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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Dec 19. 2023

올해 가장 잘한 일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하다

떨어지는 해를 등지고 있는 산등성이를 가만히 바라보면 거대한 짐승이 느긋하게 엎드려 있는 듯이 보인다. 나무들은 털가죽의 털처럼 산등성이에 보송보송하게 박혀있다. 엄마가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산등성이의 삐죽 솟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었다. 가끔 저 소나무 근처에서 쉬는 등산객들이 보일 때가 있다고. 아빠는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시각에는 산의 실루엣이 선명해진다. 엄마는 그곳을 가 본 적이 있었기에 소나무 옆에 작은 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도 지켜봐야만 하는 때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허리가 아픈 엄마는 이제 그곳을 걸어서 가기엔 무리다. 엄마는 산등성이의 등산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혼 후에 엄마는 내 인생에서 희미해졌다. 일과 남편과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지난날에 나는 엄마를 한 달에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야 하는 숙제처럼 여겼고 옆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 누구한테도 마음을 다 주지 말라고 믿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말에 화를 냈지만 이젠 무슨 뜻인지 안다.     


그 말은,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도 나를 등질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그렇더라는 걸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사는 동안 어떻게든 상처를 덜 받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엄마, 안다고 해서 덜 속상하지는 않더라. 그것도 엄만 이미 알고 있지?      

돌아 돌아서 다시 엄마 곁으로 왔다. 잃어보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엄마를 숙제처럼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늦었지만 이보다 더 늦지 않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요즘이다.   

  

엄마는 요즘 머릿속에서 내가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간사하게도 매일 엄마를 생각한다. 며칠 전 아빠가 전에 갔던 식당의 상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간단한 검색으로 그 식당의 상호와 위치를 알려줬을 때, 그러니까 정말 별 것 아닌 이 일에도 엄마는 우리 딸 똑똑하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똑똑하다는 엄마의 문자에 울어버렸다. 아니야. 엄마 딸은 똥멍청이야. 똑똑하다고 깝치던 헛똑똑이가 엄마 딸이라고. 엄마가 날 사랑할수록 나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명확히 알게 된다.      


올해 내가 그녀를 기쁘게 한 일은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한 일 하나다. 이건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하다. 비록 임영웅이가 3시간 동안 트로트 3곡만 불러버리는 바람에 크게 실망을 했지만, 콘서트를 가기 전까지 엄마는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아쉬운 낯빛을 숨기지 못하고 담엔 영탁이의 콘서트 티켓팅을 해달라고 했다. 내년에 내게도 할 일이 생겼다. 2024년의 행운을 몽땅 거기에 쓴다 해도 나는 좋을 것 같다.     


밤의 운전이 힘들어졌다는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를 픽업하러 가면서 이것이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잠깐의 시간에도 공연장 앞에 있으라는 나의 당부를 무시하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려다 끝내 길을 헤맨 엄마에게 달려가며 나는 화를 냈고 엄마가 호호 할머니가 되는 날에도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건 사람을 겁나게 한다. 그렇다면 엄마는 평생 겁이 났을 것이다.      


그녀의 두려움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자식 때문일 테지만, 나의 겁은 엄마 없이 홀로 남겨질 나를 향한 두려움에 가깝다. 엄마가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지만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이미 알고 있겠지.     


엄마를 데려다주고 캄캄한 바다를 건너오며 내년에 영탁의 콘서트 티켓팅에도 성공하자고. 영탁이는 부디 트로트를 많이 불러주길 기대하며 그렇게 2024년을 보내자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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