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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7. 2020

12. <평행 I-IV>

원제: Parallel I-IV
감독: 하룬 파로키
제작연도: 2012

 하룬 파로키의 <평행 I-IV>는 앞서 선정한 <노동의 싱글 숏>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하룬 파로키 개인전을 통해 소개됐다. 이 작품은 1837년과 1895년 이래로 이미지의 헤게모니를 차지해온 사진과 영화의 재현방식을 다루고 있다. 현실를 화학적으로 복제하는 기계장치인 카메라는 사람의 초상에서 시작하여 방, 건물, 길거리, 도시, 그리고 자연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하룬 파로키는 물, 불, 바람, 나무 등 자연의 풍경을 재현하는 것에 관심을 지닌다. 처음에는 픽셀로 구성된 이미지에서 시작한 재현은 점차 현실을 닮아간다. 작품의 제목인 '평행'은 점차 현실과 구분이 어려워지는 '평행현실'로서의 재현 이미지를 이야기한다. 파로키는 이러한 '평행현실'의 예시로 다양한 게임을 가져온다. [GTA], [레드 데드 리뎀션], [배틀 필드] 등의 게임이 영화에 등장한다. 

 게임 속 아바타는 그가 위치한 평행현실과 플레이어가 위치한 현실을 매개한다. 콘트롤러를 통해 플레이어가 입력하는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아바타는 평행현실을 모험한다. 아바타는 갱스터가 되거나, 서부극의 무대가되는 마지막 시기인 20세기 초의 무법자가 되거나, 세계대전 속 참전군인이 된다. 고도로 발달한 물리엔진은 풀, 물, 흙 등의 자연물이 아바타와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하룬 파로키는 각각의 아바타가 각각의 평행현실을 누비는 과정 이면을 들여다본다. 아바타가 상호작용하는 자연물들은 자신이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아바타와 상호작용한다. 그 움직임은 당연히 현실과 다르다. 더 나아가 아바타가 평행현실의 다른 인물들, 다시말해 NPC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까지 파로키는 나아간다. 이들 또한 자연물처럼 정해진 몇개의 대답과 행동을 반복한다. 우리는 현실과 거의 유사한 평행세계를 돌아다니지만, 그곳의 작동방식은 현실과 다르다. 게다가 그 평행세계는 종종 에러를 일으키며 보여서는 안 될 부분을 보여준다. 아바타의 시점으로 보이는 공간을 조금만 빗겨나가면, 게임 속 평행세계는 자신의 납작한 이면을 보여준다.

 전쟁과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하룬 파로키의 다른 작품과 <평행 I-IV>를 연결시켜본다면, 파로키가 이러한 평행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을 훈련하는 군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비행, 전투, 폭격 등 전쟁에 필요한 많은 행위를 게임과 유사한 방식의 시뮬레이션으로 훈련하는 군인들은 앞서 등장한 게임들보단 조악하지만 여전히 평행현실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을 익힌다. 아바타를 통한 평행현실과의 상호작용은 현실에 대한 감각을 저해한다. 물론 파로키는 게임 자체가 해악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지적하기에 앞서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피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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