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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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는 외출했던 복장 그대로, 짐도 챙기지 못한채 택시를 잡아탔다.


자신의 손에 카드를 쥐어주던 어머님의 얼굴. 그녀의 손은 한없이 따뜻했지만, 동시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이가 진정되면 다시 연락할게. 지금은 언이가 하자는대로 하자. 응? 안 그럼 너도 그렇고, 정말 언이도 어떻게 될지 몰라.”]


말끝을 흐리는 어머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한없이 단단해 보였던 이명희 여사의 눈빛이 그 순간만큼은 연약해보였다.

연두는 그 눈물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택시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창밖의 네온사인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진동음이 울렸다.


띠링-


화면에는 어머님의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아가. 언이가 어디서 이상한 얘길 들은 모양이야. 우선 진정시키고 있으니까. 언이가 괜찮아질 때까지만 호텔에 있어주면 안 되겠니? 내가 준 카드로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좀 하고. 며칠 좀 푹 쉬다 와. 마사지 좀 받고, 호텔에는 내가 다 얘기해놨으니까.”]


짧은 문장 하나하나에서 어머님의 다급한 마음이 전해졌다.


연두의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졌다.


‘어머님...’


그녀는 고언과 달리 언제나 따뜻했다.


‘그의 성격이 어머님을 조금이라도 닮았다면...이렇게까지 내가 상처받진 않을텐데.’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카드를 꼭 쥔 채,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호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 시각, 고언은 차가운 거실 조명 아래 홀로 앉아 있었다.

사진 한 장이 그의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게...네 사진이라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 연두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꺼야! 내 사진이야! 네 살 생일 때 찍은 사진! 됐어?”]


그러나 고언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어지러운 혼란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 소녀는...이미 죽었는데...’


**

기억은 잔인하게도 그를 과거로 되돌려놨다.


13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아이돌 밴드 ‘어린왕자’.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존재, 리더이자 보컬 ‘프린스’.


무대 위 고언의 얼굴은 조명에 비춰 더 환하게 빛났고, 그의 손짓 하나에 수 만 명의 관중이 함성으로 화답했다.


“소리 질러!”


“꺄아아아악!”


‘어린왕자’의 전국 공연이 시작된 건 부산에서였다.


첫 콘서트에 무수한 팬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고, 2만 관중의 함성은 무대를 울렸다.


“날 떠나지마- 후회는 없을거야-”


“꺄악!”


“프린스 오빠!”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워우 워-”


“아악! 오빠!”


19살에 완성된 187cm의 큰 키와 10등신 몸매, 우월한 기럭지.


여리여리한 얼굴선에 쌍꺼풀 없이 매력적인 큰 눈. 웃을 때마다 들어가는 보조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하얀 피부와 언제나 붉게 빛나던 입술, 오똑한 코.


자타공인 꽃미남 보컬로 알려지면서 그의 웃음에 소녀 팬들은 열광했다.


“바로 너에게- 예!”


“꺄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큰 히트를 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았고, 노래 실력도 빠지지 않는 최고의 아이돌이었다.


노래, 음악, 연주. 무엇하나 빠지지 않던 그는 연기 실력까지 선보이면서 여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오빠! 꺄악!”


그렇게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매번 콘서트가 끝날 때면 항상 악수회를 열었다. 소수의 팬들만 추첨식으로 뽑아 일일이 악수를 해주고, 포옹을 해주는 식으로 마음을 전했다.


“꺄! 프린스 오빠!”

“사랑해요! 꺄악!”


팬들은 한 번 안으면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무대 위에서, 팬들 앞에서 고언은 신비스런 존재였지만, 그의 마음 속 한 구석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소녀만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조심스레 작은 상자를 내밀던 그 소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오빠, 이거...”


상자 속에는 작은 유리구슬과 사진, 그리고 손편지가 들어있었다. 고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유리구슬이잖아!’


아버지가 출장 갈 때마다 특별히 주문해주시던 선물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구슬 속에 박혀있는 초승달, 별, 눈, 꽃, 하트, 새. 어릴 적 보았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무늬는 변함없었다.


손편지에는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하나가 써있었다.


[‘오빠! 반포아파트 놀이터 기억나요? 난 4살, 오빠는 7살. 오빤 그때 사립유치원 다녀서 옷에 이름 써져 있던 거 기억해요. 고언! 왕따 당하던 오빠에게 내가 소꿉놀이하자고 먼저 다가갔었는데. 우리 장난도 치고, 오빠가 구슬도 주고 갔던 거...저 다 기억해요. 혹시 이 사진 보면 기억날까 싶어서 같이 넣었어요.’ -오빠의 로즈마리가-]


“그랬었나?”


고언은 숨이 막혔다. 가물거리던 기억 속에서, 색동한복을 입고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던 작은 여자아이가 되살아났다.


“아! 이 아이가 그 소녀였어?”


사진을 보자마자 절대 잊을 수 없는 비주얼이 떠올랐다.


주황색 왕 리본을 맨 파마머리에 눈엔 초록색 아이셰도우를 잔뜩 바른 기상천외한 모습. 빨간 한복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는 소꿉장난을 하자고 졸라댔다.


‘기억났어! 그때!’


어린 고언에게 그날은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던 날이었다. 작은 가슴에 난 큰 상처.


고언은 구슬을 쥐고 집을 나와 정신없이 걸었고, 낯선 동네의 놀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잘 생긴 오빠! 내 신랑할래?”


‘이건 또 뭐야, 이상한 애는...눈은 또 왜 저런거야?’


엉뚱하고 당돌하던 소녀.


자신보다 두 세 살 쯤 어리게 보이던 여자애는 장난감 커피잔에 모래와 물을 잔뜩 섞어 와서는 커피라 우기며 고언의 입에 밀어 넣었다.


“오빠! 이거 마시면 나랑 결혼하는 거다!”


“에잇! 드러워! 얼른 치우지 못 해! 난 이런 건 안 마신다고!”


타앗-


고언이 커피잔을 내팽겨 치자마자 어린 여자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으앙!”


커져가던 울음소리에 고언이 머쓱해하며 말을 붙였다.


“미...미안해. 내가 선물 줄테니까 울지마. 응?”


“흐흑...선물이 뭔데?”


여자 아이는 언의 주머니에서 나온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보자마자 신기해했다.


“그럼 우리 결혼하는 거다!”


“으응...”


작은 언과 여자 아이는 낯선 놀이터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여보! 아- 하세요.”


“아함! 맛있다!”


모래알로 쿠키도 굽고, 밥도 지으면서 둘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언은 곧 돌아가야할 시간이었다.


“도련님! 여기 계시면 어떻해요!”


“싫어! 나 집에 안 갈꺼야!”


“지금 회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빨리 들어가셔야되요!”


“싫어! 안 간다고!”


언을 돌보던 보모와 운전기사는 언을 들쳐 엎고 차에다 밀어 넣었다.


“싫어! 나 안 갈꺼야! 안 갈꺼라고!”


“흐앙! 여보 어디가! 으아!”


언은 어린 여자애를 달래 줄 새도 없이 차에 갖혀 출발해버렸다.


**


“그게 너였어? 푸웁...”


초록색 아이섀도우가 눈물 범벅이 된 채 모래밥을 지어주던 귀여운 여자아이.


‘로즈마리? 보고싶다. 한 번 더.’


그렇게 다시 만난 인연은 콘서트장에서 계속 이어졌다.


고언은 콘서트가 시작되면 항상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소녀팬부터 찾았다.


‘어디있지? 대전콘서트에 온다고 했는데?’


또르르 눈동자를 굴리며 그녀를 찾기에 바빴고, 다른 소녀팬들은 그 눈빛이 마치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으로 착각하며 크게 함성을 질렀다.


‘저깄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앞줄, 가운데 좌석.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소녀팬을 보면 어렸을 적 그 여자아이가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 웃음에 소녀팬들의 함성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꺄아!”


“오빠가 날 보고 웃었어!”


“아냐! 날 보고 웃은 거야!”


전광판에 비치는 고언의 미소는 그 소녀를 향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언은 어김없이 소녀팬이 전해준 유리구슬을 그녀의 품으로 던져넣었다.


“이번엔 구슬 던질테니까! 잘 받아!”


“꺄아!”


“던졌는데 잘 받았어?”


그가 던진 유리구슬은 매번 맨 앞줄, 가운데 자리로 정확히 떨어졌다.


“이번엔 내가 얼마 전에 작사, 작곡한 노래 들려줄게. 제목은 ‘유리구슬’이야”


그 소녀를 위해 작사, 작곡한 노래였다.


[“귀여운 나의 작은 소녀- 난 어린 소년- 우리가 놀던 그 놀이터 기억해? 힘들 땐 나에게 기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유리구슬 속에- 네 얼굴이 보여-”]


누가 들어도 소녀, 본인을 위한 노래였다. 소녀는 설사 구슬이 멀리 떨어져도 행복했다.

그의 미소가 이미 자신의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꺄아! 프린스 오빠!”


“꺄악!”


마지막 콘서트 3일 전, 광주에서 열린 악수회.


‘어딨지? 오늘은 안 오는 건가?’


그는 벌써 자신도 모르게 긴 줄에서 소녀를 찾고 있었다.


“오빠!”


‘찾았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소녀의 미소는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렸다.


“와 줘서 고마워.”


다른 팬들도 보고 있던 자리.


‘보고 싶었어.’


보고 싶단 말은 차마 하지 못 한 체 그 소녀를 더욱 꼭 껴안아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꽉 잡은 손.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본명이 뭔지, 사는 곳은 어딘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놀이터 근처에 아직 살고 있는지?

하지만 다른 팬들의 아우성에 꽉 잡은 손을 놓아야만했다.


“아! 앞에 뭐야!”


“빨리! 빨리!”


“저 여자애 누군데? 경호원들 뭐하는 거예여?”


악수가 조금만 지체되도 팬들이 술렁거렸고, 그녀의 손을 놓는 순간. 언의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마음 속 어딘가가 두근거리고 설레는 기분.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그의 설레임.

그렇게 고언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


“근데 그게...서연두 너였다고?”


고언은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게다가 그 소녀는 이미 죽은 상황.


‘그 소녀는 죽었어! 이미! 13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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