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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30. 2022

이모가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이거 먹으면 지구가 안 아파?


4살짜리 어린 조카가 저를 빤히 보고 묻습니다. 순간 친구와 눈이 마주치며 눈물이 핑 돌았죠. 코로나가 조금씩 잠잠해지면서 근처에 사는 친구가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왔습니다. 저는 친구와 차를 마시고, 어린 조카는 뭐 먹을게 없을까? 찾아보다가 냉동실에 얼려 놓았던 아이스 바나나를 꺼내 줬죠.



이모가 미안해.


냉동 블루베리와 바나나를 갈아 만든 시원한 아이스 바나나. 어린 조카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채식을 시작하면서 우유 들어간 아이스크림 대신 바나나를 얼려 먹고 있단 얘기를 했을 뿐인데. 모르는 것 같아도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다 알아 듣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와 지구 


"이모, 빠이빠이!"를 외치며 귀엽게 흔드는 작고 앙증맞은 손. '이모가 미안해.' 목구멍까지 왔다가 도로 들어가 버린 대답. 저는 조카가 집을 떠날 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어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스쳐가는 많은 생각들.  


지구가 안 아프냐는 조카의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 수도 없이 꺼내 쓴 일회용 비닐봉투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외식으로 먹던 지글지글 소고기와 치킨의 모습, 삼겹살과 돼지 도축장. 자동차에 주유를 하고 멀리까지 놀러 갔던 기억과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괴로워하던 거북이.


나는 작은 아이에게 미안한 걸까? 지구에게 미안한 걸까? 아님 둘다?




지구는 일회용이 아니잖아요.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지구 환경을 마음대로 써버린 것. 정확히 얘기하면 지구를 무책임하게 오염시켰고, 석탄과 석유 에너지를 마음껏 꺼내썼으며 그로 인해 온실 가스 배출과 기후 양극화에 책임이 있다는 것.


인류의 잘못은 곧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그동안 반성하지 못 하고, 실천하지 못 하고, 지구를 아프게 한 죄. 채원이는 저에게 그 죄를 묻고 있었습니다. 


인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생각 없이 흘러가는 행동들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긴 것, 지구인 한 사람으로서 환경과 미래에 끼칠 영향력을 작게 생각한 것. 지금처럼 지구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 것.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후손들이 찾아 온다면 어떤 말을 남길까요? 그런데 후손들이 남아 있기나 할까요?




열받은 지구


"아파!" 사람은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난리가 나는데 지구는 '아프다'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 합니다. 지구의 살갗 안으로 기다란 기둥을 박아 그의 검은 피를 빨아 들이고, 어쩌면 내장이나 신체의 일부분이 될 자원과 광물들을 아무 생각 없이 꺼내썼습니다. 


어쩌면 지구는 그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며, 제 살갗을 태우며 우리에게 표현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못 알아 듣거나 모른 척 한 건지도 모르죠. 그래서 답답했던 지구가 열이 받은 걸까요? 지구온난화는 정말로 지구가 '열'이 받아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채식, 삶을 바꾸다. 


예전에는 영양사로서 채식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불완전한 영양섭취인데 과연 저래서 될까? 라는 입장이 공고했는데 최근 급변하는 기후를 목격하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한 개인의 건강이 중요하다지만 지구와 환경, 미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지구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 개인의 이기적인 삶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새로운 시각이 저를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1일 1채식(비건)을 하면서 작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지만 그 행동은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합니다. 하루 한 끼, 의무적으로 채식을 하는 게 아니라 식단 전반에서 육식을 점차 줄여가고 있고, 육식 위주의 외식도 많이 줄여가고 있죠.


구운 생선은 자주 먹지도 않으면서 먹고 싶다는 욕망으로 배를 채웠던 생선회도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먹지 않고 있네요. 회라면 사죽을 못 썼는데 저도 신기합니다. 그로인해 술 마시는 양과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 들었고,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는 부수적인 장점도 생겨났습니다. 


입맛에 사람으로서의 욕망이 깃들게 하는 것보다 사람으로서 '먹는다'는 본능적 행위를 가치있게 만드는 일. 그 작은 실천이 저를 바뀌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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