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May 07. 2024

'비건페어'에 다녀와서 소고기가 더 먹고 싶어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기가 땡기는 건가?' 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아서

 


2024년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코리아비건페어



우울한 야만인


그래, 나는 야만인이었다. 비건페어를 다녀오자마자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나를 향해 남편이 야만인이라 불렀다.


"비건페어는 왜 갔다온거야? 소고기 먹으면 거기 갔다온 의미가 사라지는 거 아냐?ㅋㅋㅋ" 나를 향해 남편이 비웃으며 손가락질했다.  


매년 비건페어, 비건박람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요리에 쓸 신박한 식재료를 찾기 위함이었다. 비건이나 채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새로운 식재료가 있다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앞으로 육식을 대체할 수 있는지? 맛과 식감 등 여러가지가 궁금해서 부스 담당자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직업병이라 해야할까? 식품과 관련된 궁금증들은 아가가 처음 맛 본 과일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또 그러한 궁금증들이 해결되면 멋진 요리를 창작하거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데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식품과 관련된 박람회는 공부라고 생각하며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4000원의 입장료를 미리 지불하며 사전등록까지 마쳤다. 하지만 박람회에서 느낀 기분은 썩 좋지 못 했다.


 


사기꾼 혹은 시식꾼(?)이란 오해


식품영양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부스를 둘러보면서 성분이나 제조과정에 대한 자연스런 궁금증이 일어 질문을 하면 싸늘한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대체적인 과정만 얼추 맞장구 쳐주셔도 어느정도 궁금증이 가실텐데 입 꾹 다물고 차가운 눈빛으로 마치 상품을 경호하는 경호원처럼 말을 빙빙 돌려 에워싼다.


푸드 크리에이터, 식품영양학, 영양사라는 직함도 내세울 수 없다. 더 사기꾼 같아 보이기 때문에. '이런 성분을 가지고 이런 제형의 제품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시다!' 와 같은 감탄도 꿀꺽 삼키게 된다.


'이런 균주를 가지고 이런 발효식품을 만들다니! 정말 놀라워요! 개발자 분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와 같은 소리도 그들에게는 기술을 탈취하기 위한 사기꾼의 말소리로 들리나보다. 부스에서 팔고 있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당장 내쫓을 기세와 눈빛으로 몰아세운다.



작년과 다른 분위기


불경기의 영향 때문인지 올해 더 부쩍 불친절함을 많이 느꼈다. 모든 사장님이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기분 나쁜 부스가 너무 많았다. 무겁게 물건을 바리바리 가져오기 싫어서 온라인 주소나 부스 이름을 찍어두고 집에서 내돈내산으로 온라인 주문을 하는 편인데 눈치 보여서 이것저것 구매도 많이 했다.


사기꾼이란 오해를 받기 싫어서 한 불편한 억지 구매. 작년만해도 이렇진 않았었던 것 같은데? 템페라는 좋은 식재료를 발견한 것도 비건박람회에서 친절한 대표님을 만나 제품에 대한 스토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장님은 왜 이런 사업을 시작했고, 어떻게 템페에 빠져들게 됐으며 지금은 가족끼리 사업을 하고 있다 등등 인간적인 부분까지 친절히 말씀해주셨다. 지금도 나의 물음이 귀찮으셨을텐데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아직도 온라인 구매를 이어가는 단골집 중에 하나다.



내 전화번호를 적으라고요?


그런데 빵을 팔고 있는 부스에서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동물성 재료가 없는 비건빵. 맛도 괜찮은 것 같아서 아침 식사빵으로 꾸준히 구매해보려고 사장님께 명함 한 장만 부탁드렸다. 연남동에 카페도 하고 계신다는데 부스이름이랑 카페이름이 다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명함을 받고선 연남동 카페에 놀러가보겠다고 했다. 부스에서 팔고 있는 빵은 덩어리째로 부피도 컸고 여러 개 사오려면 버거운 무게였다. 무엇보다 카페에서 커피와 먹어보고 싶었고, 마침 남편과 연남동에 가보자고 얘기가 오갔기때문에 차를 가져가서 빵을 사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사기멘트처럼 들렸던 걸까?


사장님이 수첩을 내밀더니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가라고 했다. 솔직히 난 장사꾼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순수한 내 개인정보를 남발하기 싫었는데 우선 불쾌했지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라시는 걸까?


"빵이 맛있어요! 혹시 카페도 하시나요? 카페에 놀러가볼게요!" 와 같은 칭찬멘트는 당장에 현장에서 빵을 사지 않으면 사기꾼 멘트로 들리는 건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니 얼른 썩 꺼지라는 눈빛은 아직도 지울 수 없다.


사기꾼, 시식꾼 취급 받기 싫어 곱게 화장도 하고 옷차림도 원피스로 단정하게 입고 갔다. 4000원의 사전등록비도 결제했는데? 아무튼 그때의 불쾌한 기분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갑자기 소고기가 먹고 싶은 이유


불쾌한 기분 때문에 갑자기 소고기가 먹고 싶어진걸까? 스트레스와 식욕에 관하여 논문을 찾아봤는데 상당히 연관성 있는 결과를 발견했다. 특히 '음식에 대한 갈망'은 비만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다.


1. 행동학이나 심리학 방면으로 식욕은 감정(갈망, 동기부여), 인지(학습, 기억, 의사 결정), 감각(시각, 미각, 후각) 등 뇌의 신경계(경세포, 신경전달물질, 호르몬)과 관련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2. 특히 인간의 뇌는 고칼로리 음식 이미지를 접할 때 뇌가 더욱 활성화된다.

(*출처: 음식에 대한 갈망, 탐색 및 소비 행동: 동물 및 인간 연구에 사용되는 개념적 단계 및 평가 방법, 2019, 대한비만학회)


3. 뇌의 보상 시스템은 쾌락적 섭식, 즉 맛있는 음식의 섭취조절에 관여한다.

4. 다른 중독 행동과 마찬가지로 중변연계 도파민성 경로는 쾌락 섭식에 관여한다. 맛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도파민 신경경로가 활성된다.

5. 쾌락적 섭식은 대사신호에 의한 조절을 받으나, 포만신호와 별도로 작용할 수 있다.

(*출처: 식욕조절 기전과 비만, 노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내분비내과, 2022, 대한당뇨병학회)



고기, 고칼로리, 포화지방. 동물성 기름의 고소한 맛. 배가불러도 쾌락적인 식사는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난 육식이라는 쾌락적 식사에 중독되 있는 것은 아닌가? 소고기를 입에 넣으면 뇌에선 도파민이라는 쾌락적 신호를 분비한다. 그 중독적인 맛에 스트레스를 잊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인간이란 것도 잊은 체.


배고픔을 느낄 때 내가 도파민을 쫓고 있는 건 아닌지?생각해보게 된다.



야만적인 영양사의 레시피

https://youtu.be/Q1drWGwbqvA?feature=shared

매거진의 이전글 EBS '귀하신 몸'에 제가 나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