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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ul 27. 2023

매미 울음소리

원하든 원하지 않든 햇빛은 비추고 비는 내린다.

습하다. 말도 못 하게.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습함이지만 앞으로의 여름은 필연적으로 더 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이블 아래에 깔아 둔 대자리에 푸른색 곰팡이가 까맣게 올라왔고 옷장 안 가죽점퍼가 하얀 곰팡이로 뒤덮였다. 자주 빨지 않았던 천 파우치, 신발장 안 오래된 가죽 샌들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숨겨진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드러나는구나. 치부를 들킨 것만 같아 재빨리 곰팡이들을 처리하고 햇빛 비추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올해 여름엔 매미들이 자주 찾아왔다.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배와 다리는 너무나 생소하게 생겼지만 쉬고 있는 애들을 쫓을 수는 없어 멀찍이 서서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갑자기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매미들은 비 오는 날엔 울지 않았다. 우리 집 창문에 붙은 애들만 그런 것인지 원래 매미라는 개체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를 피해 휴식을 취하는 중이거나 여기선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매미가 맘껏 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이 오면 너는 짝을 찾고 나는 대자리를 말리자.      

봄을 마주하는 것이 겁나서 일부러 겨울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어느새 이렇게 간절히 햇빛을 원하고 있다. 며칠의 햇볕이 내리쬐는 날들을 보내고 나면 그새 그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열기를 잠재워줄 시원한 비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지금과 반대되는 것을 원하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간절히 원하든 원하지 않든 햇빛은 비추고 비는 내린다. 그래서 타 죽지 않고 잠식되지 않는다. 고마워해할 일이다. 


며칠 뒤 드디어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추는 날이 찾아왔다. 햇빛이 달아날까 급한 마음에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재빨리 햇빛 짱짱한 앞 베란다에 대자리를 널어놓았다. 두어 시간 만에 수건이 바짝 말랐다. 수건에 코를 박고 바삭하고 달큼한 햇빛의 냄새를 맡았다.    

   

어느새 창밖에서 그동안 숨죽여왔던 매미들의 시끄러운 구애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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