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누리는 행복
모두가 누리는 행복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19화
자녀가 잘못하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부모와 다르게 생각하면 답답하고 화가 나요. 이럴 때 참아야 해요.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아이 생각을 존중해야 해요. 물론 생각을 바꿔 주려고 노력해요. 아이가 꼭 들어야 할 말은 해야죠. 이때도 아이를 존중해요. 잔소리가 아니라 굵은 소리로 말해요. 가끔, 진지하게, 화내지 말고, 천천히 말해요. 아이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도록 말해요. 그러면 아이가 들어요. 제가 아이 생각을 들으면 아이도 제 생각을 들어요. (『제대로 독서 진짜 공부』275~279쪽)
권일한 선생님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잔소리를 여러 번 하지 말고 꼭 해야 할 말은 굵은 소리로 - 진지하게, 화내지 말고, 천천히 말하라고 합니다. 이것만 돼도 부모가 자녀와 감정 상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초등 2,4,6학년 아이들에게 저는 딱히 잔소리할 일이 없습니다. 저만의 착각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첫째에게 팩트 체크를 했는데, 맞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는 잔소리를 하거나 화내는 경우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음에 그러지 말자" 이런 식이라고 하네요. 잔소리도, 화낼 일도 별로 없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며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스스로와 가족이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생활 기술들은 초등 입학 전에 '습관'이 되게 한다.
- 정해진 시각에 자기(정해진 시각에 자면 아침에 힘들게 깨울 필요가 없습니다.)
- 영상이나 TV 시청: 제한된 범위 지키기
- 식탁에 앉아서 밥 먹기
- 하루 3번 양치하기
- 외출 후 바로 손 씻기
이런 단순하고 간단한 것들입니다. 살면서 무수히 반복되는 유익한 행동을, 생각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해야 할 때마다 고민하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유아 때는 제가 그림책을 읽어주기만 했을 뿐 학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기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습니다. 한글은 모국어라 6살~8살 사이에는 익히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생활습관과 놀기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기본생활습관 덕분인지 저희 아이들이 힘들다고 느껴진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3명인 게 좀 정신없긴 하지만요.^^)
2. 집공부 스킬: 공부는 당연히 하는 것이다.
저는 수학만 초2 겨울방학부터 10~20분씩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수학은 학습 부진이 누적되면 학창 시절이 많이 힘들어지는 것 같아, 선행은 전혀 시키지 않되 해당 학년의 학습 내용은 이해하고 넘어가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게 합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한다면, '네가 학생이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커서 원하는 일을 하려면...' 등으로 이유를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질문의 의도를 생각합니다. 초등학생의 그런 질문은 주로 '공부가 하기 싫을 때' 나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은 이유는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이거나 '공부 방식이 지겨워서'일 때가 많고요. 그래서 그런 질문이 자주 나온다면, 저는 아이가 공부하는 난이도나 분량을 살피고 기계적으로 많은 분량을 반복해서 암기하는 방식이 아닌지 살핍니다. 그리고 어떻게 조절할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3. 집공부 시스템이나 여행 계획을 짤 때 아이의 의견을 반영한다.
공부를 얼마나 할지, 공부에 대한 보상(재미의 개념으로 조금씩 보상을 넣습니다.)은 어떤 것이 적절한지 아이들과 많이 의논합니다. 물론 지금은 제가 초등교사로서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제 의견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분위기가 큽니다.(매우 설득이 쉽습니다.ㅎㅎ) 하지만 내년엔 첫째도 중학생이 되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계획을 먼저 짜고 저는 의견을 내는 사람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려고 합니다.)
여행을 갈 때도 여행지 선정을 비롯하여, 여행지에서의 세부 일정도 아이들과 함께 정합니다. 지난봄, 다낭에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당연히 좋아할 줄 알고 다낭 여행을 하루 종일 신나게 추진했습니다. 구글 지도로 숙소도 알아보고, 지인과 일정도 맞추고, 갈 만한 곳도 다 검색했지요. 이제 비행기 티켓팅만 하면 끝이었는데 혹시 모르니 아이들과 밤에 이야기해 보려고 잠시 보류했습니다. 아이들은 다낭 이야기를 듣고, 구글 지도로 다낭을 찾아보더니, 특별히 가고 싶어 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은 워터파크였습니다. 첫째는 한 유튜버가 소개한 국내 최대 워터파크 2군데 중 한 군데를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동생들도 그 의견에 합세했습니다. 해외여행을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유순하 작가님의 책에도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이 부분을 읽고, 다낭 여행을 취소하고 워터파크로 간 것이 아이들 마음속에 존중받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셋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이니까 뭐라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 친척까지 데리고 강화도 나들이를 했다. 그날 출발할 때부터 셋째는 잔뜩 부어 있었다. 강화도에 가면 좀 달라지겠지 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셋째가 그날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컴퓨터 게임이었다. 그날 출발 전에 셋째의 의사 타진을 해야 했다. 이런 시행착오는 그 뒤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부모가 바뀌면 자식이 산다』317쪽~318쪽)
4. 공동양육자가 일관된 의견을 개진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 및 공동양육자가 있는 가정이라면, 일관된 의견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저희 부부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한쪽의 말이, 다른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아 보여도 아이들 앞에서 의견 충돌이나 대립이 심화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만 무언가를 조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그건 엄마 혼자 결정하기 좀 어렵네. 아빠랑 상의해봐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시간도 벌고, 실제로 마음의 짐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늘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특히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조심했습니다. 절대 아이들 앞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말과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연애할 때부터 존댓말을 썼고, 그게 자연스러워 지금도 존댓말을 섞어 씁니다. 교사로서도 학교에서 늘 다른 교사들에게 존댓말을 쓰며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이려 했습니다. 그 모습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러운 어른들의 모습'이길 바랐습니다. 부부가 일치된 의견을 가지기 위해, 근거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거나 다른 가능성이 있진 않을지 자주 대화했습니다. 부부가 서로 존중한다면 아이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라 믿으면서요.
5. 너무 많은 규칙을,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6학년인 첫째는 학교 다녀와서 교복을 자기 직전까지도 입고 있는 날이 많습니다. 2학년인 막내는 아직도 '매일 알림장 꺼내서 확인받기'와 '물통 내놓기'가 습관이 안되어 2,3일에 한 번씩 꺼냅니다. 4학년인 둘째는 하루만 지나도 자기 방바닥이 벗어둔 옷으로 가득 찹니다.
저도 제 삶을 살아야 해서 이 모든 걸 규칙으로 만들고 습관이 되게 하긴 어렵습니다.
막내는 알림장 사인을 안 받아서, 칭찬 스티커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정도의 아쉬움은 스스로 감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신경 끕니다.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는다.'가 절대적인 규칙도 아닙니다. 첫째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꼭 나갈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 그러다가 자기 직전까지 옷을 안 갈아입고 버티는 습관이 되었죠. 첫째는 이 습관을 바꿀 필요를 못 느끼겠고, 이대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존중합니다. 다만 '잠옷이 아닌 옷을 입고 침대에 누울 수는 없다'는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서 무언가 하고 싶을 때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서로 대화하며 적당히 합의점을 찾아 살아갑니다. 아이들을 제 기준대로,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한 집에 사는 동거인'으로 여기려고 노력합니다. 서로 불편한 게 있으면 부탁하고, 특별히 불편이나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존중하려고 애씁니다.
자식 내 맘대로 되는 거 아니다.
저와 남편은 둘 다 교사라, 부모와 다른 자녀의 모습을 볼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부모가 돈이 많아서 최고급 과외를 붙여주고도 아이를 원하는 대로 빚을 수 없는 모습이나, 무섭게 혼낸다 해도 아이 마음의 중심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모습을요. 그렇다 보니 '자식 내 맘대로 되는 거 아니다'가 자연스럽게 저희 부부의 기본 전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유아기일 때는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 떼쓰거나 그게 안돼 성을 낼 때 단호하게 가르쳤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 마음도 있는 거지. 모든 걸 니 맘대로 할 순 없어."라고 말하면 남편은 옆에서 "나도 내 인생 내 맘대로 다 못한다. 너만 그런 거 아니다."하고 거들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이런 말을 할 일도 없지만요.
교사로서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실에서나 집에서나, 먼저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고쳐야 할 행동이 있다면) 관찰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천천히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 일이 가르치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아이의 일이 되도록, 아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대화를 합니다. 또 아이가 바뀌려고 노력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작고 사소할지라도 빨리 알아차리고 칭찬하며 적절히 피드백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도, 부모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또한 인격이기 때문이죠. 이해하고 살펴야 하는 존재는 아이보다 부모 자신이 먼저입니다. 보편적인 욕망, 좌절, 불안, 행복이 한 개인인 나의 서사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타인을 이해하기는 더 쉽지 않을까요? 앞선 화에서 이야기한 A아버지도 책을 쓰며,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랬기에 이런 반성의 책을 쓸 용기가 있으셨던 것 아닐까요.
아빠처럼 걷는 아이, 엄마처럼 웃는 아이를 아빠와 엄마의 생명이 낳은 작품으로 길러내는 게 교육입니다. 학원에 보내더라도 '내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아야지요. 학원이 아이에게 맞는지 생각하고 보내야지요.
"학원 자리 구하느라 힘들었어. 어렵게 구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학원에 맞춰서 잘 버텨봐!"
이렇게 말하며 다가가지 않아요. 아이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시켜도 잘 따르지 않아요. 아이는 저마다 독특한 작품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따라 하지 않고, 아이를 인격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지요. 그게 어른이고 부모 아닌가요? (『제대로 독서 진짜 공부』267~268쪽)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다시 이 질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내 성에 차지 않는다고 아이를 다그치고 화내는 것, 남들 다 그러는데 나라고 어쩌겠냐고 말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런 삶이 자연스러워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럴 때야말로 창의성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한 게 당연한 건 아닐 거야.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이런 마음으로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쓰며)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애쓰곤 했습니다.
집공부를 시작한 건, 단순히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교사이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고요.
올해는 세 아이가 모두 초등학생인 마지막 해이고, 휴직을 한 덕분에 집공부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글을 썼습니다. 다음 화는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시즌1의 마지막화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