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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정 Jul 07. 2024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87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통영은 스무 살에 떠난 후로

수도 없이 다시 돌아오는 곳이다.

백석시인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다고 했던 곳.


'명정샘이 있는 명정골'에

시인의 연인, 난이라는 처녀도 살았었고

나도 거기 살았다.

태어나서 살던 집이 아직도

서피랑 아래 퍼렇게 그대로 있다.


정당새미* 윗우물은

충렬사에 올리고 식수로도 쓰고

아랫우물은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여름밤에 아이들을 씻기고 목욕도 했는데

동네 선머스마들이 어둠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어서 보고 있었지.


연탄재 버리는 날

비탈길을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하얀 연탄을 지고 뛰어내려 가고

아낙들이 정당새미에서 기른 물을

물동이에 이고 오르던 그 골목길.

나는 매일 서럽게 학교 오가던 길.


놀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 다쳤는데

지금 서 보니 허리 높이도 안 된다.

골목집들은 장난감 같고

길은 왜 이리 좁은 건지.

무사 세월만 간 줄 알았는데

나 크는 동안 이 길은 이리 늙어 쪼그라들었나.

골목길은 이제 문학의 길이 되어

칠봉이네 벽에도 위대한 문장이 쓰여 있다.


세상을 여행하다가

몬테로소의 분홍 벽에

얼룩이 돼버린 그 고양이처럼

아주 먼 길을 돌아온 나는

그분의 문장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



*정당새미:명정샘의 옛 이름


*백석시인의 <통영 2>

박경리선생님의 <산다는 것>

에쿠니가오리 씨의 <몬테로소의 분홍벽>의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제목은박경리선생님<산다는것>일부를훔쳐썼어요

#선생님한번봐주세요한동네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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