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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나는 우리들에 대해서 쓸 거야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18)



그렇게 다시 넉 달을 고갈티에서 보낸 후, 나는 프랭크에게 두 번째 레터를 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과 브뤼셀을 짧게 여행하고 돌아온 후, 2년 1개월 간의 아일랜드 생활을 마무리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 나는 잠깐 고갈티에 들렀다. 미처 인사를 하지 못했던 몇몇 아이들을 보고 싶었고, 할 수 있다면 안나와 프랭크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 프랭크가 있는 걸 확인하고, 그 앞에 가 서자 그가 흘끗 나를 쳐다보았다.


“단?”

“안녕, 프랭크."

"무슨 일 있니?"

"아니. 그냥, 작별인사하려고. 나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그래. ……혹시 내가 도와줄 게 있어?”

“뭐?”

“그러니까, 혹시 너, 추천서나 경력 증명서, 뭐 이런 게 필요하면 나한테 언제든 연락하라고. 내가, 너에 대해서 입증해줄게.”


나는 웃었다. 내가, 고갈티에서의 경력을 증명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고마워, 프랭크.”


그래도 그렇게 대답했다. 어쨌든 그 마음은 고마워해도 되는 거니까.


그리고 안나에게도 인사를 하고, 그날 일하고 있던 웨이트리스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준 후, 마지막으로 고갈티를 나서려는데 안나가 예의 그 우아한 몸짓으로 조용히 바 문을 열고 나왔다.


“단, 오늘 바빠?”


음… 오늘 8시에 약속이 있긴 하지만.


“그럼 그때까지만 나한테 시간 좀 내줄래?”


그녀의 퇴근 시간은 언제나 6시였다. 8시에 그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 사이 두 시간쯤 여유가 있다.

 



더블린에서의 세 번째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보낸 후, 나는 더블린 생활을 마무리했다.



우리가 같이 찾아간 곳은 안나가 종종 혼자서도 들르곤 한다는 조용한 바였다. 그곳의 구석자리에 앉아, 그녀는 호박 수프를 주문했고, 나는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커피 한 잔만 주문했다. 둘 다 편한 소파에 앉기 위해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가까운 사이처럼 보일 터였다.  


"내가 얘기한 적 있니?"

"뭘?"

"나는 단 네가, 일하는 동안 뭘 먹거나 하지 않아서 좋았어."


몰랐던 일이다. 내가 그랬던가.


"다른 애들은, 옆에 막 음식을 쌓아두고 일하다가 먹기도 하고, 손님이 남긴 칩스 같은 걸 집어 먹기도 하잖아. 그거 정말 보기 별로거든. 배가 고픈 건 이해하지만."


내가 왜 칩스 같은 걸 집어먹지 않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나는, 일하는 동안에는 정말로 일만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안나가 almost same이라던 엘렌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대충 일하고 싶진 않아했다. 그래서 그렇게 둘 다, 예민하게 굴었던 건지도 모른다.


곧 그녀 앞에 놓인 수프를, 그녀가 천천히 먹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앉아서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 어느새 우리는 딱히 무엇에 대해서인지도 모를 대화들을 나누고 있었다. 단, 난 아기들을 싫어해. 조카가 한 명 있는데, 가끔 걔랑 둘이 남겨지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기가 싫어도, 조카는 예쁘지 않아?' 글쎄, 조카도 어차피 아기잖아. ‘그런가.’ 그런데 네 어깨에 타투 말이야. '응.' 그거 뭐라고 쓴 거야. '아, 그게 말이야.'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그런데 이거 할 때 많이 아프던데, 넌 안 아팠어.' 너야 뼈에 대고 했으니까 그렇지. 사실 뭐, 나도 아프긴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첫 타투를 했던 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첫 타투를 하던 날과 거의 비슷한 스토리였다. (둘 다 충동적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겐 첫 타투밖에 없고 그녀에겐 여러 개의 타투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그 이후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힘들 때면 타투를 했다고 했다. 안나에겐 타투가 많은데. 그렇다면 그녀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힘든 적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타투가 여러 개인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저 사람도 삶이 힘들었던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폴란드는 또 어떤 나라인지. 그녀가 어떻게 이 나라에서 9년이나 살게 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하다가 갑자기 아일랜드로 날아오게 되었는지. 그러니까, 나는 안나가 그렇게 이야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실은 안나도 내가 그렇게나 수다스러운 사람인 줄 몰랐을 것이다.


단, 너는 그럼 대학을 졸업하고 온 거야? '응. 한참 전에 졸업했지.' 뭘 전공했는데? '문학.' 문학? 너, 문학을 좋아하니?  


음- 문학을 좋아하냐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뭐 할 거야?”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글쎄, 일단은 조금 쉬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때 이미 이 글의 프롤로그를 써 둔 상태였다. ‘다시, 금요일이 돌아왔다.’로 시작하는 이 글의 첫 부분을 말이다. 그때는 지금까지의 이 이야기들 중에서 ‘안나’의 이야기만을 써둔 상태였다. 아직은 희정에 대한 이야기도, 에더와 라리사에 대한 이야기도, 프랭크와 비키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책을 쓸 거야."

"뭐에 대해서?"


그래서 나는 웃었다.


"너에 대해서."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몇 개의 의문이 스쳐 지났다. 나에 대해서?


“응. 너랑, 비키랑, 프랭크랑, ……고갈티의 우리들에 대해서 쓸 거야.”


그제야 그녀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별로 신나는 이야기는 아니겠네?"

"아마 그렇겠지?"


그래, 우린 고갈티에서 그리 신나게 지내지는 못 했으니까.

 

"그 글을 나한테도 보여줄 거야?"

"그럼. 책이 완성되면 너한테도 보내줄게."

"그런데 그 책은 한글로 쓸 거지?"

"응."

"그럼 난 한글도 배워야겠구나."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너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쓸지, 네가 알게 되는 날이 올까- 라고 말이다.




아직 손님들이 들어오기 전의 레프트뱅크. 언젠가는 이곳에서의 시간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안나가 내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녀에 대해서 쓸 거라고. 고갈티에서 보냈던 그 펄펄 끓던 시간들에 대해서 쓸 거라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던 우리들에 대해서 쓸 거라고.


앞치마를 두르고, 유니폼을 입고, 맥주와 음식을 서빙하며 살았던, 바로 그 어여쁘고 안쓰럽던 시간들에 대해서 쓸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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