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둥둥 Jul 23. 2024

상대와 미래를 그리는 질문들

친구의 소개로 한 살 연하인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자석처럼 끌려 연애를 시작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재미있고 좋은 마음들이 솟아난다.  


마음이 커질수록 이 사람이 나의 들추고 싶지 않은 모습인 어린 시절, 집안 형편, 가족 간의 관계를 알게 되어도 나를 지금처럼 바라봐주고 좋아해 줄까 걱정이 됐다.


아빠가 돌아가신 건 말했지만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 가족관계가 어땠는지는 단 하나도 얘기하지 않았다. 숨길 것도 없고 숨기고 싶지도 않지만 말할 기회가 딱히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나를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을까 조금은 두려웠다.


나는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고 혼자서 이것저것 척척 해내는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막상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화목한 가족들을 보면 늘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또한 무한긍정의 에너지를 뿜으며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깊은 고독에 빠지기도 하고 앞날을 걱정하며 외부의 자극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다행히 이런 나의 모습을 애인과의 첫 여행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됐다. 애인이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스몰토크 리스트를 묻고 답하면서 말이다. 그중 ‘가족들은 어떤 성격이셔?’라는 질문 등을 통해 가족들의 성격을 말하다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 위험하기도 했었던 부부싸움, 안전하지 못했던 집으로부터 멀리 떠났던 이십 대 초반의 나, 가족들의 성격 등 내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의 상당 부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할까 했었는데 이렇게 맨 정신에 그것도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더 놀랐던 건 애인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가족도 찬란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라며 집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모습이 참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애인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할까 걱정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정말 아주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질문도 주고받았다.



신혼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어?

한 달에 저축은 몇 퍼센트정도 해?

아이가 있다면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얼마 정도 모아놔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혼집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부부 월급은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

사귀다가 결혼 전 동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신혼집을 구한다면 어디서 살고 싶어?

기본 가전 말고 신혼집에 갖고 싶은 가전제품 있어?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서로의 월급과 명절 상여금, 그 외 수당, 고정지출, 대출 현황, 연금 등을 오픈하게 됐다.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례 없이 금전적인 상황을 오픈한 것인데, 지금까지 모은 돈이 얼마인지, 퇴직금은 얼마나 쌓였는지 빼고는 거의 다 말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말로만 들었지 사귀는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것까지 물어볼 수 있는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인데 ‘결혼‘이라는 주제가 무겁지 않게 우리의 대화에 오르내린다. 결혼은 정말 타이밍인 것일까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다. 상대와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의견을 말하며 확신을 준다는 것을 말이다.  간혹 오래 사귄 사람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일 수 있겠다.


미래를 그리며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는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고꾸라지고 또 시련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 마음에 진심을 다 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연애에 집중하며 마음을 더욱 견고히 다듬어 나가보려 한다.


우리 앞으로도 무럭무럭 사랑하자.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이번화는 늦어진 점 양해바랍니다.

오늘도 제 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의 댓글과 공감&응원은 글을 쓰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