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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나는, 더블린의 약한 고리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5)



토요일 아침 일찍, 버틀러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세 명의 한국인 스태프가 있었다. 같은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그들에게 특별히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쩐지 나를 맞닥뜨린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마땅치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국인 스태프가 너무 많아요.”


나에게 주방 안의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던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치 멀리까지 어학연수를 왔는데, 교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한국인이어서 잔뜩 실망이라도 한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생각을 했다. 인사 담당자가 한국인을 좋아한다면, 한국인 스태프가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그렇게 말을 한 그녀도, 인사 담당자의 취향 덕분에 이곳에 뽑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이 이곳에 취직하는 건 내키지 않아 하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녀의 '달갑지 않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를 보고 있는 매니저의 '불만족스러움'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나는 플로어에서 서빙을 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지만, 주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내가 결코 유능한 스태프는 아니라는 걸 단번에 들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밤의 하페니 브릿지(Ha'penny bridge). 이 도시는 이렇게나 평화롭지만,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당시 내가 일하게 된 ‘버틀러스’는 더블린에서 가장 큰 쇼핑몰 중 하나인 ‘던드럼 쇼핑 센터(Dundrum Shopping Center) 지점’이었는데, 이곳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가는 카페라기보다는 쇼핑을 하다 지친 다리를 잠깐 쉬었다 가는 곳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 회전율이 매우 높았고, 당연히 설거지거리도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었다. 손님들이 사용한 커피잔이나 수저가 들어오는 속도보다 내가 그것들을 정리해 식기 세척기에 넣는 속도가 더 느렸기 때문에 주방은 금세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런 나를 슬쩍 들여다본 매니저 중 한 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었고, 결국 나를 다시 플로어로 내보냈다.


그러니까 컨널스에게서 메일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이 무색하게도, 나와 버틀러스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긴 했지만, 버틀러스가 그런 나를 포기하는 데는 딱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타부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와 눈 한 번 마주칠 예의도 없이,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야.’라고 말하는 매니저 앞에서 나는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부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당장 다음 달에 내야 할 방세가 부족하긴 했지만.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그녀 앞에서, 나는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녀가 알아들었냐는 듯 그제야 나를 쳐다보았다. 응, 알아 들었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들었어.


“지난 2주 간 일한 급여는 어떻게 해?”


나는 입었던 유니폼을 반듯하게 접어서 반납한 후, 그녀에게 물었다.  


“매주 금요일이 급여를 정산하는 날이야. 이번 주 금요일에 오면 현금으로 지불할게.”


그렇지만 그 금요일에 다시 버틀러스를 찾아갔을 때, 그들의 말은 달라져 있었다.


“급여를 현금으로 지불할 수는 없어. 이체를 해줄 테니까, 네 계좌 정보를 적어놓고 가.”


하지만 2주 후에 입금될 거라던 돈도 당연하다는 듯 입금되지 않았다. 내가 받아야 할 돈은 300유로 남짓*. 당시 내가 살던 집의 한 달 방세가 250유로. 그러니까 나는 그 돈이 필요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그 돈을 지불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나는 아일랜드를 좋아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꽤 친절한 편이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심각한 인종 차별을 겪어본 적도 없다. 좋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은 적도 많다. 그렇지만, 어디서나,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은 그 사회의 약자를 쉬이 알아보는 법.



영화 <Once>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더블린 근교의 '킬라이니 힐(Killiney Hill). 아일랜드는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외국인도 꽤 살기 괜찮은 나라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도 '사회적 약자'로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차별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준 건, 그 이후 오페어를 하면서 함께 살게 된 ‘세라’였다. 그때쯤 나는 버틀러스에서 급여를 받는 걸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라에게 그 이야기를 한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날 우리는 함께 와인을 두어 잔 마셨고, 그녀가 나에게 아일랜드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이런저런 대답들을 하다가, 문득 버틀러스에서의 이야기도 흘러나온 것뿐이었다. 


“말도 안 돼, 단. 그런 일을 겪다니.”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제 나라가 외국인을 그런 식으로 대우한 걸 부끄럽게 여기는 게 분명했다.


“거기가 어디라고? 너 전화번호 가지고 있니?”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세라는 그 일을 그냥 넘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날 오후, 버틀러스에 전화를 걸었고, 어쩐 일인지 나는 그렇게나 통화하기 어려웠던 담당자와 바로 통화를 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별다른 항의도 없이


“너희, 왜 내 한국인 친구가 일한 것에 대해 급여를 지급하니 않니?”


라고 한 마디 말을 하자, 다음날 내 급여는 바로 입금이 되었다.




그러니까,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날 처음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바로 이 사회의 약한 고리라는 것. 약한 고리는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띈다는 것. 한 사회에서 약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차별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은 내가 바로 그 차별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당시 아일랜드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9.80유로, 원화로 환산하면 12,000원 정도였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가능했다. 그 사이 최저 시급이 조금 더 상승해 2020년 기준으로는 10.1유로이며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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