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lda Sep 19. 2021

살아남는 일의 어려움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4)



더블린에 온 지 넉 달쯤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는 수입 없이 지낼 수 없을 만큼 내 통장 사정이 열악해진 이유였다. 그래서 나름 최선을 다해 CV(이력서)를 작성하고, 무작정 이런저런 가게들 안으로 들어가      


“너희 혹시 새로운 스태프 구하지 않아?”     


라고 물어보고 다녔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았다.




나는 100통이 훌쩍 넘는 CV를 직접 출력해서 돌렸고,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서 지원한 곳은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얻은 인터뷰 기회는 단 세 번 뿐이었고, 그마저도 더블린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오전 시간대에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또는 나보다 더 적합한 후보자가 있다는 이유로 트라이얼(Trial. 아르바이트생을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에, 1~3일 정도 미리 일을 시켜보는 것. 일종의 트레이닝 기간이다.)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사실 주위에서 나만큼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당시 나와 함께 살고 있던 희정도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땐 꽤 고생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CV를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구했다 했다. 벌써 두 달째 CV를 돌리고 있는 나에게 자극을 받아 드디어 자기도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 제나는


“너 저기 한 번 CV를 내봐.”     


라고 내가 밀어 넣은 커피숍에, 단 한 번에 바로 취직이 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물론 제나는 한국에서 살 때 커피숍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멋지게 라떼도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자였다.) 일본에서 온, 같은 반 친구였던 유스케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 데 그렇게 자신 없어했건만 CV를 돌리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일본식 레스토랑에 취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첫 CV를 출력한 지 두 달 반이 될 때까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고, 때문에 이렇게 지내다가는 방세를 낼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해가 지는 더블린의 거리. 나는 이 도시의 아련함을 좋아했지만, 사실 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랬던 나에게 네 번째 면접 기회를 준 곳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냈던 버틀러스 카페(Butlers Chocolate Cafe)*였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낙천과 ‘나한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라는 구제할 길 없는 비관 사이를 끝도 없이 오가고 있었다. 전자가 기본적인 내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는 객관적인 내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내 영어 실력은 별 볼 일 없었고, 한국에서 커피숍이라든가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도 전무했다. 그러니까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넘쳐나는 이 더블린에서 ‘나’라는 사람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나에게, 버틀러스에서 연락을 해올 줄은 몰랐다. 인사 담당자인 컨널스는 내가 처음 보낸 CV는 깔끔하게 외면해 버렸지만, 그로부터 얼마 후 더 정성을 들인 cover letter**와 함께 다시 CV를 보내자, 간단한 메일을 보내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너 번의 메일을 주고받았고, 이후 드디어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컨널스가 나에게 연락을 해온 건, 순전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이 아일랜드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하는 편은 결코 아니지만, 한국인과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했다. 때문에 그다음에도 다시 한국인을 채용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컨널스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내가 나 스스로를 ‘hard worker’라고 말했을 때, 컨널스는,      


“나도 알아. 한국인들은 다 hard worker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약 그가 한국인을 선호하는 인사담당자가 아니었다면 버틀러스가 나에게 인터뷰 기회를 줄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인터뷰가 엉망진창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얼 기회를 얻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올 때, 컨널스가 나에게 별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실패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그에게서 깜짝 메일이 도착했다.    

  

[단,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너한테 연락할 수 있어서 기뻐. 네가 괜찮다면 이번 주 목요일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했으면 좋겠어.]     


그날 내가 느낀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을지도 모르고, 두 손을 꼬옥 쥔 채로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장 희정과 제나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Girls, I got a job!!!] 




버틀러스에서 트레이닝 기회를 얻은 날, 나와 희정은 집 근처에 있던 버틀러스 카페로 가 나의 첫 취업(?)을 축하했다. 



사실 살면서 일자리를 구했다는 이유로 그토록 기뻤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우스운 노릇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내일부터 출근하세요.’라는 말에 들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두어 시간에 걸친 압박 면접을 거친 후 '함께 일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듣고도 면접관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취직된 그 자리를 걷어차곤 했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어느 카페의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토록 기뻐하다니. 그것도 고작 트라이얼 기회를 얻었을 뿐이면서.  


더블린에 온 이후, 그와 비슷한 기쁨을 느꼈던 적이 딱 한 번 더 있었다. 바로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하는 데 성공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더블린에게서 ‘좋아. 이 도시에서 한 번 살아보도록 해.’라는 허락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버틀러스에서 드디어 트라이얼 기회를 얻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더블린이 나를 조금은 어여삐 여기고 있다고. 그래서 나에게, 결국은 이곳에서 살도록 허락을 해줄 거라고 말이다.  





*) 아일랜드의 유명한 카페 체인점이다. ‘초콜릿’ 제품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 CV는 Curriculum Vitae의 약자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력서'를 뜻한다. Cover Letter란, 일종의 '자기소개서'라고 말할 수 있으나, 한국식으로 긴 자기소개서는 아니고 지원하는 회사에 자기를 소개하는 짧은 편지라고 볼 수 있다.

이전 04화 나를 잘 부탁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