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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8. 2020

13. <코스모폴리스>

원제: Cosmopolis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출연: 로버트 패틴슨, 사만사 모튼, 줄리엣 비노쉬, 폴 지아미티
제작연도: 2012

 <스캐너스>(1981), <비디오드롬>(1983), <플라이>(1986) 등을 시작으로 '바디호러'를 통해 폭력, 자본, 권력, 체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오던 크로넨버그는 21세기 들어 살짝 다른 노선을 채택한다. <폭력의 역사>(2005), <이스턴 프리마스>(2007), <맵 투 더 스타>(2014) 등에서도 여전히 그의 테마와 특유의 기괴함은 이어지지만, '바디호러'를 표방하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은 다른 소재를 선택한다. 고어 장르에 가까운 신체훼손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들처럼 직접적으로 기괴함을 보여주는 대신 인물들을 기괴함 속으로 내던진다. 

 <코스모폴리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젊고 매력있으며 부자인' 에릭은 이발소에 가기 위해 뉴욕을 가로지른다. 전형적인 월가 금융맨인 그는 보디가드와 동행하고 운전기사가 모는 리무진에 타고 있다. 그는 좀처럼 리무진을 벗어나지 않는다. 리무진 밖에선 다양한 사건이 벌어진다. 시위대가 리무진에 계란이나 페인트를 던지기도 하고, 가벼운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에릭은 대부분을 차에 머물러 있다. 그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한다. 식사, 마약, 섹스, 업무 등등. 위안화가 폭락하고 그는 거액을 잃지만 개의치 않고 뉴욕 밖에 위치한 이발소로 가려 한다. 모든 것이 불균질한 리무진 밖에 세상과 리무진은 분리된 세계처럼 느껴지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짙은 선팅이 된 리무진의 창문만이 밖을 비춘다. 그 혼란과 불균질 속에서 에릭은 굳이 교외에 있는 이발소에 가고자 한다. 

 극도로 제한된 공간만을 활용하는 이 작품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의 초상을 끊임없이 담아낸다. 리무진 안에서 그는 안락함과 동시에 불편하다. 리무진 밖의 불균질함은 리무진 안에 앉아있기만 해도 손에 들어오는 각종 정보들로 변환된다. 에릭에게 리무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거나, 그것과 견줄만한 죽음의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모든 것은 리무진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에릭에게 다가오며, 에릭은 그것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이발소에 도착한 그는 이발하는 것을 포기한다. 불균질함 속에 그는 목적마저 잃었다. 그는 리무진을 벗어나 죽음의 공기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코스모폴리스는 그가 가로지르는 뉴욕이자 그 모든 것이 정보화되어 흘러드는 리무진이다. 정제된 코스모폴리스에서 불균질한 코스모폴리스로 나간 에릭의 주변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크로넨버그의 냉담한 카메라는 그 죽음의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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