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아버지 이야기
A아버지 이야기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16화
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빠가 교육 및 학습지도 쪽을 맡은 경우입니다. 두 분의 책을 읽으며 특히 청소년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가 어떠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녀를 모두 명문대에 보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세 아이 모두 성적이 좋았고, 특히 학교 시험보다 연합고사나 수능처럼 시험 범위가 광범위한 경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문해력, 이해력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세 자녀 모두 우열의 차이 없이 고르게 우수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독서 수준도 아주 높았습니다.
어릴 때,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끝없는 아이들의 질문들을 귀찮아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억압이나 강제 없이 최선을 다해 대꾸하였다고 합니다. 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라는 말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유도했다는 걸 보면, 아이들의 질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좋은 성적, 성실한 자세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시험 일정을 모르는 아이도 웃어넘길 정도로) 돈이나 명성이 아닌 보람과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는 아이들을 존중했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폭력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으레 나뉘어 있던 시절에도 설거지를 비롯한 가사를 솔선수범했습니다. 검소하고, 바르게 살려고 늘 애쓰셨던 분입니다. 알아차린 분들도 계실 것 같아 미리 밝히자면, 아버지 A는 브런치 7화 글에서 소개한 『부모가 바뀌면 자식이 산다』의 저자 유순하 소설가입니다. (두 아버지의 대비 효과를 살리기 위해 여기서는 A, B로 지칭합니다.)
https://brunch.co.kr/@omyjesus/70
하지만 이 아버지는 자신이 쓴 책에서 명확하게 '나는 자녀 교육에 실패했다.'라고 씁니다. 실패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과의 정서적 장벽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된 외로움, 소외감을 크게 느끼는 것이죠. 이와 관련된 내용을 책에서 인용해 봅니다. (모든 인용문은 강조 표시를 비롯하여 제가 임의로 줄이고 편집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문제를 부모에게 투정이나 하소연처럼 가져온다. 그럴 경우, 부모가 해서는 안 될 말에는 이런 게 있다.
1) 강요하고 명령하는 말
2) 경고하거나 위협하는 말
3) 설교하는 말
4) 도덕적 행동을 요구하는 말
5) 충고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말
자식이 의논해 올 때 먼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이야기 가운데 아이의 불찰 부분을 꼬집어 지적하면서 설교를 하거나, 도덕적 행동을 요구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든다. 더구나 부모가 만들어 놓은 틀을 아이가 벗어나려는 기미를 보이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안 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식의 입장에서는 괜한 의논으로 말미암아 잔소리만 듣고 새로운 금제禁制만 만들게 된 셈이다. 투정이나 하소연하는 얼굴을 향한 그것은 곧 면박이다. 그런 경험이 결국 부모를 의논권 밖으로 밀어낸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논했을 경우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환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닐 페리의 말 - 저는 아버지가 뭐라 말씀하실 것인지 알고 있어요.
모든 게 그렇듯이,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왕따가 되는 것도 자업자득인 셈이다. 내가 위의 같은 태도로 자식을 대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것 역시 자기 위안일 듯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어느 날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의논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느 날'이 언제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나마 뒤늦게 잔소리를 끊는다고 끊었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고 사후 약방문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과 평등하고 친밀한 우의를 나눌 수 없는 실수를 이미 저질렀고, 그 바람에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나로선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정서적 장벽이 이미 높직이 쌓아 올려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고 싶어 교태(과장이 아니다)를 좀 지어 봐도 아이들은 네, 아니오 식의 의례적 대꾸나 마지못한 듯해 줄 뿐, 나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일종의 면박이다. 그러면 나는 항복, 하는 심정으로 잠자코 물러나서 열심히 표정 수습을 한다. 지난날에 대한 회오는 크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이제 나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아이들의 통찰과 이해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나 자신의 지난 자취를 깊이, 쓰라리게 반성하며, 저희들 스스로의 뜻으로 나를 향해 다시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280~282쪽)
A아버지는 금기 다섯 가지를 한 마디로 줄여 '잔소리'라고 표현합니다. A아버지는 잔소리로 인해 자신이 자녀들의 의논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반추합니다. 특히 이 아버지는 '시간 지키기'에 대해서 잔소리한 것에 대한 후회를 씁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된 사정으로 이사를 한 후) 이사한 곳에서 아이들 학교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둘째와 셋째의 등하교를 내가 도와야 했는데, 서로 약속된 아침 시간에 아이들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겨울에는 엔진 예열을 위해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내려가 있었는데도 아이들 늑장은 그대로였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 등교 시간에 늦지 않게 교통 신호 위반까지 무릅써야 하는 지경이 되기 때문에 짜증 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갈등은 셋째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이어졌다. 시간 때문에 갈등해야 할 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 어김없이 떠오른 잔뜩 부어 있는 표정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고, 차에서 내릴 때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아이들의 그 시간 감정 표현은 극대화되었다.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결국은 나와 아이들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풍화나 침석처럼 아주 집요하게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66~67쪽)
이때는 '라이딩'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무려 4년 동안 등하교 라이딩을 하신, 대단한 아버지입니다. 아이들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늦지 않게 해 주려는 마음과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부모로서는 너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고 혼난 기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낮잠 자다가 꿈을 꾸는데 아빠가 나와서 잠이 방해가 됐어. 길이 막혀서 늦었는데 아빠가 왜 늦게 왔느냐고 막 야단치는 거 같았거든."
A아버지는 책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문학과 지성사, 이재황 옮김)의 일부를 인용하며 자신의 이중성을 반성합니다.
(식탁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바닥에 흘리지 않도록 다들 주의해야 했지만 결국 가장 지저분한 곳은 바로 아버지 의자 밑이었지요. 식탁에선 오직 식사에만 열중해야 했으나 아버지는 손톱을 자르시거나 연필을 깎으셨고 이쑤시개로 귀를 청소하셨지요. 제발 부탁드리는데, 아버지, 제 말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서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들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것들은 아버지가 제게 내리신 계율을 아버지 스스로 지키시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저를 짓누르는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성장 과정에서 가까이 접하는 부모와 교사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일 때, 아이들은 처음에는 의혹을 느끼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어른들과 사회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 나가게 된다.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유해한 교육 환경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교사와 부모들이라 할 수 있고, 그 아이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성장 과정에서 존경하는 스승과 부모가 없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식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대지 않도록, 부모는 죽을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것이 문제다. (283~285쪽)
아이들 느낌 면에서 볼 때, 나는 '민주주의자의 탈을 쓴 전제주의자' 같은 존재였다. '무늬만' 민주주의자였던 셈이다.(269쪽) 나는 독립된 개체로서 자식들의 권한과 능력을 존중하고, 아이들 결정과 선택을 바라보려 했지만, 자식들의 느낌과 기억은 다르다. 얼마 전, 둘째 아이 결혼 문제 때문에 이야기하는 자리에서였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째가 이미 결정한 내용을 듣고 있던 자리였다. 그러다가 '부모의 허락'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반문했다. "단지 너희들 결정을 바라보고 있기나 했을 뿐, 내가 너희들의 어떤 일을 허락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자 셋째가 나를 좀 놀리려는 듯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버지 생각에는 그러셨던 거죠."
그 장면에서 '야, 새꺄! 이 세상에 나만 한 아버지가 어디 쉽냐?' 이렇게 들이받고 싶었으나 꾹, 삼켰다. 들이받아 봐야 본전 찾기도 어렵다는 헤아림보다는, 그것이 아마 자식들의 오해만은 아닐 것이라는 체념 때문이었다. 역시 무늬만 민주주의자였던 나는 자식들의 사실적 독립과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그것이 나와 자식들 사이에 이루어진 갈등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자식들을 대충 다 키워 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274쪽)
A아버지를 모두 대단한 아버지라고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들에게 체벌 같은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고, 설거지나 집 안 청소 같은 것도 우리 가족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쪽이었다. 직장 생활하던 시절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잊고 간 준비물이 있어 전화가 오면 그것을 학교까지 배달해 주는 일은 내 몫이었고,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의 우산 배달도 역시 내 일이었다. 나는 이사 때문에 4년 동안 아이들 등하교를 도왔고, 둘째의 경우에는 잡지사 기자로 야근이 잦았는데, 대개는 자정 넘은 시간에 아이를 태우러 갔다. 이런 아버지 쉽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267~268쪽)
'이런 아버지 쉽지 않다.'는 것은 조금의 과장이 아닌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쉽지 않은, 말 그대로 '헌신'이었습니다.
하지만 A아버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 입도 떼지 않는다. 일부러 다가가 말을 걸어도 마치 말을 아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나 아니오로 기계적으로 끊어 답하며, 찬 기운이 섬뜩하게 감도는 데면데면한 얼굴로 어서 물러가 주기를 거의 명시적으로 바란다. (275쪽)
어떤 형식으로든 아이와 만나기 위해, 역시 그럴 만한 건을 일부러 만들어 이메일을 보낸다. 그런 나의 시도에 대해 예, 아니오 식 회신이라도 오면 그것은 천운에 속하는 것이고, 과연 수신이 되었는가 하는 게 의문스러운 경우가 태반이었다.(수신 확인 기능이 없던 시절이고, 세 아이 모두가 꼭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아이들이 자기 친구들을 대할 때는 180도 달라진다. 전화로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 표정과 표현이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제 부모를 향하는 표정과 눈빛에는 조금 전의 그 다양, 풍부, 색채는 이미 지워지고 없다. 냉랭하다. 기계 인간 같다.
또 우리 부부가 빠진 3남매끼리 모였을 때는 화제가 풍성하고 윤택하다. 저희들은 이야기를 서로 나눴는데, 우리 부부는 모르고 있는 경우도 뒤늦게 알게 된다. 왕따가 되었다고 야속한 마음을 먹어 봐야 아이들과 부모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나 할 뿐, 아무 소용도 없다. (276~277쪽)
자식으로부터의 서운함, 소외감, 외로움이 화를 내거나 원망으로 바뀌지 않고, 반성으로 이끕니다. 이 점이 마음 아프면서 A아버지의 위대한 겸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직업 때문에 학부모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와 사이가 나빠지고 싶은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잔소리나 안전한 길을 강요하게 된다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좋은 대학 나온 저도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혹은 저처럼 어중간한 대학 나와서 저처럼 살면 어떻게 해요."
"입시는 경쟁인데 내 아이만 경쟁에서 도태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진짜 적게 시키는 거예요. 아이 친구 누구랑 누구를 생각하면... 이거라도 안 하면..."
맞습니다. 너무나 일리 있고 공감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B 아버지의 사례를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ssam.teacherville.co.kr/ssam/contents/8311.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