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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Prologue. 다시, 금요일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Prologue)


 

다시, 금요일이 돌아왔다. 오전 10시 30분, 내가 오픈을 하고 새벽 4시, 내가 마감까지 해야 하는 악몽의 금요일. 이런 금요일을 맞는 것도 벌써 석 달째에 접어든다. 짧다고 하면 충분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은 그 하루하루가 기억에 또렷하게 남을 만큼 느리게만 흘러갔던 시간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또 얼마나 길 것인가 생각하며 집을 나서면 고갈티(Gogarty)*까지 도착하는 데는 30분 남짓이 걸린다.                     




더블린의 최대 번화가인 '템플바 거리'에 위치한 고갈티. 이곳에서 9개월 간 일을 했다. 



고갈티는 더블린의 최대 번화가인 템플바 거리(Templebar Street)에 위치해 있다. 템플바라고 하면 빨간 벽돌 모양의 특정 펍(Pub)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더블린에서는 이 말이 특정 거리를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거리에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펍과 레스토랑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데, 고갈티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펍이자 레스토랑이다.      

 

0층부터 4층까지, 네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고갈티는 성수기와 비수기, 주중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빈다.   


때문에 처음 희정이,      


“언니가 원하면 내가 고갈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소개해줄게.”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당장 일자리가 급했으면서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절대 일할 수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결국 고갈티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다섯 달. 이제 나는 고갈티에서 주당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스태프가 되어 툭하면 같은 웨이트리스들로부터도 ‘Poor Dan’이라 불리며 살고 있다.      

           




고갈티에 도착하니, 메인바(Main-bar)** 안에는 이미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채 아침밥을 먹기도 전부터 맥주를 마시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에는 아직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물론 이런 아일랜드 사람들을 내가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면      


"한국 사람들도 못지않잖아."


라고 나를 나무라는 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다른 이들이 술을 마시든 말든 상관없는 삶을 살았으니까, 그런 이들을 향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일도 없었을 뿐이다. 아일랜드에서도 고갈티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몇 시부터 기네스를 마시든, 하루에 몇 잔의 기네스를 마시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내 생활.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이들을 또다시 지긋지긋해하며 스태프 룸으로 뛰어 내려간다. 지각을 한 건 아니지만, 고갈티로 들어서자마자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안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안나라면 아무리 바빠도 혼자서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내가 도와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언젠가부터 나는 고갈티의 오픈 담당 스태프로 살고 있고, 그러니 금요일 오전이 얼마나 바쁜 날인지도 잘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온 나를 발견하자마자 안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너 가지 주문을 동시에 해댄다.      


“단, crushed ice랑 black nife, 그리고 tea spoons 좀 가져다줘.”     

“나 till roll이 필요해. 호스텔 리셉션에 가서 그것 좀 가져다 줄래?”     

“단, 시간 날 때 커피 원두 6개만 좀 가지고 와줘.”  

   

예전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안나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 말들을 다 알아듣는다기보다는 안나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종종  

   

“단, 너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영어 진짜 많이 늘었어!” 

    

라고 말하지만, 사실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경우가 더 많다. 무슨 일이든 반복하면 익숙해지는 법.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알아채는 일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이제는 안나의 부탁을 재깍재깍 들어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나와 일하는 것이 더 수월해진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요즘 나는 안나와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멀리하고 싶어진 건, 그래서 그녀와 일하는 스케줄을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되는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비밀이다.      







*고갈티: 정식 이름은 ‘올리브 스톤. 존 고갈티(Olive St. John Gogarty). 동명의 아일랜드 작가에게서 그 이름을 따왔다. 


**메인바(main-bar): 크게 네 개(메인바, 레프트뱅크, 라운지, 레스토랑)로 나누어져 있는 고갈티의 여러 구역 중, 중심이 되는 곳이다. 가장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 곳으로 저녁 시간대는 주로 술을 마시는 손님들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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