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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Feb 07. 2022

민주적인 좀비 (6)

지현이는 명랑만화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것들을 갖고 있지 않은 애였다.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에서 5분 정도 더 위로 올라가야 있는 다른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더 가격이 낮았고, 더 살기 어려웠다. 우리 집은 그래도 수도와 전기는 잘 나왔지만. 지현이네 집은 조금만 더워지면 냉수가 아예 나오지 않았고, 비가 오면 검정고무신처럼 집에 양동이를 둬야 했다. 도망간 아버지, 아픈 할머니, 바쁜 엄마를 두고 지현이는 매일 2,3개의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녀는 자신은 다니지도 못할 헬스장 전단지를 매일 쉬는 시간마다 분류하고 묶어둬야했다.


난 사실 지현이를 싫어했었다. 걔가 자신의 가난에 당당하게 맞서는게 꼴보기 싫었다. 지현이는 한 번도 주눅들지 않았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위축되지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의식을 부풀리지도 않았다. 지현이는 자신의 가난을 이용했다. 그녀는 적당한 시점에는 가난하다는 어필을 했고, 적당한 시점에는 자존심을 부렸다. 가끔이긴 했지만 주변에 배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지현이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구린 집에 살면서도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다른 애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지현이를 볼 때마다 내 속은 뒤틀렸다. 그런 지현이를 보면, 난 내 불행과 망설임이 환경만의 탓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비참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고, 난 불행할 만해서 불행했다.


그럼에도 난 지현이와 매일 같이 다녔다. 지현이는 학교가 끝나면 유일하게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친구였다. 이 학교에서 오직 우리만이 이 언덕에서 살고 있었다. 지현이는 하교할 때마다 풍경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지현이랑 걸으면서 우리들의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식물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식물들은 정원처럼 관리가 되진 않았지만, 그런 길도 나름 예뻤다. 난 지현이와 함께 갈 때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쫒기듯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지현이는 항상 느릿하게 걸었고, 거리의 이곳저곳을 봤다. 길고양이를 발견하는 것도 그늘에서 걷기 위해서 돌아가자고 말꺼내는 것도 다 그녀의 몫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아니었다. 지현이는 항상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고, 나는 무언가를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지현이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나를 부르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내 표정을 보고서는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선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지현이는 같이 하교하기에 나쁘지 않은 친구였다.


지현이는 꿈을 갖고 있진 않았다. 정확히는 나중에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만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현이가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다. 물론 서울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지만, 지현이는 수도권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을 고를 정도로 똑똑하긴 했다. 하지만 지현이는 대학이나 진로에 관심이 없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창피한 종류라서 말을 못하는 건가 싶어서 하교길에 물어본 적도 있지만, 지현이는 진짜로 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현이가 대학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지현이네 집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항상 힘들었지만, 그녀는 대학을 가서 지내보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알바 몇 개, 병원에서 해주는 대출제도, 매일 먹는 야채김밥, 4년 뒤 칼 취업이 있다면 그녀는 여유롭게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지현이는 그렇게 대학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현이는 대학을 갈 수 없었다. 그건 계단 하나 때문이었다. 발단은 사소했다. 지현이는 매일같이 걸어다니는 계단에서 넘어졌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좁은 육교, 그 육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역을 넘어서 그럴 듯한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빨간색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육교는 중간중간 갈라져 있었다.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 한참 지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모양의 육교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 육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육교가 고쳐질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육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집이 육교보다 더 금이 많이 가있다는 사실이 이걸 증명했다.


지현이는 넘어지는 순간에 매우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주제를 말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그녀의 표정과 말투가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 날의 분위기, 햇빛의 채도, 지현이의 표정과 복장 그 모든게 유독 기억에 남았다. 지현이가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려고 입을 벌린 순간, 낡은 육교의 계단 한 칸에서는 작은 크기의 돌덩이가 떨어져나갔다. 그 돌덩이는 하필이면 그 시점에, 그 육교에, 그 칸의 계단에 지현이가 밟고 있는 부분이었고, 지현이는 누가 잡아줄 틈도 없이 육교에서 굴러떨어졌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순간에도 지현이가 떨어지는 걸 놀라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놀랐지만, 난 아무것도 못했다.

별 일이 아니어야 했다. 육교에서 구른 지현이는 그렇게 아프지는 않지만, 창피하다면서 벌떡 일어나야 했다. 그녀는 무릎을 두들기고 난 그것을 보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괜찮냐는 질문을 해야 했다. 그건 우리 사회가 넘어진 사람에 대해서 하는 규칙이었다. 지현이는 살짝 운이 없었다. 넘어질 때 지현이는 하필이면 머리를 부딪혔고,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살면서 한 번도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간이판매점의 아저씨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지현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한 15분이 지나있었다.


지현이는 조금 늦게 병원에 가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다친 건 아니었다. 물론 바로 병원에 갔다면, 응급조치를 하고 하루이틀이면 나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치만 늦게 갔다고 해서 큰 일이 나지 않았다. 지현이는 금방 깨어났고, 병원에 가는 길에 나를 위로했다. 병원에서도 지현이에게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응급조치가 늦어서 이틀이면 끝날 일을 한 달동안 입원을 하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선생님은 친절했고, 지현이에게 큰 일이 생기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현이네는 이 작은 사고를 견딜 수 없었다.  작은 돌멩이로부터 시작한 사고는 순식간에 비극이 되었다. 눈덩이는 아주 작았지만, 지현이네 집은 남들보다 높은 곳에 가파른 경사에 있었고, 그 경사를 견디기에 가족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병원에서 하는 뇌검사 중에 몇 개의 품목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고, 지현이네 가족들은 급하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몇백의 돈이었지만 갚기 어려웠다. 지현이가 입원한 동안, 가족의 수입은 사라지다시피 했고 그렇게 작은 구멍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마분지에 작은 불구멍이 생기면 그 구멍이 어느순간 삽시간에 커지는 것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은 순식간에 커졌다. 한 번 알바를 그만두자 새로운 알바를 구하는건 어려웠고, 병원에서 나온 돈으로 인해서 지현이가 그나마 모았던 돈은 사라졌다.


지현이 어머니는 지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름 성격이 좋으신 분이었는데, 지현이 때문에 모든 불행이 찾아온 것처럼 지현이를 비난했다. 지현이의 아버지가 도망간 이유도 지현에게 있는 것처럼 어머님은 얘기했었다. 집앞에서 얼마나 지현이에게 욕을 퍼부었는지 내게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지현이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몸이 아프고 아들이 도망간 상황에서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할머니는 지현이의 엄마가 없이 혼자 지현이와 있을 때마다 지현이에게 작은 사탕을 줬다고 한다. 교회에서 나눠준 사탕을 모은 것이었다. 지현이는 학교에서 그 사탕을 매일 하나씩 버렸다. 쓰레기통에 사탕을 버리는 지현이의 표정이 섬뜩했다며 지현이 친구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퇴원을 한 후부터 지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육교에 나와있었다. 지현이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알바도 안했고, 대학을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이 보통 부자들보다 바쁘지만, 더 가난한 사람은 한가하다. 지현이는 매일 육교에서 계단 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현이를 이상하게 봤지만 지현이는 넋이 나간 느낌으로 육교를 바라봤다.

 

난 지현이를 항상 보고 있었다. 덜렁거리는 방충망 뒤로 지현이가 육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내게도 보였다. 하지만 난 지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난 지현이에게 거리를 뒀다. 지현이를 만나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전하고,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기에는 나도 피곤하고, 지쳤다. 힘든 일이 생긴 건 안타까웠지만,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육교 앞에서 있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마다 육교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지현이는 매일 등교했고, 학교에서도 나름 괜찮아보였다. 예전이랑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있는 것도 괜찮아보였다. 우연히 지현이와 둘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긴 했다. 그건 육교 앞이 아니라 마트에서였다. 나와 지현이는 공교롭게도 라면코너 앞에서 만났다.

 

작은 목소리로 마트에서 지현이에게 인사를 하자 지현이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놀란 게 틀림없었다. 그치만 지현이는 웃으면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은 집에 같이 가는 일이 없어서 서운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매일 보는 사이였는데도 갑자기 지현이가 낯설었다. 갑자기 그녀 얼굴의 입체감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현실이었는데, 지현이의 얼굴이 종이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였다. 요즘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힘듦과 지침, 피곤과 짜증,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현이는 진짜로 괜찮아보였다. 그리고 난 그게 괜찮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날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괜찮다는 말도 아니고, 힘을 내기 위해서 괜찮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괜찮아하는 그 모습이 나는 무서웠다. 난 반쯤 도망가듯이 낡은 마트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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