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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요리부부 29화

콩고기 죽 & 마파두부

환자부부

20250629_184706.jpg 남편이 두반장으로 볶아준 마파두부, 정성으로 끓여준 콩고기죽. 위에 좋은 양배추찜.


한두달 전 공원에서 산책하다 급성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세상 태어나서 그렇게 배가 아파 본 건 처음이었다. 고통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비오듯이 나더니 결국 화장실 앞에 쓰러져서 남편은 구급차를 불렀다.


난 의식을 잃었고, 혈압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정말 컴퓨터가 다운되듯 내 의식과 몸이 모두 다운되던 순간이었다. 눈 앞이 캄캄해지더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은 물론 서있기도 힘들었다.


쓰러지고 나서는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응급실에선 급성 위경련 판정을 받았는데. 그 후로도 계속 배가 아파서 내시경도 받아볼 겸 종합병원에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기다리던 사이. 남편은 바깥에서 발꼬락 뼈가 뿌러져서 왔다. 배 아픈 여자와 발꼬락 뿌러진 남자. 우리는 환자부부가 됐다.


난 계속 배가 아팠고, 밥도 잘 먹지 못했다. 이상하게 빈 속에도 복부팽만감이 지속됐다. 토할 것 같이 미식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남편 병수발을 해야하다니.


목발 짚던 남편은 3주가 지나자 깁스만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발꼬락에 나사가 박혀 있어서 조심은 해야하지만 걷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20250629_184714.jpg 비건 두반장 소스로 만든 남편표 마파두부


깁스만 하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자 남편은 내시경 받기 전날 저녁밥을 차려줬다. 그동안 병수발 해줘서 고맙다며 검사를 앞둔 나를 위해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죽과 두부요리를 해줬다.


예전 같았으면 본인이 좋아하는 소고기죽을 했을텐데. 이제는 나를 많이 배려해줘서 냉동실에 있던 콩고기를 넣어 콩고기죽을 만들어줬다. 집에 소고기가 없어서 콩고기를 넣은 건가? 암튼 너무 맛있었다.


20250629_184718.jpg 콩고기로 만든 콩고기죽.


마파두부도 비건 두반장 소스를 넣어 맛있게 만들어줬다. 의외로 집에 있던 소스들이 찬찬히 살펴보면 비건일 때가 많다. 의식을 하고 사는 건 아닌데 의외로 나의 촉(?)은 고기나 동물성재료가 든 소스를 잘 피해간다.


무와 당근, 집에 있던 부추 등 냉장고파먹기겸 각종 채소를 넣어 함께 볶았다.



20250622_225458.jpg 비건만두, 오이지냉국, 비건 마파두부 덮밥. 어머님의 멸치볶음을 더한 페스코 밥상.


수면 내시경을 받은 날. 검사를 마치고 깨어나자마자 내가 한 말은 "차이나타운 가서 짜장면 먹을래." 였다고 한다. 남편은 토씨하나 안 틀리고 모든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욕은 안 했지?


실은 남편이 만들어 준 마파두부가 너무 생각났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덮밥 스타일로 한번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20250622_230343.jpg 언제부턴가 우리집의 모든 만두는 비건만두가 됐다.


"여기가 차이나타운일세." 난 중식을 좋아했나보다. 우리부부는 사실 중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밥으로, 비건으로, 남편이 만들어 주고 있다.


중식조리기능사를 따겠단 것도 나때문인건가?


"비건으로 중식해줄게."


처음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보, 당신이 차려준 음식과 말 한마디에 병수발의 고통과 배아픔이 스르르 녹아내립니다.


우리 아프지맙시다.


우리 구독자분들, 아프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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