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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나의 아이리쉬 가족들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6)



나를 호쓰(Howth)에 있는 세라네 집으로 이끈 것은 버틀러스에서 들은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야.”     


라는 바로 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크게 좌절하진 않았지만 더는 일자리를 찾아다닐 힘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지막 선택지라고 생각했던 오페어(Au pair)* 자리의 공고가 난 것을 보고 그곳에 지원을 했던 것이다.      





평화로운, 호쓰의 풍경. 나는 희정과 함께 살던 '시티 센터'를 떠나 이 마을에서 세라네 가족과 함께 다섯 달을 살았다. 



사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세라를 만나러 가면서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처음 아일랜드에 올 때부터 오페어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외국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체험해보고, 영어 실력도 키우고, 용돈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오페어 일이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오페어 일을 해서 받게 되는 수고료 정도로는 만족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심드렁한 태도로 호쓰로 향하면서도, 세라가 나를 만나면 마음에 들어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 아이를 가진 학부모가 나를 싫어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세라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어렵지 않게 기대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단,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 집으로 이사 들어올 수 있니?"


그랬다. 웨이트리스가 되는 것은 그렇게나 어려웠는데, 오페어가 되는 것은 또 그렇게나 쉬웠다.





호쓰(Howth)는 시티센터에서 버스로 30분쯤 거리에 있는 어촌 마을이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데다 '아일랜드의 눈(Eye of Ireland)'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텔로 타워(Martello Tower)'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수산물 시장과 피시 앤 칩스가 유명하기도 해서, 유학생들 역시 한 번쯤은 이곳을 일부러 찾곤 한다.  

    

세라네 집은 그 바닷가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있는 평화로운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아일랜드식 주택이 보기 좋게 늘어선 마을. 그 마을 한가운데 세라네 다섯 가족이 살고 있었다. 4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던 세라와 그의 남편 키쓰. 그들의 세 아이 잭과 소피, 그리고 케이트.


세라와 키쓰는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자체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지만, 나에게는 늘 합리적이고 친절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한 적은 있어도 그들 부부 때문에 마음을 다친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 부부를 세 아이들보다 더 좋아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잭과 소피와 케이트를 사랑했다. 그 아이들을 ‘my kids’라고 불렀고, 넘치는 나의 사랑을 듬뿍 담아 'my lovely devils'라고 불렀다. 





집 앞 도로에 새겨진 세 아이의 이름들.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이 아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때때로 아이들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또 그만큼 자주 나를 웃게도 만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벌써부터 사춘기 소년인 체하던 첫째 잭은 제 여동생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한껏 의젓한 척하는 목소리로 ‘소피, 케이트, 단한테 그러지 마.’라고 주의를 주곤 했다. 자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오페어의 돌봄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듯 굴다가도 막상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면 ‘단, 내 체육복 좀 찾아줄래? 오늘 P.E 시간에 꼭 입어야 해.’라고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속삭이는 잭을 예뻐하지 않을 방법 같은 건 결코 없었다. 


막내딸다운 어리광을 한 몸에 타고난 소피는 무척이나 새침한 아이였고, 자주 바뀌는 오페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예민한 아이이기도 했다. 때문에 자신들의 집으로 새로 들어온 나에게 가장 심술궂게 굴던 아이가 소피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 사랑을 가장 애달프게 원했던 아이도 소피였다. 키는 제 언니인 케이트보다 더 크면서도 잘 때는 늘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던 아이. 졸릴 때면 언제나 내게로 다가와, 자신을 2층까지 안아서 옮겨 달라고 말하던 아이. 그러니까 아무리 소피가 나를 힘들게 했어도, 이 아이들을 떠날 때 가장 마음에 밟혔던 아이도 어쩔 수 없이 소피였다.      





머리 빗기를 너무나 싫어하던 이 두 아이들을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피'와 '케이트'를 '나의 아이리쉬 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둘째 케이트는. 아, 그러니까 나의 케이트는!               


오페어 일은 지루하고 따분했고, 종종 나를 서럽게도 만들었다. 아이들과는 당연히 정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종종 심드렁해지던 하루하루 속에서, 나를 자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케이트였다.           


케이트는 잭보다는 두 살이 어렸고, 소피보다는 한 살이 위였다. 굉장히 사교적이고 다정한 아이여서 처음부터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아이도 바로 케이트였다. 가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있으면, 그녀는 내 손을 잡고는 그 물건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간 다음 ‘단, 이게 바로 그거야.’라고 차분히 알려주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케이트가 늘 상냥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키쓰는, 한 번 화가 나면 그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하필 그 성격을 그대로 닮은 것이 케이트였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상냥하게 굴다가도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누구도 달랠 수 없을 만큼 큰 난동을 부렸다.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구사하기도 했고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케이트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키쓰도 세라도 케이트가 한 번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냥 그녀를 방 안에 두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럴 때마다 방 안에서 들리던 그녀의 울음소리는, 마치 상처 입은 어린 짐승의 그것처럼 애달픈 데가 있었다.      


나 역시 그런 그녀를 제대로 달래줄 순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난동을 부리는 케이트마저도 사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 후, 저녁에 세라가 퇴근을 하면 나는 종종 그녀에게 다가가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곤 했다. 


"세라, 케이티는 예술가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가 되거나, 클림트 같은 화가가 될 거야."


그러면 세라는 자신의 둘째 딸에 대한 나의 눈먼 이 사랑을 어쩌면 좋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I know, you love her. Right?"


Yes, I really loved her. 정말이다. 나는 케이트를 많이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오페어로 지내는 나날들을 온전히 즐겁게 만들어 주진 못했다. 내게는 좀 더 사생활이 잘 보호되는 공간이 필요했고, 내년에 다시 어학원에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나를 존중해주려 애썼지만, 일을 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의 명확한 구별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때문에 오페어 생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갈 무렵, 희정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그러니까, 고갈티의 사장인 마틴이 새로운 스태프를 원하는데 혹시 관심이 있냐는 것이었다.







*) 오페어(Au pair). '동등하게'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제공받고 자유 시간에는 어학 공부를 하는 일종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이다. 특정 단체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오페어를 구할 수 있다. Live in au pair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집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고, 반대로 Live out au pair도 존재한다.


**) 아일랜드의 학제는 한국과 달리, 유아 교육 과정(2년)을 포함하여 초등 교육을 8년 동안 받는다. 9월 기준, 아일랜드 나이로 4세가 되면 'Junior infants' 반에 입학할 수 있다. 내가 세라네 집에서 함께 살 때 소피는 5세로 'Senior infants' 반이었고, 케이트는 6세로 초등 1학년, 잭은 8세로 초등 3학년이었다.


***) 나는 다시 Language School에 다닐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더블린에는 1년 더 머물고 싶었다. 그러니까 학생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새로 학교에 등록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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