 하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때문이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정말 괴롭다.’라는 말이 수도 없이 쓰여 있었다. 예컨대 거실 인터폰이 망가졌을 때도 ‘내가 만져서 고장 났다. 괜히 만졌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아이가 울면 ‘엄마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나 정말 힘들어. 괴로워.’라고 말하는 듯 느끼며 못난 엄마 같아 울고 싶어 졌다는 글도 있었다. 자책하는 습관은 내가 의식할 틈도 없이 자동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관찰일기를 통해 내가 자신을 책망하는 버릇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상처 받지 않는 영혼> 독서모임 시간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고 있잖아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것도 가치 있어요.”

이 말은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태도를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신선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찾아가도 될 것 같아. 더 나은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오늘부터라도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자.’ 

‘왜’ 보다는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 나는 이 생각을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태도에도 적용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을 마주했을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머리를 싸매고 자책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를 찾아가며 분주한 마음을 잠재웠다. 


 자기 관찰일기와 <상처 받지 않는 영혼> 독서모임을 계기로 나는 자책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실수하거나 나를 비난하고 싶어 지는 순간마다 펜을 들고 자기 관찰일기에 ‘괜찮아.’라고 썼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것은 매일 ‘나에게 들려주는 긍정적인 메시지 한 줄 쓰기’ 습관으로 이어졌다. 

 감사일기를 쓰고 그 밑에 내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한 문장씩 썼다. 간단하게 ‘힘내!’, ‘할 수 있어.’, ‘큰일 아니야. 해결하면 돼. 자책하지 말자.’라는 말도 쓰지만, 가끔 내가 정말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질 때는 ‘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해도 소중한 사람이야.’, ‘이 모습 그대로라도 괜찮아.’라는 글을 힘주어 쓰곤 했다. 그러면 내가 그리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내가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니 힘이 났다. 본래 타고난 내 모습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긴 휴식을 취한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이었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뒤로도 한동안 나는 겉모습도 내면도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매끈매끈해서 흠집 하나 없는 모습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외모가 아니어도, 엄마 노릇을 조금 못해도, 물건을 망가뜨려도, 물을 쏟아도, 아이가 감기에 걸렸어도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을 미워하면서 학대하지 않기. 부족한 점을 파헤치며 몰아세우지 않기. 나에게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격려해주기. 자신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못난 면까지 오롯이 사랑해주기. 이것이 내가 실천하고 있는 자기 사랑이었다. 감사일기를 꺼내고 펜을 들어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네가 좋아. 흠집도 나름대로 매력 있어.’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사랑해주는 영원한 내 편이 생겨 참 든든하다.


-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힘 보태주기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한 편이었다. 여고 시절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지만 나를 정말 싫어하는 것이 느껴지던 한 아이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을 때 자주 울었다. 부모님, 어른들,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칭찬해주셨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평범한 학생에서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착실한 엄친딸이 되었을 때 세상이 보여준 사랑의 크기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것은 정말 달콤하고 따뜻해서 계속 인정받고 싶었다. 누가 나를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어왔던 방식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애원하는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든 그 마음을 돌려놓으려 애썼다. 그 사람이 전혀 내게 의미 없는 사람이고 심지어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건설적인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앓아눕기 일쑤였다.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 지금까지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싹싹한 며느리이자 착한 딸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구에게든 친절한 사람이 되어 내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살아왔다. 일할 때도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쥐어 짜내듯 직장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원할수록, 미움받는 일을 두려워할수록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 속에 있는 사랑을 모두 퍼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었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어 일을 마무리 지었을 때, 그만큼의 사랑과 인정이 타인으로부터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남편이 던지는 사소한 농담, 예를 들면 ‘태어날 아이는 네 성격을 닮으면 안 될 것 같아. 좋은 내 성격을 닮아야지.’와 같은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거절하지 못하고 무리한 부탁을 수락해 고생하는 일 역시 다반사였다. 그래서 항상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어.”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는 말은 아마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의식하며 사는 생활은 피로하고 답답했다. 진정한 나는 희미해지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 모습만 추구하느라 진이 빠지곤 했다. 이런 어리석은 내 모습을 고스란히 적어둔 책이 있다. 바로 마이클 싱어의 <상처 받지 않는 영혼>이다. 이 책 10장 ‘마음과 새로운 관계 맺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다.

 “잠시 멈춰서 당신이 마음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한번 살펴보라. 당신은 마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누구도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하는 모든 말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받아들였으면 해. (…)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어.’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덧붙인다. ‘자, 마음아, 이 모든 것이 실현되게 할 방법을 생각해봐. 밤낮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야 하더라도 말이야.’ 물론 당신의 마음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고 있어요. 열심히 연구해 볼게요.’”


 읽으면서 ‘헉’ 소리가 나왔다. 불가능한 일을 붙잡고 씨름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인정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이 당연했다. 마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수준의 사랑을 타인에게서 얻을 수는 없으니까. 

 마이클 싱어는 ‘당신이 마음과 맺고 있는 현재의 관계는 일종의 중독과도 같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처럼 조언했다. ‘마음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마음은 자연의 힘과 날씨를 바꿔 놓을 수 없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과 장소와 상황을 통제할 힘도 없다. (…) 마음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짓을 멈춰라’ 

 나는 내가 상당히 뻔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까지 통제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착한 행동을 하든 나쁜 모습을 보이든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은 온전히 그들의 것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치우쳐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반복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나에 대한 타인들의 판단과 느낌은 그들의 것임을 인정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에 더는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무리한 부탁을 해오면 용기를 내어 거절했고, 누군가 내게 요구하지 않았는데 굳이 나서서 도움을 주거나 친절을 베풀던 오지랖도 내려놓았다. 지쳐가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놓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인연도 서서히 정리했다. 타인의 인정을 구하기 위해 애쓰던 행동들을 그만두자 막혔던 숨이 탁 트인 것처럼 해방감이 느껴졌다. 바깥으로 향해서 늘 소진되었던 에너지가 내면에서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인정 욕구를 내려놓으니 자유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이기적이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달라진 나의 태도에 다른 사람들이 서운함을 내비치면 불편했다. 갈팡질팡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독서모임이 기억났다. 그날 우리는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드림 킬러와, 드림 킬러에 맞서는 간단한 실천방법을 이야기했다. 책에 따르면 불행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행복해지겠다.’라고 결심하고 우주에 행복을 위한 주문을 해서 삶에 행복한 변화가 찾아오면, 반드시 익숙했던 불행으로 되돌리려는 훼방꾼이 나타난다고 한다. 드림 킬러가 바로 이 훼방꾼이다. 

 나의 드림 킬러는 바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다.’라는 나의 가치관이었다. 나는 이 생각을 오랜 시간 진리로 믿어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살피는 일’만 중시했고 ‘내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선한 사람이지 않을까? 내 영혼이 튼튼해야 타인에게 내 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배려와 친절을 베풀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드림 킬러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는 ‘나, 행복해져도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하기로 했다. 타인과 나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자고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불안함이 느껴질 때는 <상처 받지 않는 영혼>을 손에 자주 들고 펼쳐보았다.


 나는 오랫동안 자기 사랑을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 오해했다.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내가 발견한 자기 사랑은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용인하며 눈감는 일이 아니었다.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가 가진 능력이나 지금까지 얻은 성취를 뽐내듯 자랑스러워하는 일도 아니었다. 자기를 아낀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향한 예의와 배려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눈길 한 번에, 표정 하나에 길을 잃고 헤매지 않고, 때로 휘청거릴지라도 자신의 중심을 딱 잡고 서 있는 내가 되려고 한다.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나 평가받기 쉬운 세상살이에서 내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 나 사이에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은은한 사랑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아직 멀었지만 어떤 칭찬도 어떤 비난도 방긋 웃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내가 되길 꿈꾼다. 타인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것 없는 내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자유롭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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