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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Mar 01. 2022

민주적인 좀비 (마지막)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구두소리가 울렸다. 나는 뭐라 더 말을 하지 못했다. 단 두명이 있는 회사에서 내가 이 사람을 붙잡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제서야 이 면접이 취업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아마 회사의 지원금 같은 걸 위해서 동원된 모양이었다. 바보같았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그를 붙잡아서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성의없이 면접을 보는게 어떤 경우냐고. 따지고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잠깐 그럴까 몸을 돌리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와중에 대표가 직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야 쟤 가난한 대학생 맞으니까 면접 본 기록 정리해서 지원금 신청해. 그거 꼭 합격 안 시켜도 되는 거라면서. 늦지 마라. 그리고 쟤한테 주기로 했던 면접비는 내가 잠깐 쓴다. 조카 선물 하나 사줘야 되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았다. 구름이 아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난 바람이 안 부는 날을 싫어한다. 너무 고요하면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이 곳이 현실인지를 믿기가 어려웠다. 뭔가 세상이 너무 평온한 느낌이었다. 밖에는 부유병 환자들이 미동없이 골목가를 채우고 있었다. 골목의 지점마다 있는 부유병 환자들을 보면, 상가마다 풍선을 달아서 홍보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한 환자는 저기 보이는 큰 사우나 건물의 직원복을 입고 있어서 진짜 사우나 홍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우나 직원이 부유병에 걸렸으면, 저 사우나를 가는게 좋은 걸까 아닌 걸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강남에서 우리동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로 가면 2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버스를 타니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래도 버스를 타는 걸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버스 창으로는 부유병 환자가 보였다. 오늘따라 부유병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왔다갔다하면서 보느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것보다 둥둥 떠있는 좀비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유병이 요즘 갑자기 늘어난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좀비는 항상 비슷하게 많았다. 그냥 지금 이제서야 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버스는 육교 밑을 지났다. 지현이와 매일 걷던 육교, 그 육교였다. 지금도 지현이는 저기에 있을까? 육교 계단 앞에 지현이는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때 입고 있던 녹색 티셔츠와 낡은 회색수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현이를 이렇게 제대로 본 건 그 날 이후 처음이었다. 분명히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굳이 지현이를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늘 따라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앞을 향해서 계속 나아갔지만, 난 창문에 얼굴을 대고 지현이를 바라봤다.


막상 지현이를 보니 드는 마음은 불편함보다는 반가움이었다. 지현이는 눈을 뒤집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좀비였지만, 지금 이 거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안전했다. 심지어 지현이는 지금 그녀 자신에게조차 무해했다. 지현이는 스스로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을 만큼 평화로웠다. 고등학생 때 지현이와 같이 등교를 하던 때 해맑은 지현이보다 지금 좀비가 되어있는 지현이가 더 안심이 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면접을 떨어진 건 별게 아니었다. 별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런 건 괜찮았다. 원래도 매번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제일 별로인 점은 내 세계에 퍼져있는 무심함이었다. 내 성공을 바라는 엄마도, 내게 속으로 미안해하는 아빠도 사실은 내게 무심했다. 삶을 살아가는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무심했다. 목적없는 무심함 속에서 나는 노력을 하지도, 세상에 분노하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채 그냥 부유하고 있었다. 인간은 3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서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내 삶은 평면이었다. 점과 선, 면으로만 이뤄진 세계에서 나는 계속 살아오고 있었다. 평면적인 삶은 평화로웠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나머지, 그 안에서 한 명의 개인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버스는 육교를 조금 지나자 정차했다. 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릴 때에도 날씨는 여전히 좋았다. 하늘은 아까랑 똑같이 구름 한 점 없었다. 똑같은 배경에서 나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지구는 평평하게 눌려있었다. 내가 그림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증거는 하늘에 떠있는 좀비뿐이었다. 그들이 떠 있음으로써 사람들은 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화하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 좀비가 하늘에 있는 덕분에 내가 서있는 평면에 높이가 생겼다.


모든 것이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왜 좀비병이 발병했는지, 사람들이 왜 좀비가 되는지, 누가 언제 좀비로 변하는지를 다 알았다. 왜 그런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난 지금 다 알 수 있었다. 난 다시 지현이가 있는 육교로 걸어서 돌아갔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답답한 곳에 있다가 고향에 돌아가서 시원한 공기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래 있어야 하는 방식으로 이제서야 있을 수 있었다.  조금씩 공기가 시원해지는 거 같았다. 머리에 계속 있던 잔여물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순간 땅은 발에서 떨어졌다. 내 몸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멀미가 날 것같은 그 상황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멈춰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결국에는 더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바람에 몸을 맡겼다.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인 건 지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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