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의 날 받아주리라 믿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백일홍이 피어나고 있는 걸 보니 여름의 한가운데 들어왔구나 싶다. 요즘은 동네 도서관이 공사 중이라 지하철역에 있는 스마트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그곳으로 걸어갈 때마다 좋아하는 것은 모두 변해버리거나 사라진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했었다. 다음엔 또 뭐가 사라지려나 자조하면서.
한 달이 지나자 스마트 도서관에도 정이 붙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동네 도서관보다 장점이 많은 선택지였다. 어렸을 적에 생선은 값싼 고등어만 먹었기 때문에 바다에는 고등어만 사는 줄 알았다는 어떤 분의 일화를 떠올렸다. 만약 도서관이 공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절대 스마트 도서관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자신을 또 자조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몇 분 사이에 내리쬐는 햇빛이 한 걸음 물러나고 있었고 거리에선 말린 나물 삶는 냄새가 훅 풍겨 올라왔다. 뜨거운 햇빛에 풀과 나무도 익어버렸던 모양이다. 그래, 낮만 계속 이어진다면 말라죽을 거야.
‘아무렇지 않을 땐 아무렇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을 땐 나의 모든 것이 되곤 하는 기억’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언제나 적당히 괴로울 때만 책을 찾으므로 다양한 책을 읽지 못한다. 내게 독서란 저 문장과 같이 내 마음이 담겨 있는 순간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진정한 친구는 서로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한다더라. 그렇다면 나는 널 용서한다.’라는 뜬금없는 연락을 받았다. 내 잘못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앞으로 있을 내 잘못을 미리 용서해 주었다. 지금의 내가 그 말을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지 않았기 때문에 온 마음이 곧장 그곳으로 쏟아졌고 있는 그대로의 날 받아주리라 믿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나를 인정했고 그것을 사랑이라 말했다. 나의 믿음이 그들의 의무가 될 수는 없으므로 ‘널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그 말은 진심이었을지도. 그리고 진심이라 생각했던 나의 믿음은 아이 같은 욕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흘러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어서 마치 너구리처럼 떠오른 그들을 하나하나 다시 흐르는 물에 씻어서 집어삼켰다. 그들은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언제라도 불쑥 튀어나올 수는 있어도 이제 내 인생과는 완벽히 무관해진 사람들이 되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