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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09. 2019

12. ‘진정한 나’ 만나기

by 한순범


  불편함과 두려움이 내 마음의 지껄임이 만들어낸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 후로 나는 마치 연구자처럼 나의 삶에서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그것을 직접 겪어내는 경험은 어떤지, 그 결과로 무엇이 변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신호와 내면의 진정한 나, 명상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먼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신호에 대한 인식은 독서모임의 여섯 번째 책,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 덕분이다. 원서 제목은 <The Surrender Experiment>로 내맡기기 실험 정도로 이해된다. ‘삶에 저항하는 대신 그 흐름을 존중하고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그 속으로 뛰어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갖고 마이클 싱어 본인의 삶에서 내맡기기 실험을 한 이야기이다. 내맡긴다고 해서 의지 없이 넋 놓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펼쳐내는 신호를 알아차려 내 자유의지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가령, 마이클 싱어의 친구가 갑자기 멕시코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든가, 서점에서 멕시코 여행 안내서에 걸려 넘어진 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주유기 위에 누군가 놓고 간 멕시코 지도 등을 삶이 보내는 신호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신호를 받아들여 멕시코로 떠나 명상과 요가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오지 사람들과의 경험으로 그가 갖고 있던 두려움이라는 스위치를 내리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마이클 싱어가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끈다. 그 이후 마이클 싱어는 삶 자체의 흐름(Life knows better.)을 믿고, 내맡기기 실험으로 대학교수, 건축업자, 프로그래머, CEO, 명상가, 베스트셀러 작가까지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된다. 


  그다음 독서모임 책,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정말 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주는 굉장한 책이다. 그동안 내가 공부한 모든 것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삶이 주는 신호에만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이 책에서는 ‘표지’로 명시되며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도록 인도한다. 산티아고는 어렵고 혹독한 일들을 거쳐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파티마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사랑에 빠져 여정을 멈추고 안주하고자 할 때 연금술사는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산티아고가 파티마와 결혼하여 처음 일 년 간은 두 사람 모두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년째, 산티아고는 그가 찾으려던 보물의 존재를 기억하게 될 것이고 표지들은 집요하게 보물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테고, 그는 그것을 잊으려 애를 쓰게 될 것이다. 삼 년째에도 표지들은 보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이고 산티아고는 여러 생각들을 하겠지만, 결국 표지들을 외면하고 그 표지들은 산티아고의 보물이 영원히 땅속에 묻혀버렸다 알려줄 것이다. 사 년 째는 산티아고가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지들은 산티아고를 떠날 것이다.’ 삶이 주는 신호를 외면하면 삶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산티아고는 다시 표지를 따라 모험을 시작하고 결국 보물을 찾고 파티마와의 사랑도 이루게 된다.


  그즈음, <될 일은 된다>와 정확하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디야 샨티의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를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삶이 주는 신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삶 자체가 종종 가장 훌륭한 교사다. 삶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우리를 깨워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렇다. 삶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알아차린 뒤에는 받아들이자. 받아들이고 따라가자. 나도 내맡기기 실험을 해보자.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실험은 올해 초, 근무하는 학교를 옮기는 문제에 적용되었다. 대개 5년이 만기라 3년 차인 나는 학교를 꼭 이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근할 때마다 매우 강하게 학교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에 감정소비가 너무 많았다. 내가 열심히 하는 기준과 직장 동료나 상사가 생각하는 ‘열심히’의 의미가 달랐다. 그래서 진짜 에너지를 쏟아야 할 학생들과의 시간보다 그 외의 일에 진을 빼기 일쑤였다. 나는 지쳐갔다. 교사로서 행복하지 않았다. 만기가 아닌 일반전보로 옮겨야 하는 거라 이동점수도 낮아서 교사들이 소위 선호하는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조금 참고 5년 근무해서 이동점수 채워 옮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도 있었다. ‘무리수를 두어 옮긴 학교가 현재의 학교보다 힘들다면?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솔직히 망설여지고 갈등도 되었다. 하지만 여기만 아니라면 교사로서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삶이 내게 어떤 신호를 주는지 잘 살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연수에서 연속해서 A 학교의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이 삶의 신호로 처음 다가왔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연수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그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A 학교의 특별한 시스템에 대해 들었다. 혁신학교보다 훨씬 흥미로운 운영방식이었다. 그 선생님과 만남 후 A 학교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주변에 전부 부정적인 반응뿐이었다. 학교의 독특하고 특이한 경영방식 때문에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서 모두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쯤, 다른 연수에서 A 학교의 그 선생님을 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A 학교의 운영방식에 굉장히 긍정적이었고 그 안에서 열심히 교사 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 A 학교로 꼭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게 삶이 주는 신호인가 싶었다. 또 A 학교 교장 선생님과 함께 운동하는 지인이 나에게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과 교사로서의 나의 가치관이 굉장히 잘 맞을 거라고 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A 학교로 부르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주저 없이 발령 신청을 하였다. 기피하는 학교라 이동점수가 별로 없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선택 후 7개월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어떠하냐고?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더불어 교사로서의 정체성도 뚜렷해져 어떤 것을 해야 내가 행복한 지도 알았다. 더 이상 승진 여부에 갈등하지 않고 교단 교사로서의 삶을 가꾸어 갈 것이다. 학생의 삶에, 교사의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이 학교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을 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학교를 옮기기 전 <될 일은 된다>를 읽기 참 잘했다. 삶의 신호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독서모임 후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자신의 자아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독서모임에서 선택한 책이든,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해 읽은 책이든, 누가 추천해줘서 읽었든. 모든 책에서 그러한 메시지가 읽혔다. 심지어는 영화에서도, 노래에서도 그 메시지를 찾아냈다. 그간의 삶과 자아실현에 대한 공부로 인해,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사유의 시선이 높아져서, 충분히 관찰하고 음미해서 그런가 싶었다. 어찌 되었든 이것도 삶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 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는 신호가 아닐까?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특별히 사유해보기 전에는 그저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했었다.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자아라고 생각했다.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내가 쉽게 나라고 생각하는, 그 에고가 자아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진정한 자아는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본성, 자아의 근원, 바로 당신 자신, 순수한 인식, 존재한다는 어떤 직관적 느낌, 영혼, 신, 참나, 진아, 참자아 등으로 불리며 깨달음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에고, 생각, 마음과는 달리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쉬이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이름으로 불릴 만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그 무엇인 내면의 나의 진짜 자아를 나는 진아(眞我)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 많은 이름 중에 ‘진아’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진아의 존재를 믿고 나서부터는 이미 알고 있었던 예전의 지식들이 새로이 읽혔다. 예를 들어 예전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과 상태를 파악하라는 말로 이해했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쯤으로 생각했다. 셰익스피어의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도 타인과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는 정도로 이해했었다. 이제와 보니, 소크라테스와 셰익스피어의 ‘너 자신’은 바로 ‘진아’였다. 그것을 발견해 내고 그것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의 아니타 무르자니는 진정한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진아를 찾을 것을 강조했다. <연금술사>에서는 진아에 대한 탐구를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모험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을 연금술사라 부른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는 진아와 만나는 그곳을 어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기억도, 고정관념도, 믿음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의미로 ‘제로 상태’라 표현했다. 비슷하게 <싯다르타>에서도 진아와 만나는 그곳을 ‘공(空)’이라 했다. 제로상태나 공(空)의 상태가 되면 무한한 평화와 행복,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상처 받지 않는 영혼>과 <될 일은 된다>의 마이클 싱어는 “너는 너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알고 싶지 않은가?”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존재를 자각하고 진아의 한없이 깊고 깊은 평화와 사랑, 절대적인 고요를 만나게 되었다. 마이클 싱어가 ‘진아’를 찾는데 많은 영감을 받은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에서 자아실현은 마음이 영원히 사라져서 진아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가 바로 깨달음(Self-realization)이라고 했다. 자아실현에 대한 너무도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는 나의 삶 때문에 정말이지 나는 진아를 발견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 절대적 고요와 무한한 사랑, 행복, 평화를 진심으로 느끼고 싶었다. ‘진아’의 존재를 믿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의 실오라기 같은 작은 흔적이라도 보거나 느껴보고 싶었다. 


  드디어 ‘진아’의 존재에 대한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자각을 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독서모임의 열 번째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고 회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진아의 목소리가 과연 무엇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리즈가 삶이 온통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 좌절하며 지내던 어느 새벽, 욕실에 들어가 숨죽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리즈는 ‘리즈, 침대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기도에 응답하는 신의 목소리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그건 자기 자신의 목소리라고. 가장 평화롭고 확신에 찬 자신의 목소리였다고. 진아의 속삭임대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잔 리즈는 다음 날,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정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은 내가 영화로도 여러 번 봤을 만큼 매우 좋아하는 책이다. 하지만 독서모임 전에는 영화를 봤을 때 리즈가 욕실에서 간절히 원하자, 진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장면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었다. 독서모임 공부 후에서야 그 장면이 보였다. 회원님들과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회원이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갑자기 자각이 되었다고 할까? 그때의 그 경험이 떠올랐다.


  7년 전, 남편은 승진 시험 준비로 퇴근하면 도서관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다 집으로 들어왔다. 주말이면 스터디 모임으로 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다. 그때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딸을 같은 학교에 데리고 다니면서 하교 후에는 학교 안에 있는 돌봄 교실에 맡겨두었다. 출장을 갔다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올 경우, 돌봄 교실에 혼자 남아있는 딸의 슬픈 표정이 나를 힘들게 하였고, 죄송해서 돌봄 교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날들도 많아졌다. 학교에서 퇴근 후까지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아이를 돌봄 교실에서 내 교실로 데려와 같이 놀아주면서 일하는 것을 병행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에 어질러 놓았던 흔적들을 정리하고 아이를 씻겼다.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그 흔적들을 정리해내면 밤이었다. 딸에게 책을 읽어주며 같이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다시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남편이 시험에 합격하면 혼자 짊어지고 가는 이 힘겨움이 덜어질 것이므로. 하지만 1년 후에 남편은 시험에 탈락했고 1년 더 공부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 시험이라는 것이 한 번에 붙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대개 여러 번 본 다음에 붙기도 하는 어려운 시험이니 ‘1년 더 뒷바라지하겠다.’ 했다.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딸이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나도 학교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어 출장을 가야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늦게 남아, 심지어 주말에도 나와 학교에서 일해야 하는 날들도 많아졌다. 어느 날, 퇴근하는 차 안에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왔다. 남편이 합격할 때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자꾸 아이에게 짜증만 내는 내가 미웠다. 이런 상황을 전부 나에게 지워준 남편이 미웠다. 이런 상태로 새벽에 남편을 만나면 이성을 잃고 미친 사람 마냥 울부짖게 될 것 같은 날이었다. 나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 놓고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준 뒤, 다시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차로 돌아왔다. 그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있었던지, 정신을 놓아버릴 것처럼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울음으로 다 토해내었다. 그러고 나니 좀 나아졌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때 번득 “베트남에 있는 한국학교에 지원하자.” 입으로 토해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인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보니, 내 내면의 진아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업무 중에 보았던 재외 한국학교 교사 초빙 공문이 삶이 내게 보내준 신호였고, 그것을 따르라 인도해 준 진아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 한국 국제학교 지원에 합격하여 딸과 함께 둘이서 2년간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의 일은 많았고 힘들었지만 딸아이를 돌봐줄 여건은 훨씬 좋았다. 한국말과 요리를 곧잘 하는 베트남 아가씨를 가사 도우미로 고용하여 집안일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하교하고 집에 간 딸아이의 오후 스케줄을 관리하게 하였다. 나는 학교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잘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았고 저녁 후에는 딸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는 여행도 많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과 둘만의 즐거운 시간이 많아져서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남편도 그 사이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1년에 4번 정도는 베트남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보냈다. 삶의 신호를 받아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니 모두에게 좋았다. 그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그럼, 나의 내면의 자아와 좀 더 자주, 지속적으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길은 독서 모임의 여덟 번째 책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정리된다. 주인공 싱클레어에게는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만난 4명의 멘토가 있었다. 첫 번째 멘토,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의심케 하여 선과 악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던 두 세계의 경계를 깨트렸다. 진아를 찾아갈 준비를 시킨 것이다. 두 번째, 베아트리체에게서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며 그건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함을 배운다. 결국은 진아다. 모든 것의 근원은 진아다. 세 번째, 피스토리우스는 결국 자아실현의 여정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이루어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마지막 멘토,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랑, 즉 진아와 만나도록 이끈다. 나에게 있어 내면의 진아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에 데미안과 같은 멘토는 이 독서모임이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기존의 인식을 깰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자아실현의 길을 열어주었다. 베아트리체와 같은 멘토는 내게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라는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다. 피스토리우스의 가르침처럼 혼자 이루어내는 내면의 성장은 명상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이것에 성공하면 나도 나의 진아와 만나도록 이끌어주는 에바 부인과 같은 스승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삶에서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 삶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명상을 통해 내면의 진정한 나를 만나자.


  데미안이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해 있는 모습, 싯다르타가 깊은 잠 속에 빠져든 것처럼 완전한 몰입에 잠긴 모습, 마이클 싱어가 생각이 멎고 온전한 평화를 경험하는 깊은 내면에 들어간 모습, 모두 명상을 통해 진아와 만나는 장면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로 많이 알려진 유발 하라리 교수, 코리안 특급 투수로 불리는 박찬호 선수도 매일 명상을 하면서 삶을 가꾸고 있다고 한다. 그 외, 오프라 윈프리,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 많은 사람들이 매일 명상을 통해 삶을 성찰하며 명상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K-Pop 아티스트, 방탄소년단이 명상을 통해 삶을 가꾸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그룹은 비틀즈에 버금가는 그룹으로 평가되고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는 등 데뷔한 지 4년 만에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인해 UN 총회에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김남준)은 연설을 하게 되었다. 이 연설 곳곳에서 나는 이 친구가 진아가 무엇인지, 자아실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느껴졌다. RM은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 틀에 자신을 억지로 구겨놓고 살았노라 고백했다.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린 유령처럼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일어나, 그리고 네 목소리를 들어.' (There was a small voice inside of me that said, ‘Wake up, man, and listen to yourself.)”


  특히 다음 부분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강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진리를 찾는 그 부분과 맞닿는 연설이다. “과거의 내가 누구였는지,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미래에 되고 싶은 나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I have come to love myself for who I am, for who I was, and for who I hope to become.)” 물은 서로 상이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어디서나 동일한 것이다. 생의 흐름에 대한 비유로서의 강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소년 싯다르타, 장년 싯다르타, 노년 싯다르타는 그림자를 통해 분리되는 것일 뿐 실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영원히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상징인 강물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자신의 진아를 깨달은 싯다르타, 그가 연설문에 있었다.


  또한 방탄소년단의 ‘epiphany’라는 노래도 ‘진짜 내 모습을 다 드러내, I'm the one I should love in this world. 빛나는 나를 소중한 내 영혼을 이제야 깨달아 so I love me’라는 가사를 보면 자신의 진아를 깨닫는 내용의 노래이다. 그 후 나는 epiphany라는 꽤 어려운 영어단어를 독서모임의 13번째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보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 경기를 보다 문득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이 상황을 영어 epiphany로 설명한다. epiphany는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고. 즉, 내면의 진아의 목소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쨌든 20대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의 균형을 잡고 꿈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대단하다. 솔직히 어린 나이부터 진짜 삶을 살아갈 그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내가 명상을 시작한 지는 꽤 되었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 나의 진아와 만나지 못했다. 매일 아침 20분 정도 명상하는 습관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책이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명상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도원 님이 운영하시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힐링 센터에서 명상체험도 해보았다. 지난겨울방학 때는 태국 치앙마이에 가서 2주간 요가와 명상을 배우고 오기도 했다.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난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얻어진다면 어찌 깨달음이겠는가? 난 천천히 그 길로 갈 것이다. 난 이미 명상을 통해 널뛰듯 동요하는 감정의 선을 가지런히 정리하였고, 나의 내면의 힘을 믿고 조급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많이 차분해졌다. 많이 편안해졌다. 많이 행복해졌다. 독서모임의 회원들도 처음 나를 봤을 때와 1년 후의 나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다. 이미 명상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이 나아지고 좋아졌다. 그냥 지금처럼 내면의 힘을 믿고 꾸준히 명상하면서 삶을 온전히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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