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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09. 2019

14. 시작

by 김민정

직장인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머릿속은 늘 바쁘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뒤처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시간들을 보낼수록 나도 모르게 나는 남의 시선만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눈치가 빠르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다시 들여다보니 그냥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남의 눈치를 보면서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퇴근하면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남은 힘을 다 짜내어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그렇게  인생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든 날, 내 몸속 에너지가 채워지지는 않고 계속 빠져나가기만 하는 느낌이 드는 날, 이러다가 내가 다 부서져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날. 올해 1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고, 늘 하루하루를 바쁘게만 살던 어느 날 출근길에 난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GOD의 ‘길’이라는 노래는 나를 더욱더 그런 기분에 빠지게 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중략)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입버릇처럼 늘 입에서 튀어나왔던 말은  “힘들다.”였다. 17년 전 어느 날, 퇴근 후 엄마에게 “나 저녁 안 먹어. 피곤해서 그냥 잘 꺼야.”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를  따라 들어온 엄마는,  “ 우리 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길 바랬는데, 지금의 네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거 같아서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라고 말했다. 그때의 엄마의 표정과 눈빛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이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얼까? 20대였던 그 당시에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이 질문을 외면했었던 이유는 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꿈이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답답했고, 가슴 뛰게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에, “그래, 이만하면 됐어. 다들 이러고 살아. 좋아하던 일도 내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고 하더라.” 애써 위안하며 살아왔다. 가슴속이 텅 빈 거 같기도 하고, 꽉 막힌 기분도 든 터라, 점심을 거른 채 사무실에서 나와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내가 찾는 장소는 책이 있는 곳이다. 온갖 책 속에 둘러 쌓여 있으면 걱정도 고민도 잊어버릴 수 있다. 마음 가는 대로 책 한 권을 읽는 그 순간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으니까, 숨 막힐듯한 정적 속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와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가 좋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밝은 미래가 보였고, 그 빛이 내 삶을 비춰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책장을 덮는 순간 꿈은 닫히고, 내 삶에 빛이 비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서가를 둘러보다 보니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독서공동체 숭례문 학당 이야기 ‘이젠 함께 읽기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 첫 목차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도 남는 게 없다’.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쳇바퀴 같은 일상,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잠식당해 ‘자기 생각’이 언제, 어떻게 소멸되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자기를 찾으려는 일종의 시도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하진 못하고 있었다.” <이젠 함께 읽기다, 북바이북>


난 정기적으로 책을 사고, 읽었다. 슬럼프가 올 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책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샀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느낀다 해도 그 순간이었고, 실천을 해보거나 변화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책을 고르는 기준 또한 없었다. 늘 내가 사는 건 베스트셀러로 검증된 책뿐이었다. 성격이 급해 책은 늘 빨리 읽었지만,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차도 기억을 못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책에 집중하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현실도피, 다른 하나는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혹은 학부모 모임에서 남들과 다른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 허세 가득한 마음. 난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용할 뿐이었다.


독서공동체에 대한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어쩌면 지금의 내 마음의 답답함이 함께 읽는 책으로 치유될 수 있겠다 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책을 읽고,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었다. 책을 덮고 나서, 간절히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문제였다. 독서모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조차 막막했다. 일단 인터넷에서 집과 직장 근처에서 운영되고 있는 독서모임을 찾아보았으나, 모임 시간이 평일 오전이라 나와 같은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았다. 지역 도서관의 홈페이지에도 등록된 도서동아리들의 목록이 올려져 있었으나,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언제 모이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의 열정이 이대로 사그라들어 버리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던 와중 한 블로그에서 <나를 깨우는 독서모임 회원 모집>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고, 그 글을 본 순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을 했고, 대학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연락을 기다렸다. 10여 년 전 돌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말한 ‘끌어당김의 법칙’이 나에게 적용된 걸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그 책의 내용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했었건만, 적어도 내가 독서모임을 만나게 된 건 ‘시크릿’의 법칙이 통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나의 첫 독서모임이자 마지막 독서모임이고 싶은 관계의 시작, 소중한 사람들과 책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모임의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순간조차 어찌나 설레던지 삶에 있어 작은 변화가 이토록 가슴 뛰는 것이었을까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또 신기했던 것은 책을 읽으면서 변화한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혼자 읽을 때와는 달리 부담감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독서모임의 경우 리더가 모임 전 함께 이야기할 질문들을 공유하고, 이해가 어려운 책의 경우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주기도 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끌어 주는 방향은 독서와 함께 나의 삶, 나의 꿈에 대한 사유를 하는 것,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느끼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모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가슴에 남는 구절이 무엇인가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눈으로만 책을 읽는 사람이었던 나는 처음에 생각하며 읽기의 연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의 첫 독서모임 책은 파울로 코엘로의 ‘연금술사’였다. 이 책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독서 초보자들도 술술 넘기며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평소의 나 같으면 2시간도 안 걸리고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맘에 드는 구절에는 줄도 긋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열심히 읽었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수록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자꾸 나를 생각하게 하는 게 싫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 없이 기계처럼 살아가는 삶에 지쳐 독서모임을 찾았건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지니 불편해졌다. 난 그저 아주 평범한 직장인에 아이 엄마일 뿐인데, 그저 나이에 따라 요구되었던 일들을 무리 없이 해내고,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지금 닥쳐있는 큰 문제도 없었다. 근데 왜 나에게 자꾸 꿈 이야기를 하는 건지? 대체 내 삶에서 내게 주어진 임무가 뭐란 말인지? 꿈이 없다면 내 인생은 전혀 살맛 나는 인생이 아니라는 거야? 내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지금 나에게 무슨 꿈을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이런 불만에 가득 찬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던 중 책에서 이 문구를 보게 되었다.


‘문제는 양들이 새로운 길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야. 양들은 목초지와 바뀌는 것이나 계절이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지. 저놈들은 그저 물과 먹이를 찾는 일밖에 몰라.’


지금의 나는 마음속의 눈과 귀를 닫고, 물과 먹이만을 찾는 양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눈 앞에 있는 직장에서의 승진과 금전적인 부를 원했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 점수에 연연했고, 졸업 후에는 남들보다 나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었다. 경쟁의 이유도 모른 채,  늘 경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어 본 적도 없었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 본 적도 없었다. 물론 그런 생각조차 사치라고,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나를 위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삶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독서모임이 산티아고가 키우던 양과 같은 나에게 새로운 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마는 교육열이 대단한 분이었다. 난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엄마가 산더미처럼 사다준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중학교 때는 영어책을 송두리째 외워야 했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논술을 대비해 신문의 사설을 읽고 엄마와 의견 교환 노트를 작성했다. 나를 가르치기 위해 거실에서 ‘수학의 정석’을 새벽까지 푸는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가장 가까운 선생님이자 공부친구였다.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대신 엄마가 더 공부했고, 더 노력했다.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엄마의 자존심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을 못 갔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일부러 서울대학교를 지원해서 떨어졌다고 한다. 속상해할 외할머니를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 홀로 4남매를 키운 외할머니는 공부 잘하는 첫째 딸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지만, 집안의 기둥인 장남을 대학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의 사회분위기는 다 그런 것이었으니까,,, 19세의 엄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까? 어쩌면 19세의 엄마가 못다 한 공부에 대한 꿈을 나를 통해 이루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엄마의 희망이었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에게 반항을 했다. 엄마가 내 공부에 개입하는 것이 더 이상 싫다고 말했다. 숨이 막힌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딸에게 짓밟힌 엄마는 더 이상 내 공부에 대해서 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준 내 성적은 당연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즈음이었을까? 엄마는 자신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머리 좋고, 인내심이 강하며, 공부를 좋아했던 엄마는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던 공부를 했다. 대학과 대학원을 차례로 입학하고 졸업을 했다. 지금은 70세의 나이에도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강단에 서던 날, 엄마는 꿈을 이뤄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보여줬던 앨범 속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던 교원자격증이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19세의 대학을 못 갔던 엄마가 꿈꿨던 19세의 딸은 엄마의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상황에서 다시 엄마의 꿈을 찾고, 인생에서의 자신만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여정을 떠났던 것이다.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으며 어찌 태풍과 비바람이 없었을까? 치매인 시어머니, 효자인 남편, 넉넉지 못했던 경제상황 등 엄마의 태풍과 비바람은 곳곳에 있었다.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결국 꿈이었다.


처음으로 머릿속에 남는 책 한 권을 들고 내 안의 자아를 찾고 싶은 마음을 담고, 첫 독서모임 자리에 나갔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는 긴장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긴장감을 감추고 사람들을 대하는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도 처음은 역시 떨렸다. 지금도 첫 모임의 장소에서 어색하게 내가 들어가던 순간, 밝은 미소로 맞아주던 작가님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 미소가 내 마음을 참으로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작부터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첫 모임은 너무 즐거웠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경험이 처음이라 재밌었다. 오랜만에 많이 웃었다. 같은 책을 읽고, 느끼는 바가 각양각색이었다. 신기한 만남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 아닌 곳에서 ‘책’이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되는 만남. 처음이라 서먹할 법도 한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만남,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만남. 그렇게 나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 삶의 습관과 관심사 또한 바뀌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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