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공부는 힘들어
집공부는 힘들어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시즌1 마지막화
집공부 4화에서, 이 브런치는 1년 치 연봉을 포기하고 정리한 생각들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집공부가 힘든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1. 가족의 건강한 의식주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2. 워킹맘으로서 나도 너무 피곤하다.
3. 내 휴식, 내 독서 등 그 무엇에도 오래 집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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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해 휴직을 하게 된 것은 작년 말 학교에서 일어난 어떤 갈등 상황이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브런치 글을 쓰고 보니, 세 자녀의 집공부를 돕느라 이미 지쳐있었고, 휴직이 너무나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새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집공부를 하게 된 건 '학원비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이가 셋이라 학원비는 늘 곱하기 3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원에 보내면 정말 큰 지출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학원을 보낸다는 생각은 배제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학부모님들께 '집에서 이렇게 도와주세요~!'라고 권해 드렸던 방법들을 보란 듯이 실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나는 교육 전공자니까,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교사니까, 더 잘할 거라는 자신감으로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학부모님께 열심히 권해드린 내용들을 기억해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이지만, 모든 항목에 스스로 합격점(O)을 줍니다. 제가 권한 것들 중 실천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만 하지 말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O)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O)
자기 주도적으로 생활하고, 가사에 참여시켜 주세요. (O)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특히 수학공부) 꾸준히 갖게 해 주세요. (O)
공동양육자가 서로 존중하고 일치된 의견을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세요. (O)
학부모님들께 권했던 내용들은 '제가 옳다고 믿는 것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 것들'이었습니다. 자녀를 키우며 제가 믿는 것들을 실천해 온 시간을 10여 년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은 자신만만함이 아니라, '내가 잘나서 해낸 게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숙연함(친정어머니와 어린이집의 도움)과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을 향한 연민입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최근에 다시 읽었습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당했고, 자라면서 쌓여왔던 폭력들이 꿈으로 나타나고 주인공의 일상을 침투합니다. 그녀는 누구도 해하고 싶지 않아 채식을 시작했고, 점차 먹는 행위를 거부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그녀에겐 또 다른 폭력이었던 겁니다.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때, 영혜(주인공)에게 고기를 강요하며 때리기까지 한 사람은 아버지이고, 옆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라고 다른 가족들도 오히려 영혜를 탓합니다. 결국 모든 가족이 영혜를 비정상 취급하며 떠났고, 언니는 죽어가는 영혜를 보며 갈팡질팡합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자신의 딸이 청소년이 될 때까지 종아리를 때린 아버지는, 전쟁에 끌려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과거가 있습니다. 그 죄의식이 옅어져 나중에는 자신이 전쟁에서 죽인 사람 수를 자랑하듯 말하죠.
형부는 자신의 아내처럼 이 세상에 완벽히 적응한 사람('살아가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지만 자신의 예술적 욕망과 이미지 실현을 위해 처제를 이용하는 폭력을 가합니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본화와 비인간화 속에서 상처받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며 나의 욕망을 우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차이와 다름은 환영받지 못하고, 획일성이 강요됩니다.
이런 세상을 탓하며 아이들에게 계속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남보다 나을 수 있는 무기와 스펙을 장착해주려고 한다면 저 역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것 아닐까요.
집공부도 결국,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또 다른 무기와 스펙을 만들어주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살면서 더 좋은 아이템을 획득할 능력과 경로를 만들어주려면, 부모가 직접 학습 지도를 하기보다는 전문가(학원 등)를 찾아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며 최상의 학습 방법, 습관 만들어주기 등을 많이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도록 돕는 도구, 사랑과 관심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인국 교수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가장 큰 변인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과 깊은 친밀함을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인사를 주고받는 약한 연결성까지도 포함하여,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미래사회는,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1:1의 깊은 관계를 없앱니다. 모든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며 가벼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시킵니다. 또, 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예기치 못한 일에서 겪는 불안은 환각 작용을 주는 알약으로 회피하게 합니다.
아이의 성적, 또래와의 비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내 아이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아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
승진, 재테크, 강연, 쇼츠, 스마트폰 스크롤링 같은 것들이 나를 위로하는 알약이 되어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더 이상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도착한 디스토피아입니다. 물론 『멋진 신세계』는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나는 그 디스토피아에 맞게 점점 셋팅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 시기의 행복과 사랑이 아이의 삶에서 늘 함께하며 힘을 줄 것입니다.
내년이면 첫째가 중학생이 되는 시점에서,
저는 가급적 첫째가 원하는 대로 해볼 수 있게 돕겠다고 다짐합니다.
더 이상 집공부만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가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 다닐 수 있도록,
공부를 더 적게 하고 다른 무언가가 더 하고 싶다면 그럴 수 있도록,
옆에서 늘 코치하기보다는 조금 비효율적이더라도 혼자서 겪어볼 수 있도록
아이의 눈빛이 닿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귀 기울이고 방법을 찾아보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그 '원함'이, 저를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ㅎㅎ
정작 아이는 저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초등까지 잘 잡힌 습관을 바탕으로 좋은 선택들을 해 나갈 것 같아요. 실패를 겪으면서도 배움을 얻을 것 같고요. 오히려 저의 불안과 통제 성향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많이도 알아보고 고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작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제 스스로일 것 같아요. 내가 나를 힘들게 몰아가지 않도록, 더욱 저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위해주기로 다짐합니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가는 하루하루라는 길 위에서
함께 대화할 수 있고, 같이 밥 먹는 게 즐겁고, 솔직한 마음을 말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일 것 같습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시즌 1을 마치며...>
브런치북을, 들장미가 찬란했던 5월에 시작하여 2개월간 몰입해서 썼습니다. 집공부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이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마음을 쏟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첫째는 중학생이 될 테니 이제 점점 더 제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고, 둘째와 셋째는 아직 초등학생이니 지금까지처럼 굴러가게 되면서 저는 복직을 하겠지요. 즉, 앞으로도 집공부는 힘들 예정입니다. ^_^
아이들이 커서 제 글을 다 볼 텐데 감히 자녀 교육에 대해 글을 쓰다니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브런치북은 삭제가 안되고, 글을 지우려면 여러 방법을 찾아서 애써야 하는 시스템이더군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아이들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지고, 제 마음도 살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먼 훗날 아이들이 읽어도, 제가 제 글을 읽어도, 지금 현재에서 최선의 사랑과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제가 과거의 일기를 읽을 때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
그간 제 글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서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을 챙겨 볼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시즌 1을 마감하는 덕분에 올여름은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건강한 여름 보내시고, 방학 동안 아이들과 많이 웃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