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틈. 삶의 이정표 바꾸기 프로젝트(0)
프롤로그
한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그걸 언제 얼마나 쓰는지가 다를 뿐이라는 얘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짧은 다리를 가져서 인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여러 번 밟고 지나간 발자국 위를 그대로 좇기도 바빴다. 범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하면 평범해지고, 두 배, 세배는 노력해야 다른 색을 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해지기에도 바빴다. 꽤 크고 나서야 평범하게 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넓은 보폭을 따라잡느라 가랑이가 찢어져서였을까. 정년이 보장되고 앞으로의 '평범한' 삶이 보장되는 직장이 생긴 후 나는 예전의 내가 뿜어 내던 에너지를 잃었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 보니 잃었다기보다는 에너지를 내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를 세상에 증명하려 애썼던 그 모든 시간들에서 벗어났을 때의 그 해방감과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만족을 강요했다. 현재에 만족하는 삶. 얼마나 완벽한가.
그렇다고 마냥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발끝의 행복을 찾아 여러 우물을 파고 다녔다. 안 해본 취미가 없었고, 여러 개의 모임에서 활동했다. 주말에는 하루에 세네 개의 약속을 잡고 새벽에는 운동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회사에서 가급적 적게 일하자는 기조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회사에 늦게 입사한 나에 비해 이미 한참 먼저 사회에 몸을 들인 친구들이 입을 모아 회사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지 말라고 했다. 회사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의 삶이 착취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해야 승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승리하였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잠시 멀어져 보니,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 보니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냥 지쳐있었던 것이다. 평범해지기 위해 그저 너무 열심히 달렸고, 어렸고, 요령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달콤한 얘기가 정답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설탕과도 같아서, 당장에는 입에 달고 좋지만 금세 슈가하이가 와버리는 것처럼 발끝까지만 좋았다. 오늘은 재밌지만 내일도 재밌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정말 발끝만 보고 하루살이처럼 살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미래를 고민하게 되면서 이것은 나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10년 후, 30년 후에도 맞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가지고 있는 삶의 주파수가 모두 다르니까.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만 가지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잘 몰랐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도와준 책이 여러 가지가 있다. 2,3년 전의 나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책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멀지 않은 미래의 내가 또다시 길을 잃었을 때 이정표가 되어 주기를,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 삶의 이정표를 바꿔준 책들과의 사투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 다음 글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