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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안녕, 안나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2)



물론 고갈티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고갈티는 나에게 일주일에 55~60시간씩 일해야 하는 로스터(roster)*를 주었고, 주말에는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하게 만들었다. 사장 마틴은 4시간 30분마다 15분씩 휴식 시간을 줘야 하며, 6시간을 연속으로 일할 경우 1시간의 식사 시간을 줘야 한다는 아일랜드의 노동법 따윈 깔끔하게 무시했다. 낮 시간에 일을 할 때면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단 1분의 휴식 시간도 갖지 못했는데도, 급료 표에는 늘 30분을 쉬었다고 표기되어 있곤 했다. 마감 청소를 끝내고 나면 대체로 새벽 4시가 가까워져 있었건만, 급료는 언제나 새벽 3시까지만 지불되었다.  


사장 마틴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둘러보며, 일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향해 ‘lazy, lazy’라고 혼잣말을 하기 일쑤였다. 그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스태프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해고해 버리기도 했다. 매니저 도네와 프랭크도, 마틴 못지않게 불같은 성질을 자랑했다. 한때 도네는 하루에 한 명씩 해고해 버리던 매니저로 유명했고 프랭크는 모두가 입을 모아 ‘He doesn't like anyone.'이라고 말하는 결코 쉽지 않은 성격의 사람이었다.     




고갈티는 아름다운 거리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는 펍이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별로 아름답게 대해 주진 않았다. (출처: www.facebook.com/GoartysTempleBar)



이렇게 삭막한 곳에서, 매일같이 북적거리는 손님들에 치이며, 새벽 늦게까지 일하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른 채 불행한 얼굴로 일을 했고, 갓 들어와 일에 익숙하지 않은 스태프들에게 함부로 굴기 일쑤였으며, 몇몇은 참으로 상냥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리고 또 몇몇은 서로를 돕기 위해 노력했고 또 그런 서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서너 달만 지나면 고갈티를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고갈티에 남은 것은, 그것은 순전히 우리들이 그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갈티를 떠날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함께 일을 시작했던 아이들 중, 절반이 며칠 되지도 않아 스스로 고갈티에서 일하는 걸 포기해 버리고, 남은 아이들 중 또 절반이 도네나 프랭크에게 해고된 후에도 내가 계속 버텼던 이유는 오직 그 하나였다. 나는 더블린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로 하여금 매달 방세를 내게 해 주고, 생활비를 충당하게 해 주고, 그러고도 또 그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갈티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지옥 같던 스케줄 속에서도, 밤에 잠을 잘 때까지도 귀를 윙윙- 울리게 만들던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어느 순간 안나가 함께 일하는 날이 끝날 때마다 ‘What's wrong with you, Dan?'이라고 묻기 시작하고 ‘You were rude.’라고 말하며 나를 탓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One, Two, Three도 영어로 말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관광객들을 가끔 내가 답답해하는 것처럼, 그리 어렵지 않은 자신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안나 역시 답답해한다. 그리고 그런 관광객들에게 가끔 내가 무례하게 구는 것처럼 안나 역시 때로는 나에게 무례해진다.  

     

지난주 일요일, 손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헤매는 나에게 ‘그가 너에게 뭐라고 물었는데?’라고, 안나가 다그치듯 따져 물었다.     

 

“난 그가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듣지 못했어.”

“네가 못 알아들었으면, 손님한테 모르겠다고 대답하지 말고 나한테 물어봤어야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다시 말해달라고 했지만, 그가 그냥 됐다고 했다고.”

“그가 너한테 물어본 건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어.”     


그만하자- 라고 생각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했던 그 질문이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고 안나가 말한 순간. 그런 것도 알아듣지 못하냐고 안나가 나를 비난하듯 바라본 그 순간. 문득 그만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녀 앞에서 계속 나를 변호하는 대신, 그냥 돌아섰다. 더는 그곳에서 버틸 힘이 없었고, 실은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안나와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그녀를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녀는 때때로 친절했고, 때로는 무례했으며, 때때로 상냥했고, 때로는 나를 힘들게 했다. 나 역시도 주로 그녀에게 다정했지만, 가끔은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를 대하는 그 상냥함 뒤에 때로는 어쩔 수 없는 무례함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내가 왜 고갈티를 떠나기로 결심했는지 진짜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잠시 나를 벼랑 끝으로 내밀었을 때, 그 벼랑을 견디기보다는 그냥 도망가는 쪽을 택한 것뿐이다.                  



                  



*) 로스터(Roster)란, 특정 시간대의 근무자 명단이다. 아일랜드의 법정 최대 근무 시간은 주 48시간이었으나, 나의 실제 노동 시간은 이를 넘어설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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