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몸뚱이는 하나이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그 애들이 모두 날뛰는 날을 경험하고 나면 어김없이 입술이 터져버리는데, 지금 입술이 그 상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에 내게 돌진하는 차를 보면 그대로 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튀어나오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며칠 만에 죽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일 뿐. 지독히도 실행력이 없다. 그저 조금 지쳤을 뿐이다.
늘 외롭고 불안했으면서 이 삶을 선택한 뒤론 예전에는 마냥 행복했던 것처럼 우울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들볶았던 것 같다. 이 삶은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야만 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평온한 하루를 보내도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밤을 꼴딱 세고, 순간적으로 호흡이 힘들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계절 바뀜도 날 우울하게 만든다. 가을로 넘어가는 이즈음에는 유난히 몸과 마음이 성하지 않고 일렁인다. 올해도 벌써 끝을 향해 달려가지만 내가 이룬 성과는 보유한 주식이 상장폐지 당한 것 정도랄까. 똥기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요즘 똥기계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본다. 댄서들이 매번 울어 재끼는 건 난감하지만 그녀들의 넘치는 에너지에 충전이 된다. 한낱 백수가 둠칫둠칫 되지도 않는 리듬을 타며 TV를 보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나름 살려고 보는 거다.
배터리 잔량 20~30%쯤 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충전해야 한다. 도대체 이런 체력으로 회사 생활 18년은 어떻게 했는지. 과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론 주체할 수 없이 답안지를 밀려 쓴 기분에 휩싸인다. 다시 새 답안지에 답을 옮겨 적기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고 새 답안지를 꺼내도 막상 선택한 답에 확신이 없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나는 겁쟁이다. 원래 겁쟁이들이 선택에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내 선택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망할 것 같다는 망상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이 지금의 삶을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오직 내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나?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던가?
선택은 그저 삶의 방향을 제시할 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지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이 어떻게든 과거를 바꾸려 해도 다른 상황에서 어김없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처럼 삶은 애초에 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정당화에 능한 나는 그래서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뜻으로 여기지 않고 무언가에 조정당하길 기꺼이 바라며 선택하기를 회피했다. 한마디로 ‘될 대로 돼라’의 심정인데 이제는 그 논리도 나를 납득시킬 수 없을 지경으로 끌고 왔다. 이제 밥벌이를 해야 한다. 근데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입술이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