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Aug 09. 2023

잘 때도 주먹을 꽉 쥐는 마음

그 마음을 생각하며 걸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야 또 주먹을 쥐고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이 생겨있다. 이를 꽉 다물고 자던 습관이 주먹을 꽉 쥐는 습관으로 옮겨갔다고 추측했지만, 가끔 어금니가 얼얼하고 볼 안쪽에 잇자국이 느껴지는 걸 보면 역시나 주먹 쥐는 습관이 추가된 모양이다.     


주먹을 꽉 쥐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펼쳐서 허공에 탈탈 털어내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내장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 기립성저혈압이 심해서 벌떡 일어나면 몇 초간의 암흑과 함께 머리에 터질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게 된다. 다시 주저앉으면 될 일이지만 무릎은 굽혀진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어떻게든 서 있으려 한다. 그렇게 문고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버틴다.     


가벼운 샤워를 하고 옷방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종이의 잔해를 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가만히 서서 그것들을 지켜봤다. 세탁할 때 바지 주머니 안에 영수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들을 바닥에 보란 듯이 던져놓고 출근하는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습관처럼 그의 마음을 추측해 보다가 그의 마음이 나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챘다. 흩어진 종이 조각들을 깨끗하게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올해의 참혹한 더위는 쪄 죽어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나를 아침부터 찬물로 샤워하게 만들었다. 2016년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더위다. 그땐 에어컨이 없어서 생수병을 얼려서 안고 잤었다. 그렇게 돈을 아껴보겠다고 감히 에어컨을 설치할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살진 않는다. 여전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고 죽을 것 같으면 에어컨을 튼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에어컨을 딱 한 번 틀었다. 더 나은 선택지를 알면서도 지금을 견디고 버티는 일. 그런 짓을 꽤 많이 한다.     


밤 10시만 넘기면 잠이 오는 사람이 무려 새벽 3시까지 웃고 떠들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도 없던 바닷가는 어느새 해무만 가득했다. 붐비는 사람들 틈 속에 있을 땐 내 마음도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깜깜한 바닷가에 서서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는 파도엔 마음을 두어도 괜찮았다.  

    

감겨오는 눈꺼풀과 무거운 두 다리를 끌고 기어이 걷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거리를 걷는 게 택시를 타는 것보단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내 마음이 내키는 일 역시 많이 한다.      


잘 때도 주먹을 꽉 쥐는 마음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 마음이 다짐하는 마음이기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그 마음도 버티는 마음인 듯하다. 아마도 산다는 건 이렇게 주먹을 꽉 쥐고서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내는 일이겠지. 통통하게 부은 손가락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허공에 대고 탈탈 털었다. 그렇게 집으로 걸어갔다.      

이전 09화 적당히 괴로운 어느 한여름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